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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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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63회 작성일 15-10-24 21:32

본문

집을 나설 때는
노량진 로드푸드를 먹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오토바이를 탈까 했지만
승용차를 타기로 했습니다.

10월의 이태원축제는
인터넷에서 읽었습니다.

광화문 광장을 막아선 축제의 횡렬에
떠밀려 신촌으로 갔습니다.

굴레방 다리를 막아선
신촌 맥주 축제의 차 막힘을 피해
홍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올망졸망한 옷 가게들의 가을옷에서
내게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눈요기를 했습니다.

일식집의 차림표와 음식 사진에서
"돈부리 먹어 봤어?"
하고
말 문을 처음 열었더니

아내는 큰 처형이 만들어 준 것을
먹었다고 말을 합니다.

거리를 배회하다가
악세서리를 아내에게 사 주던
아저씨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손수레에 바퀴가 밀려나듯
우리도 떠밀려 가고 있었습니다.

도시는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향락과 소비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뒷골목에서 찾은 메뉴
'매운 갈비찜'

결코 소박하지 않은 실내장식에
'음식값은 얼마나 비쌀까?'
잠시 망설였습니다.

이양이면 가장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주문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등 갈비에 치즈가 들어간 오븐 구이,
아내와 나는 치즈맛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해물이 들어간 갈비찜을 주문하자
아가씨는 매운맛의 강도를 묻습니다.

숫자 네 가지에서
2자의 굵은 외곽라인이 선명한 걸 보고
2번을 주문 했습니다.

주방으로 돌아선 아가씨의 뒷덜미에

"4번을 시키면
방독면을 쓰고 먹어야 하나?"

음식을 주문하고
비로소 찾은 안정감에
실없는 농담을 했습니다.

매운 것은 아픈 맛이라는데
중독성이 있다는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매운 음식을 먹으면 풀린다고 하는데

지난 한 주를 생각했습니다.

십 년을 단골로 갔던 식당이
새 건물로 이사했습니다.

'육 개월만 더 장사하고 싶다.'는
꼼장어 사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건물은 샀지만,
갈비집 개원을 육 개월 미뤄야 했습니다.

육 개월이 지난
어느 날,
갈비집 사장이 전화를 했습니다.

한 달음에 달려갔더니
주인은 친동기간을 만난 것처럼
저를 반겼습니다.

육 개월의 공백을
갈비집 주인은 '놀수없다.'
장사를 했답니다.

출근 길의 지하철 입구에서
김밥을 팔기도 하고

술집이 즐비한 거리에서
떡을 팔기도 하고

파출소에 두 번이나 잡혀갔답니다.

정년을 삼년 앞 둔 남편은
조기퇴직을 하고
아내가 시작한 갈비집의 주방일을
거들고 있었습니다.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음식장사를 하기로
결심을 했답니다.

아내가 두번이나 파출소에 잡혀간 날,
아내를 만류하고
노가다라도 나가겠다고 선언을 했답니다.

지독한 생활력이
그들 부부의 노후를 책임지리라는 것은
결코 우연한 결과물이 아니었습니다.

인테리어 가격의 흥정은
난색을 표했습니다.

인테리어의 면모는 생각지 않고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가격의 절충으로
어렵게 시작 된 공사였습니다.

일을 시작한 월요일 아침은
첫날이라 바빴습니다.

각종 공구를 챙기고
자재상에 발주한 물건을 차에 실고
일당일을 하는 칠 아주머니를 태웠습니다.

일당에게 칠을 주문하고
저는 출입문의 미닫이 세 짝 자리 철문을
제거하고
큰 통창과 강화유리를 세우는 것이
그 날의 목표였습니다.

출입문을 철거하고
느닷없이 통유리의 밀리 수와 종류를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8mm일반 유리를 쓰겠다고 했더니
여자는 난색을 했습니다.

통 유리는 강하유리를 끼어야 한다고 
설득을 합니다.

강화유리는 하루전에 주문을 해야하고
가격도 배나 비쌌습니다.

저렴하게 공사를 하기로 한 견적에
맞지 않았습니다.

막무가내로 강화유리를 고집하기에
금액을 높이거나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불러
공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새로 낸 견적에 주춤하고
남자는 공사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
고심을 했습니다.

누구나 하는 보통유리가
그들에게는 갑자기 큰 이슈가 되었을까요?

유리는 깨지라고 유리가 아니었던가요?

술 먹은 손님이 발로 차면
깨지기는 강화유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방탄유리도 있는데
부부의 머릿속에는 강화유리에 대한
편견을 꺾을 수 없었을까요?

여자의 속 내는 적은 돈으로
강화유리를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상행위는 이득을 남기는 일이었는데
이미 낸 견적에서
강화유리를 끼우고 나면
인건비도 건질 수 없는 공사로
전략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만에 칠 공사와 샷시를 세우기에는
무리한 공사였습니다.

'Yes냐 No냐' 하는 귀로에서
남자는 현명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종전에 하기로 했던 되로
공사를 합의 했습니다.

오후가 되자
출입문 샤시의 통유리는
예정되로 8mm유리가 끼워졌습니다.

출입문의 강화유리가 달리자
이번에는 남자가
강하유리의 보조키를 하나 더 달아달라
짜증을 냈습니다.

더는 감정에 치우치지 말자 생각해서
보조키를 양보했습니다.

칠을 하기에는 턱없이 많은 일의 양에
저도 오후에는 합류했습니다.

이번에는 남자가
홀 지붕을 칠하고 남은 백색 페인트로
자신이 발주하지 않은
화장실 입구를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인과 공사하는 사람의 관계이지만
무엇이 잘 못인지
그 남자는 알지 못했습니다.

자제가 남으면 그것은 몽땅
자기 것이라는 생각도 문제지만
어차피 칠을 발주했으면
믿고 추가 발주를 해야 했습니다.

기술자를 불러놓고
모욕적인 일은
무시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본인이 할 일이라면
굳이 일을 맡길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번에는
일층 샤시의 노란색 칠이 문제였습니다.

기존 샤시는 검은색이 칠해져 있었습니다.

새로 만든 샤시는 노란색 칠을 하기로
협의가 되어 있었습니다.

개성 없는 비슷한 매장들 중에
조금이라도 돋보이게 하려고
노란색을 제안했었습니다.

남은 페인트로 백색 칠을 하던 남자가
갑자기 말을 바꾸었습니다.

남자는 흰색이 어떤가?
여자는 연두색이 어떤가?

칠은 이미 노란색이 도착했는데
나는 생각했지요.
'그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슨 상관이랴'

칠이야 싫증이 나면
다시 칠하면 되는 일이지만
전문가의 의견을 믿지 않았습니다.

옥신각신하는 사이
일은 점차 짜증스러웠습니다.

아침에는 설렁했던 가을 날씨가
오후는 온종일 해가 뜨는 남향에
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속을 알 수 없는 변덕도 변덕이지만
서로 믿고 협의했던 일을
손바닥 뒤집듯이 말 바꾸기를 하는
그들 부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이번 공사는 쉽지 않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하기로 했던
노란색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칠은 절반밖에 칠해지지 않았는데
일당 아주머니는 노임을 주고
보내야 했습니다.

가게 세 칸 중에
한 칸이 노란색 칠로
완성이 됐을 때,

부부는 사 차선 도로 건너편에서
가게를 보았습니다.

화사한 노란색이 주는 경쾌함과
출입구를 알 수 없던 가게는
번듯하게 새 단장을 했습니다.

이제는 칠에 대한 편견은
없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끝이 없는 욕심은
계약조건에도 없는 곳까지
범위를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초에 불을 붙인
한 자루의 시간이었습니다.

바람 앞에 흔들리고
언제 꺼질 줄 모르는
심지에 연명한 목숨이었습니다.

길게만 느껴졌던 하루,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몸의 고단함보다
보람을 찾지 못한
돈의 노예가 되어간다는 것이
슬프게 했습니다.

꿈을 저버린 오늘같이

내일은
똑같은 하루 일 거란 사실이
발목을 조여 오는
'올무' 같은 것이었습니다.

버둥거릴수록
목숨과 바꾸어야 하는 올무,

덫에 걸린 사람들이
푸념을 늘어놓는 선 술집에서
나는 나를 잊으려고
소주를 마셨습니다.

내 안의 결핍이
내 생을 송두리째 던져버린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집착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착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란
어설픈 노래에
반복된 후렴구가 좋다고
따라 부른 실수일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불우이웃인데 누구를 도와!"

친구의 농담이 생각나서
실어증을 앓는 사람처럼
그냥,
그냥 웃었습니다.

첫날은 여지없이 무너진
나의 몰골을 헤집고 있었습니다.

이튿날은
주방바닥 타일 작업이었습니다.

칠십은 되어 봄 직한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는

여자의 웃음소리와
일행이 있었을 거라는
야릇한 분위기를
전화 저편의 세상에서 읽고 있었습니다.

뜸하게 건 전화의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한 남자는
휴대전화부에
내 이름이 입력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루 거리의 일을 부탁하기가
점점 더 미안해지는 것은
묻고 또 묻고
그 남자의 나이 탓이라 치부하고
싶었습니다.

"화요일,
아침 8시에 현장으로 오세요."

그는 월요일이 다 지난 한밤에
문자로 주소를 보내달라 했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싶게 가자'

타일 일당을 맞추었습니다.

한번은
서울대학 근처의 횟집 공사를 했습니다.

타이기사를 일주일 전부터
날 일로 계약을 했습니다.

약속 전날은
아침에 몇 시에 만날 것인지
확인도 했습니다.

잡부를 한 사람 사서
아침 해장을 하고
새벽같이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약속 시각은 다가오는데
일을 맞춘 타일 기사는
도무지 연락되지 않았습니다.

똥줄이 탄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 같았습니다.

약속 시각이 한참 지나
수십 차례의 전화 끝에
타일 기사와 연락이 되었습니다.

그는 태연스럽게
자신이 맡은 현장의 사람이 안 나와
그곳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분노가 폭발해서
그 남자와 대판 싸움을 했습니다.

남의 현장은 묵사발을 만들어도
되는 건가요?

사람을 맞추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시간이었습니다.

아무 죄없이
하루를 공치는 심사야
날일 벌이를 나온 잡부도 피해자였습니다.

타일 공정 하나로
그 뒤를 따라 들어 오기로 했던
모든 사람이 일정에 차질을 빚었습니다.

그 남자는 자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까짓 하루 일당쯤이야 하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헌신짝이
나 자신이라는 것이 비참했습니다.

분노를 삭이지 못해
술 추렴이나 하지 생각했습니다.

잡부에게 하루 치에 절반의 노임을 주고
술이나 마시러 가자 했습니다.

그 길로 산속의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공주가 많았을까
'공주집'

수락산 기슭의 막다른 계곡
끝 집에는
나무장작을 패서 가마솥을 얹은
한식집이 있었습니다.

닭볶음탕의 국물이 얼큰하고
감자가 사근사근한 집이었습니다.

소주를 몇 병을 비웠는지
숫자를 다 헤아리지 못하고
계곡의 평상에 너부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늦은 오후에 다시 잠에서 깨어
다시 술 추렴을 했습니다.

"그래, 너희만 기술자냐,
나도 한번 해 보자."

다음 날 새벽,
어제와 똑같이 그 잡부와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동안의 눈동냥과
손기술을 본 이력이 얼마인데
나도 한번 해 보자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작한
생에 처음 붙여 본 타일 공사는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점점 살이 피둥피둥 찌듯
손에 익은 타일 공사는
이상하리만큼 일에 자신감을
붙여 주었습니다.

혹시라도 타일 일당이 결원되면
'내가 붙이면 되지'하는
심산이었습니다.

나이 칠십은 먹은 남자는
히말라야 원정이라도 떠날 사람처럼
이십 년은 묵은 배낭에
똥짐을 지고 약속 시각에 나왔습니다.

'주꾸미'

누가 들으면 공사장에 웬 주꾸미인가
생각하겠지만
이 또한 현장용어입니다.

사모레(모레와 시멘트)를 개어
구베(기울기)를 잡아 미장하고
압착시멘트를 묽게 풀어
바닥에 뿌리며 타일을 붙였습니다.

어째서 주꾸미라 하는지
그 어원은 아직도 미지수로 남습니다.

다섯 평 남짓 한 부엌 바닥을 붙이면서
잡부를 부르기가 뭣해
잡부를 대신해서 모레를 져 나르고
시멘트를 풀어 사모레를 갰습니다.

바닥의 군데군데
사모레를 져 나르는 것으로
타일 공사는 순항을 시작했습니다.

하루면 끝날 거라는 칠 공사가
이제 반이 남아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차에 실려있던
쓰레기를 폐기장에 버리고
시멘트, 모래를 사 오느라 바빴던 마음이
담배 한 모금으로 씻어 내렸습니다.

이제는
칠에만 전념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주인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칠을 하는 중에도
일을 재촉했습니다.

계약에도 없던 철 대문을
두 개나 찍어 붙이고
지하로 내려가는 출구의 캐노피마저
칠을 하라 밀어붙였습니다.

노란색 칠은
도마리(붓 자국)가
그렇게 많이 나는 줄 몰랐습니다.

두 서너 번이면 끝나야 할 칠은
같은 곳을 일고여덟 번이나 손이 갔습니다.

일에 지쳐 갈 때쯤,
짜증이 극에 달했던 것은
화장실 문짝과 벽을 칠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일을 고무 줄처럼 늘려주었으면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법인데
여자의 논리는 아이러니하게도

'페인트 조금 더 쓰면 되는 일이지 쩨쩨하다.' 했습니다.

빵집에 가서
'밀가룻값이 얼마라고 빵이 비싸냐?'

'밀가루 한 포 갖다 줄 테니
빵을 만들어 달라!' 할 사람이었습니다.

'본인은 갈비 이인분을 시키면
공깃밥은 공짜로 주었던가?'

지독하다는 것은
일방통행이었습니다.

타협할 줄 모르고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주머니만 보고
세상을 사는 겁니다.

여자의 고향은
남도의 바닷가 출신이었습니다.

전복 양식을 하는 아버지 덕에
돈푼이나 만지는
유복한 집의 맏딸이었습니다.

돈으로 세상을 살 것 갔던 생각은
강원도 남편을 만나
객지 밥을 먹으며
조선소에서 조선소로
떠돌이 살림을 했습니다.

여자가 억세면
대부분 남자는 팔푼이였습니다.

지방대 출신의 기계공학과는
연공서열과 학벌에 밀려
갈수록 직장생활이 어려웠습니다.

'이레선 안 되겠다." 하는 심정에
갈빗집을 시작했답니다.

남자는 결국 조기퇴직을 하였고
인건비를 아껴 보자는 심정으로
합류를 했습니다.

남자는 꼭두각시 마냥
여자의 등쌀에 눌려
시키는 일은 곧잘 했습니다.

나도 그녀의 남편처럼
우격다짐하면
얻어내리라는 계산법이었습니다.

기술자를 불러놓고
그녀가
지휘봉을 잡고 설치는 모양새는

'저런 꼬락서니를 보려고 기술자가 되었나?'
하는 비애를 느끼게 했습니다.

그렇게 이튿날이 저물었습니다.

사람은
이상한 감정의 소유자입니다.

지난 십 년,
손님으로 갔다가 맡은 공사였는데
칼자루(돈)를 손에 쥐 사람은
무섭게 변했습니다.

고작 이틀이었는데
사람에게 질릴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셋째 날이 밝았습니다.

짜증스럽게 다가서는
여자의 시선을 피해
묵묵히 일에만 전념하고 싶었습니다.

아침부터 사무실에서
그들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목요일에는
간판을 달기로 한 날입니다.

오늘 하루는 사무실 컴퓨터에서
간판 그래픽 작업으로 디자인을 협의하고
재료상에 발주해야 했습니다.

이제나저제나 하는 사이
시간은 오전 9시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전화했습니다.

여자는 간판 이야기가 쏙 들어가고
주방 타일이 아직 양생이 되지 않았는데
홀 바닥의 냉장고를 주방으로
넣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다시 현장으로 갔습니다.

문 여섯 개가 달린
매머드 코끼리 같은 업소용 냉장고는
주인과 나,
두 남자의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온다는 사람은 오지 않고
간판 디자인을 잡고 발주를 해야 할
시간은 목줄을 쪼였습니다.

약속 시각보다 한 시간 늦게 온
조카라는 남자와 셋이서
아직 양생이 되지 않은 주방과 홀의 경계석을
간신이 넘겼습니다.

조급한 마음은
간판 일당을 맞춘 까닭이었습니다.

일당으로 오기로 한 후배는
십 칠 년을 동고동락한 사이입니다.

해병대를 나왔다는 데
성격이 활달하고 무던한 친구였습니다.

처음 우리 사무실에 출근했을 때,

간판 일이 서툴러 기술을 가르치는
입장이었는데

어느새 기술이 늘어
지금은
서로의 눈빛만으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일하는 직업이라
입버릇처럼 늘 안전을 염려해 주고

후배는 일이 벅찰 때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 짜 짜 짜장가~~

만화영화에 나오는 노랫말처럼
나의  짱가였습니다.

아들 둘의 앞날을 밝혀주려
휴일도 없이 일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던 후배였습니다.

한 달이면 이십 일을 일당으로
일을 해 주던 후배였는데

프렌차이즈 간판 일에 돈을 띠이고
염증을 느껴
인테리어로 전업을 하고부터
한 달에 한 두번 부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약속을 어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약속을 어기면
후배는 하루를 공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 리 없는 여자는
자신의 일정에 맞추어야 한다는 논리로
밀어붙이고 있었습니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일정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늦은 점심을 순댓국 한 그릇으로
눈꼴사납게
선의를 베푼듯한 거만함을
참아 내고
사무실로 유도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 참자.
주려면은 홀딱 벗고
다 퍼주면 마음은 홀가분하지 않겠나?"

사무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어지럼증을 느꼈습니다.

'또, 어떤 까탈을 부릴까?'

진작부터 상호, 전화번호, 차림표를
달라고 했는데
기껏 그들이 가져온 것은
상호와 전화번호 뿐이었습니다.

기술인을 무시하는 처사에
창의적인 디자인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면
만사형통이지 않을까?'

6, 70년대에나 있을법한
흔한 간판 디자인에
그들 부부는 대만족을 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었지만
제 복을 스스로 차는 형국인 걸
굳이 아니다 아니다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70년대
길바닥에 네 놓는 A형 간판을 뺏기고
계약에도 없는
기둥 간판을 양보해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수족관이 문제였습니다.

어느 일요일 오후
사무실에 급한 서류작성이 있어
출근을 했습니다.

젊은 부부가 찾아 왔습니다.

이제 막 점포계약을 했는데
실내장식 견적을 봐 달라 했습니다.

여자의 말씨는
동북 3성의 말투가 묻어 나오고
남자는 한주먹 했을 것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제과 회사에 다니는 남편의 봉급만으로
돈을 모으기에는
빠듯한 살림이었습니다.

반찬값이라도 보태겠다는
심정으로 가게를 냈습니다.

도마에 다진 낙지를
한우 육회로 버무린 낙지 탕탕이를
주메뉴로
가게를 열었습니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음식이
가격조차 부담스러웠습니다.

옆집의 순댓국집은
점심 장사로 불티나는데
낙지탕탕이 집은 설렁했습니다.

한 가지만 고집하던 마음은
파리를 날리는 장사에 한풀 꺾이고
점심 메뉴를 들고 나왔습니다.

인식이 무섭다는 건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음식 맛은
손님이 먼저 알고

가격은
손님의 계층을 이미 선별하고 있었습니다.

전혀 만만치 않은 가격에
이 집은 '비싼 집'
하는 인식을 허물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다가
가게 수리비용이나 건져 볼 심산으로
육 개월 만에 권리금을 붙였습니다.

추석 명절 전날,
연휴에 들어가기 전에
한 통의 문자가 왔습니다.

"사장님, 바쁘시지요.
제가 애들 아빠가 가지고 온
초콜릿과 과자를 챙겼어요.
시간 되시면 한번 다녀가세요."

남편이 다니는
제과 회사의 과자 보따리를 챙겨주는
속정 깊은
조선족 아주머니였습니다.

낙지 수족관을
팔았으면 하고 말을 했습니다.

살 때는 80만 원이나 주었는데
30만 원에 팔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에누리 없이 그대로
갈빗집에 전한 말이었는데

이들 부부는 그 가격을 어떻게 하면
후려칠까 속내를 보이고 있었지요.

심지어는
나의 친분을 내세워
가격 흥정을 시키려는 모양새가
몹시 불쾌하게 느껴졌습니다.

'거지 똥구멍에서 콩나물을 건져 먹는다.'
고 하더니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는
인면수심이었습니다.

더 이상은
인격을 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 부부가 물러가고
맥이 풀렸는지
모든 만사가 지겹게 느껴졌습니다.

아끼는 후배를 보려면
간판 일을
이제부터 시작해야 했는데

도무지 일의 의욕이 없었습니다.

재료상에 발주하고
실사 출력소에 디자인을 보냈더니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거래처도 돈을 위해 일을 하겠지만
퇴근을 미루고
기꺼이 일해 주겠다는 마음이

십 수년 동안 쌓아왔던
신용이 아니었으면
가당키나 한 일이었겠습니까?

약속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는지
모를 겁니다.

왜,

그들은 자신의 주머니 속만 보고
돈의 논리로
자 때로
세상을 저울질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험한 꼴을 보고
한푼 두푼 모은 재산이었다면

처지가 똑같은 사람들에게
자선과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일을 시작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는 법입니다.

지난 일을 두고 생각하면
고민과 갈등도
모두가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돌아갈 길을 보고
앞으로 한 걸음 전진한 사람처럼

우리는 집에 두고 온 가족들을 위해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뜻만 같지 않겠지만

우리는 소소한 일상에서
보람을 찾으려고 일을 하는 겁니다.

결코 놓아 주고 싶지 않은
메아리의 끝을 잡아
끝없는 욕심으로 사는 것인 줄
알게 됩니다.

지금껏 그래 왔듯이
또다시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 겁니다.

가족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무명의 헌신은
유독 나에게 초점을 맞춘
궁핍의 산물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매운 갈빗집에는
어느새 테이블을 가득 채웠습니다.

앞 접시에 갑옷을 벗은 새우 하나
통 오징어 두 점
뼈가 튼실한 왕 갈비 한 점

그리고 곁들여 먹어보라

국물을 수저로
자꾸
자꾸만 떠 안기는
그 하나의 동작으로
나는
묵묵히 기다려 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어느새 땀은 맺히고
포만감이 밀려 왔습니다.

지난 한 주의 스트레스는
소주에 따른 땀방울들의 이슬이었는지
한없이 맑아 보였습니다.

술병이 비면
다시 채울 수 없는
공허감으로 남겠지만
새 술병을 주문할 겁니다.

취기가 얼큰하게 올라
양푼이 비워 갈수록
알 수 없는 공복을 느낍니다.

스파게티 사리에
공짜로 따라온다는 치즈 사리를 기대하며
여기까지 잘 참아 왔구나
마음을 달래 보았습니다.

때로는 묵묵히 걸어가는 길에
돌부리에 체이고 넘어지겠지만
우리는 오뚝이입니다.

허리가 분질러 지기 전에는
넘어질 수 없고
아니,
넘어져 본 적이 없는 오뚝이랍니다.

그것은 가족의 중심에 눌러앉은
아버지로
연로한 부모의 자랑
아들로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일찍이 걸었을 이 길을
그림자를 쫓아 갑니다.

어느 날,
내 어린 날의 추억에서
아버지가 지워졌을 때의 상실감보다

나 또한 어른이 돼서
늦은 밤
집 앞 골목길에서 만난
취기가 오른 아버지의 손은
따뜻하게 기억합니다.

가을입니다.

끝없이 높고 청명한 하늘은
해맑은 푸름을 한 아름 안겨 줍니다.

누구나 잠시
시선을 주면 열리는 하늘이지만
저마다의 하늘은 다를 겁니다.

자신의 아집이나 독선이란

저 홀로 무인도에 버려진
혼자만의 삶 속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말 일 겁니다.

아집과 독선이란

섬으로 찾아온 연락선이
고립을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의 연대감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겁니다.

그것은 고립이 아닙니다.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나무가 될 수 없다면

새의 발자국을 찍어놓은
무인도의 바닷가에 모레 알이 될 수 없다면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천 년 바위의 침묵을 깨고

우리는 인간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낙조♥♥♥


아무르박


나 차라리
저 바다를 베고 침묵을 배운
칼이 되리다

저 홀로 떠밀려 와
부서지는 파도는 아니다

소리에 부서지는 바위는 아니다

깜깜한 밤,
먹구름을 지치고
달빛에 베이고

은사시나무
바다 위에 너풀거리는
물새 한 마리의 날갯짓에 베이고

희망의 돛을 펼친
수평선 위에 한 점으로 베이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밤에
별똥별에 베이고

칼은
단 한 번도 칼집을 떠난 적이 없다

칼집을 베지 못한
천형의 그리움을 베지 못했다

서슬 퍼런 가슴이
바다에 끝이 닿으면
바다를 떠나 내 심장을 가를 뿐이다

끝까지 읽어주신 고마운 분께
제 시 한편 놓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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