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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그녀의 백팔십도 회전하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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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memaa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45회 작성일 15-10-29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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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이와 강혁은 레스토랑 정식을 주문해 먹고 있었다. 도현은 강혁의 테이블로 가서 악수를 청했고, 악수를 나눈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곧 식사를 주문했었다.

“강혁 씨와 친하게 지내야 할 것 같아서 만나자고 한 겁니다.”

도현이 만나자고 한 용건을 입에 올렸다.

“전 번 일이 마음에 걸리더군요. 줄곧.”

“아, 아니에요. 오해 없기를 바랬죠. 늘상 바래다 주던 버릇이 나온 거죠.”

도현의 의외의 사과에 강혁은 다행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그 일로 은서가 오해 사지 않았을까 내심 걱정했었다.

 

 

“부럽더군요. 두 사람의 우정이 연애 수준 같아서요. 아, 곡해하지 말아요. 말 그대로 부러워서 한 소립니다. 내겐 우정을 돈독히 할 만한 이성친구가 없었죠.”

“아, 그러세요.”

“예. 그 우정 평생 가기 바래요. 진심입니다.”

강혁은 새삼스럽게 도현을 응시했다. 사악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는 도현의 표정에서 그가 은서와 친구 관계를 정리하라는 말을 그렇게 돌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제 도현 씨가 있는데, 예전 같아서는 안 되죠. 또 안심이 되고요.”

 

 

강혁은 은서를 도현의 애인으로 인정하겠으며, 포장마차 앞에서와 같은 짓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말했다. 친구보다 도현의 애인으로 은서를 대하겠다고 밝혀주는 것이 만일을 위해 안전한 조치일 것이었다. 도현이도 남자인지라 지금은 저렇게 말해도 언제 태도를 바꿀지 모르는 일이다. 강혁은 남자들의 소유욕을 알고 있었다.

“아니에요. 은서와 지금처럼 잘 지내 주세요. 은서의 행복 중에 친구 강혁 씨도 포함되었으면 하거든요. 난 은서의 사생활을 존중할 겁니다. 그렇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깨달은 바가 많아요. 그러니, 은서와 편하게 지내세요. 난 강혁 씨를 은서의 가족으로 여길 테니까요. 알았죠?”

“가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은서와 난.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저도 마음 편안하네요.”

강혁은 부담감이 좀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커피를 마셨다. 원두커피의 고소하고 향긋한 맛에 입안이 개운했다.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조지윈스턴의 [겨울에서 봄으로]가 아늑한 홀을 떠다녔다.

 

 

“저기, 강혁 씨?”

도현이 아까부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예. 말씀하세요.”

“내가 은서에게 오피스텔을 얻어 주면, 은서가 자존심 상해 할까요?”

강혁은 깜짝 놀랐다. 은서의 어머니께서도 은서의 거처 문제로 그를 불렀었다. 강혁이 자신도 은서가 옥상 한 귀퉁이에 달랑 얹어 있는 듯한 옥탑방에서 사는 것이 늘 불안했었다.   범죄자가 대문을 넘어 침입하면 다른 층집에 비해 옥탑방은 곧바로 위험지대가 될 것이다. 강혁은 은서가 이사하던 날 옥탑방의 모든 창문과 현관문에 방범창살을 이중으로 설치해 주었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돼 주기적으로 은서 집을 방문하고 있었다.

 

 

“왜요? 결혼할 생각은 없으세요?”

도현은 은서 어머니와 달랐다. 도현이 은서를 사랑한다면, 오피스텔을 얻어 주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해 같이 사는 방도를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도현의 입술에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놀라우십니다. 그냥 넘어가는 것이 없군요. 괜히 당혹스럽네요. 음, 난 은서와 결혼할 생각이에요. 그 전에 은서를 지금보다 나은 곳으로 옮겨 주고 싶어서 강혁 씨 의견을 물어보는 겁니다. 은서가 자존심 상해 하면 안 되잖아요. 결혼할 땐 내가 앞장 서서 자존심 상하지 않게 해 줄 겁니다만, 지금은 집을 옮기는 문제라 조심스럽네요.”

“결혼은 언제쯤 할 생각인데요?”

 

 

“아직 은서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집을 옮겨 준 후 곧바로 일정을 밟아 갈 예정이에요. 물론 은서가 동의해 주면요. 부모님에게 인사를 시키고, 약혼식을 하고, 결혼식을 올리는 일정입니다. 그 과정은 순탄할 겁니다. 이제 안심이 되세요?”

“안심이 안 돼서 물어본 것이 아니에요. 의도가 뭘까 싶었죠.”
“그럼, 이제 대답해 주세요. 내가 은서에게 오피스텔을 얻어 줘도 괜찮을까요?”

강혁은 남은 커피를 한꺼번에 들이키고 대답했다.

“은서, 아파트로 이사갈 거에요. 그러니 예정된 일정을 밟아 가면 될 것 같아요. 후원회에서 아파트 두 채를 임대했는데, 그 중 한 채가 은서에게 주어졌답니다.”

“아, 그래요. 정말 잘 됐네요.”

도현은 자존심 강한 은서가 불쾌하게 여길 것 같아 강혁에게 자문을 구하고자 만난 것이었다. 임의대로 오피스텔을 얻어 놓고 은서 짐을 옮겨 버릴까로 고심했었고, 은서를 앞에 놓고 진지하게 설득해 볼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강 둔치에서 보여 준 은서의 단호한 결단은 동조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강혁이와 의논해 방을 얻었다면 은서가 받아들이는데 상대적으로 용이할 것 같았던 것이다.




“장도현 씨라고 알아요?”

영주 입에서 도현의 이름이 나오자 은서는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들어온 영주는 커피를 타 오라고 하더니, 커피를 놓고 나가는 은서를 불러세웠다. 그리고 한 말이 도현을 아느냐는 것이었다.

“예. 세르비아호텔 기조실장님으로 알고 있는데요. 왜 그러시죠?”

은서는 영주의 의도를 몰라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도현이와 사귄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았으나, 그것이 상사에게 트집 잡힐 일은 아니라고 은서는 생각했다.

“개인적인 친분은?”

영주는 가잖다는 듯한 눈에 추궁조의 어투였다. 

은서는 불쾌했다. 자기가 뭔데 무시부터 하고 나오나 싶은 것이었다.

 

 

“제 사생활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꼭 팀장님의 질문에 대답해야 하나요?”

“팀장으로서 알고 싶은 것이 아니에요. 사적인 관심이죠.”

영주는 예상 외로 강단 있는 은서에게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비웃음을 입술에 걸었다. 자기 처지도 모르고 날뛰는 은서였다. 영주 눈에는.

“만나고 있는 남자입니다.”

은서는 내키지 않았으나 간략하게 대답했다. 단순한 호기심을 비아냥대듯 물을 수 있는 영주였다.

“그러니까, 애인 사이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이제 나가서 제 일 해도 될까요, 팀장님?”

은서가 돌아서려는데 영주가 말을 이었다.

“나에 대해 알고 있었죠?” 

영주는 묻는 것이 아니고 확신하는 목소리였다.

 

 

“예?”

“우리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날 알고 있었을 거예요. 맞죠?”

은서는 거머리가 얼굴을 기어가는 것 같은 영주의 시선을 느끼며 미간을 좁혔다. 얼토당토 않는 얘기를 무슨 수사관처럼 지꺼리는 영주가 이해 불능인 은서였다.

“이전 질문과 연관된 물음이세요? 아니면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사전 정보를 가지고 들어왔나 여쭤 보는 거예요?”

아주 맹랑하군. 영주는 시치미를 떼는 은서의 낯짝을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우리 밖에 나가서 얘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어요. 회사에서 할 얘기가 아닌 것 같군요. 퇴근 후에 로즈에서 잠깐 볼까요?”

“왜 그러시는데요?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글쎄요. 이따 거기서 보죠. 그만 나가 보세요.”

영주의 경멸에 찬 눈을 뒤로 하고 은서는 팀장실을 나왔다. 도현이와 사귀는 것을 불쾌하게 간주하는 것이 분명했다. 면접관이었던 빈우가 제기한 빠른 결혼과 퇴사 우려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은서는 오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무슨 일 있니?”

탈의실에서 만난 미애가 은서의 기분을 읽었는지 물었다.

 

 

“아니야, 언니.”

은서는 잠시 후에 있을 영주와의 만남에 신경이 쏠려 있어 미애의 걱정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미애가 재차 물어오자 은서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미애가 팀장의 변덕을 씹기 전에 입을 벌리며 감탄했는데, 그 이유는 은서가 대단한 남자와 교제 중이라는 대목 때문이었다.

“신데렐라 얘기가 언론 매체에서만 보는 얘기가 아니네. 역시 예쁘고 쭉쭉빵빵한 몸매는 그 가치를 한다니까. 부럽다, 한은서!”

“언니는! 내가 뭐가 예뼈. 쭉쭉빵빵은 무슨. 속살이 장난이 아닌데. 어쩌다 마주친 그대 라는 노래 알지?”

“알지. 알고말고.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 하는 거. 그 왕자님이 너한테 그렇게 된 거니? 마음을 빼앗겨 버렸대?”

“아니, 오랜 시간 마주쳤었대. 난 몰랐고.”

“계집애, 선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왔구나. 인과응보 라고, 신께서 네게 축복을 내린 거다. 하긴 널 보는 순간 네 얼굴에 씌어 있더라. 좌절을 모르는 계집애입니다 라고. 너 그 왕자님한테 시집 가면 그 호텔 스위트룸에서 나 하룻밤만 신세 좀 지자. 공짜로.”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미애가 짐짓 아첨하듯 말했다.

 

 

“만난지 얼마 안 됐어, 언니. 결혼 얘기는 아직 이르지.”

“하여간?”

“만일 결혼하게 된다면.”

“고마워, 미스 한. 약속한 거다?”

은서는 도현이와 결혼까지 하게 될까 하는 의구심이 얼핏 스쳤지만, 도현의 태도를 봐선 불가능할 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일었다.

“어, 그래 언니. 그런데 언닌 버닝 중인 남자 없어?”

“있지, 내가 열중하고 있는 남자. 그런데 너처럼 호텔 회장을 아버지로 둔 왕자님은 아니야. 동사무소 공무원이거든.”

하지만 미애는 그 남자를 떠올리며 살포시 미소 지었다.

“있었구나. 기회 되면 소개 시켜 줘. 천사 언니를 애인을 둔 남자는 너무 근사할 거야.”

“그래, 근사해서 그만 보면 내 심장이 콩딱거린단다. 그런데 진짜 팀장 그 년 너한테 왜 그러니? 노처녀 히스테리라면 얼른 시집이나 가던가. 남자가 없으면 또 몰라요. 미국에서 건너 온 K 마트 할인점 너도 알 거야? 그 회사 사장이 우리 팀장에게 혹 해서 온갖 공을 다 들이고 있잖아. 자수성가에다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극찬을 한 몸에 받고 있고, 거기다가 생긴 것도 바람둥이처럼 잘 생긴 남자가 우리 얼음 공주 팀장의 어디가 좋아서 비위 맞추느라 애 쓰는 지 모르겠더라.”

 

 

미애가 빈우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은서는 호기심에 물었다.

“그 사장님과 팀장님 애인 사이야?”

“같은 분모로 분자를 머리에 위는, 그런 류의 뜨거운 사이는 아니지만, 애인 사이 맞아. 팀장이 극진한 정성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더라고. 하여간 팀장 년이 괜한 생트집 잡고 발광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버려라. 어찌 팀장 얼굴에 사표를 내던지라고 말할 수 있겠냐. 나도 그러지 못한 주제에. 그러고 와서 나랑 팀장 이빨 갈리게 씹자, 알았지?”

뽀쪽한 대안을 제시해 주는 미애는 아니지만 은서에게는 먹구름 사이로 살짝 비치는 태양처럼 밝아지는 기분을 잠깐이나마 갖게 해 주는 멋진 동료였다.    

회사 빌딩을 나서며 미애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참, 그 남자, 세르비아호텔 회장 아들이라고 그랬지?”

 

 

“응, 언니.”

“예전에 세르비아호텔 사장님을 내가 좀 안다.”

“그래요.”

“응. 그 호텔 역사에 불행한 과거가 있어. 미스 한 남자완 상관 없지만. 호텔을 경영하던 사장 마누라가 뒷구멍으로 돈을 빼돌려, 결국 남에게 호텔을 넘겨 주고 말았다는 얘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장 마누라의 파렴치한 작전이었대. 채권자들에 의해 처분된 줄 알았던 호텔을 인수한 것은 그 마누라였대. 빼돌린 돈으로 타인을 통해 자기 남편 호텔에 돈을 빌려 준 거래. 남편은 펑펑 쓰고 다니는 마누라 빚 갚느라 정신없을 때, 마누라는 그 빚을 받아 호텔을 자기 수중에 넣을 계략을 꾸미고 있었던 거지. 남편이 결국 부도 처리를 하자 이혼하고 제 삼자를 통해 호텔을 매입한 거래. 하지만 호텔 오너로 취임하진 않았대. 저도 염치가 있었나 보지. 어떻게 그 사실을 안 호텔 사장은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 속에서 작업을 하다가 그만 사고로 돌아가시고 말았지. 아주 밑바닥에서 연명하고 있었나 봐. 일용직으로 일하는 곳에서 작업을 하다가 사고가 난 거라고 들었거든.”

 

 

“그 후엔 어떻게 된 거래, 언니?”

은서는 가슴이 철렁해서 다급하게 물었다. 도현의 고모가 뇌리를 스쳤던 것이다.

“아주 오랜 전 얘기야. 내가 초등학생일 때 들은 얘긴데, 갑자기 생각나서. 그 후엔 어떻게 됐는지 나도 모르겠어. 엄마가 그 호텔에 대해 소식을 듣고 오는 날엔 분통을 삭이지 못했거든. 그래서 기억하고 있는 거야. 아마 네가 만난다는 그 남자 집에서 그 여자로부터 호텔을 인수받지 않았을까 싶어. 세간의 눈이 있는데, 호텔 경영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냐. 팔아 넘겼겠지.…….”

은서는 도현의 고모가 부동산중개업을 했고, 구입한 땅값이 올라, 보증을 잘 못 서는 바람에 호텔을 잃고 운명을 달리한 고모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그 호텔을 사들였다는 것을 상기했다. 미심쩍긴 했지만, 미애가 말하는 그 부도덕한 여자가 도현의 고모는 아닌 것 같았다. 우연찮게도 호텔 경영주에 대한 재앙이 연거푸 터졌구나 싶었다.

“미스 한?”

 

 

“어, 언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내가 쓸데없는 얘길했나 봐. 가끔 내가 할 얘기 안할 얘기 분간을 못한다니까. 미안해, 미스 한. 뇌리에 박혀 있던 호텔이라 나도 모르게 그만 수다가 길어졌네. 충분히 액땜한 호텔이니까, 미스 한 남자네가 인수한 후부턴 번창 일로를 걸었을 거야”

“괜찮아, 언니. 나쁜 뜻으로 한 얘기도 아닌데 뭐.”

은서는 미애의 심성을 알고 있는 터라 그냥 생각나서 한 얘기임을 간파했다.

미애와 헤어지고 근방의 로즈 라는 바로 들어가며, 은서는 세르비아호텔의 역사에 대해 잊어 버렸다. 아니 굳이 기억해 두고 되새겨 생각할 일도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들의 일이었고, 만에 하나 도현의 고모 얘기라고 해도 그녀가 상관할 바가 아닌 일이었다.




영주는 스탠드 앞에 앉아 마티니를 홀짝이고 있었다. 은서가 옆에 앉자 힐끗 돌아보더니 바텐더에게 같은 걸로 달라고 주문했다. 영주는 첫 잔이 아닌지 얼굴이 불그스레 했다.

“정말 나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바텐더가 은서 앞에 술잔을 놓고 가자 멀거니 생각에 잠겨 있던 영주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팀장실에서 끊겼던 대화를 곧장 이어가는 영주였다.

“제가 팀장님에 대해 사전 지식을 갖고 입사해야 할 연유가 있나요?”

은서는 여전히 앞 뒤 자른 영주의 질문에 의문을 갖고 반문했다.

영주는 치미는 울분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 새내기 후배는 어땠었나. 언니 언니 하며 감춘 것 하나 없다는 듯 최후의 순간까지 소탈하고 다정하게 굴었었다. 붙임성 좋고 밝은 빛을 발산하던 야무진 아이. 영주는 캠퍼스에서나 동아리방에서 유독 그녀에게만 친근하게 달라붙던 그 아이가 마음에 쏙 들었었다.

귀엽고 예쁜 아이, 영주는 평민들은 상종하지 않았지만 예외적으로 그 아이는 곁에 두었다. 워낙 믿음성 있게 행동해서 영주는 그 아이를 친 동생처럼 생각했고, 쇼핑하는 데도 데려가고 전문 마시지센터나 헬스장에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카드도 만들어 주었었다. 도현을 만날 때도 자주 데려가곤 했었는데, 그 아이는 도현에게도 친 오빠처럼 스스럼없고 친밀하게 굴었다. 

도현이와 그녀 몰래 은밀히 만나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도현이와 가까워지기 위해 일부러 그녀에게 접근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의 영악함에 얼마나 기암했던가. 그러나 도현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도현이 그 아이의 꾀임에 넘어 간 줄 알았는데, 그 아이가 해명하기를 도현이 유혹했다는 것이었다. 도현이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영주는 은서를 처음 본 날, 그 아이가 헤집고 간 망신창이가 된 기억이 오버랩되던 것을 떠올렸다. 육감은 무섭다. 이런 악몽을 잉태한 여자라는 것을 감지한 자신의 육감이 영주는 끔찍하게 싫었다. 과거의 상처로 생긴 병적인 경계심, 솔직히 그 정도에서 그치길 바랬었다.

“장도현 씨, 그가 나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점점 높아지는 음계처럼 영주의 목소리가 상승 기류를 탔다.

역시 도현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영주가 하고 있었다.

“도현 씨가 왜 팀장님에 대해 내게 말을 해야 하는데요?”

“아주 잘 구슬러 놓았군.”

영주는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옛?”

“그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을 모를테니, 잡아뗄 수 있는 거겠지. 이봐, 한은서 씨. 장도현 씬 당신 같은 여자들은 엔조이 상대로만 갖고 논다고. 내 말 새겨 들어.”

도현이 그 아이를 단칼에 버리고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할 때, 그 아이는 노리개였던 자신을 후회하며 너무 늦은 참회의 눈물을 쏟았었다. 그리곤 귀향한다며 사라져 버렸고, 영주의 복수는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끝을 모르는 날개를 달았었다.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네요. 엔조이 상대라뇨? 저 그런 여자 아니예요. 아무 남자나 만나는 여자가 아니라고요. 도현 씨가 어떤 사람으로 오르내리는지 모르지만, 내 판단은 도현 씬 믿어도 되는 사람이었어요. 편견을 갖고 내게 그것을 믿으라고 강요하진 말아 주세요. 사람은 상대적이죠. 악질을 만나면 악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선량한 사람을 만나면 같이 선량해 집니다. 난 도현 씨가 전자의 경우였다면, 이제 후자의 경우로 변했다고 감히 장담할 수 있어요.”

은서는 영주의 핵심을 파악하고 내심 놀랐지만, 설령 도현이 그런 인물로 살아왔다고 해도 그녀에게 보였던 많은 모습들과 진심 어린 말들로 유추하건데, 그는 변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 작업 중인 과정의 도현을 본 것이었다면,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