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녀의 백팔십도 회전하기--11 > 소설·수필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소설·수필

  • HOME
  • 창작의 향기
  • 소설·수필

☞ 舊. 소설/수필   ♨ 맞춤법검사기

 

 

모든 저작권은 해당작가에게 있습니다.무단인용이나 표절을 금합니다

[소설]그녀의 백팔십도 회전하기--11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memaa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94회 작성일 15-10-30 01:47

본문





                  4. 운명의 소용돌이




“그만 일어나요, 도현 씨!”

은서는 진심으로 참회하는 도현을 용서했다. 그러자, 도현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무릎을 꿇었어. 은서는 속상한 감정이 누그러들자, 도현의 충격적인 행동이 그제야 제대로 느껴졌다. 단 번에 자존심을 버릴 수 있는 도현이라면 그의 사랑을 믿어도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도현이 또한 무고함을 행동으로 옮겨 버리는 그녀를 신뢰하게 되었을 것이다. 오해 하나가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감정을 극명하게 드러내 준 것 같아, 은서는 서서히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사랑해, 은서아! 은서를 잃는 줄 알았어.”

도현이 흠뻑 젖은 은서를 와락 끌어안았다. 도현이 이름 뒤의 존칭을 생략하자 친밀감이 느껴졌다. 그 둘을 휘감으며 빗줄기가 몰아쳤다. 은서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으면 이렇게 도현 씨 품에 안기지 않아, 은서는 속으로 속삭이며 그를 마주 끌어 안았다.

 

 

도현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의 입술이 부드럽게 밀착해왔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빨아당겼다. 알 수 없는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그의 뜨거운 혀가 그녀의 입술 사이로 깊숙이 들어왔다. 은서는 격렬하게 반응하는 세포의 움직임에 눈을 감았다. 달콤하고 깊은 입맞춤에 몸을 맡기며, 은서는 망각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차 안은 히터를 틀어서 금세 따뜻했다. 히터의 열기가 아니었어도 추운지 몰랐을 것이다. 그녀의 입술을 오래도록 탐닉한 도현이 부드럽게 손을 잡고 차로 데리고 들어왔다.

“내가 머물 곳은 단 한 곳이지. 바로 은서!”

그가 다시 얼굴을 감싸 쥐었고, 뜨거운 입술을 부딪쳤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격렬함과 거침없이 파고드는 혀의 뜨거운 감촉에 은서는 아찔한 전율을 느꼈다. 그가 그녀의 귓불을  입 안으로 삼켰다. 그가 귓불을 빨고 깨물자 달콤한 아픔이 느껴졌다.

그의 입술이 목덜미를 해맸다. 그의 입술이 지나가는 목선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났다. 젖혀지는 의자에 은서의 몸은 뉘어졌다.

 

 그가 비에 젖어 몸에 달라붙은 블라우스를 걷어 올리고 브래지어를 벗겼다. 그의 손이 가슴과 유두를 스치자 은서는 훅 숨을 들이마셨다. 다시 블라우스를 입히자 유두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도현의 입술이 블라우스 위에서 거칠게 움직였다. 은서의 입에서 가쁜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허리가 달콤한 갈증에 활처럼 휘어졌다.

스커트 속으로 들어간 그의 손가락이 이미 촉촉해진 여성을 부드럽게 만졌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은서의 신음 소리가 커지며 허리가 리듬을 타듯 흔들렸다. 스커트가 허리에 둘둘 말리고, 속옷이 다리를 빠져 나갔다.

그가 그녀의 허리를 움켜 쥐었다. 그의 입술에서 뜨거운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은서는 일순 허리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가 강하고 거세게 그녀 안으로 들어왔다. 촉촉이 젖은 여성이 부드럽게 그를 맞아 들였다.

 

 

은서는 그의 어깨를 꽉 잡았다. 믿을 수 없는 희열이 아래쪽에서 용솟음쳤다. 은서는 육감적인 그의 거센 공략에 그를 감싼 깊은 곳의 근육이 강하게 수축되며, 타는 듯한 쾌감이 전신을 훑는 것을 느꼈다. 그 기세는 계속 이어졌다,

은서의 깊은 곳을 누비고 격렬하게 밀어붙이는 그의 남성이 오롯이 느껴질 때, 은서의 허리가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은서의 허리가 그에게 다가갔고, 그가 더 깊숙이 들어왔다.

은서는 그의 머리카락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었다. 가쁜 신음 소리를 토하던 도현이 뜨거운 입술을 열정적으로 포개왔다. 은서는 그의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넣었다. 그의 입술이 강하게 빨았고, 은서는 그의 엉덩이가 격렬하게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

“말해 줘?”

도현이 몸을 떼지 않고 부드럽게 안았다.

“무엇을요?”

 

 

“사랑한다고.”

“사랑해요. 사랑해요, 도현 씨.”

불꽃을 일으키던 그가 깊은 곳에서 빠져나갔다. 달콤한 아픔에 움찔하는데, 그의 뜨거운 손이 오래도록 어루만졌다.




“그가 누군지 알고 싶어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은서는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 일은 논할 가치도 없는 사안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해명해 줄 필요는 있을 것 같았다.

“별로.”

도현이 손을 뻗어 그녀 이마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회사 동료거나 지인이거나 하겠지. 잊어버리자고.”

도현이 말갛게 웃었다. 이제 그런 함정에 빠질 일은 없을 거라는 듯이.

 

 

“맞아요. 면접관이자 우리 팀장님의 남자친구, 혹은 애인이에요. 팀장님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길래 차를 얻어 탔고, 오는 동안 그 얘기를 나누웠어요. 갑자기 비가 쏟아져, 우산을 준비 못했는데, 그것을 알고 돌려 달라며 우산을 빌러 준 거에요. 이렇게 시시한 일로 도현 씨가 오해하는데, 내가 화 안 나겠어요. 끝장 내려고 한 거, 모르죠.”

도현이 과장되게 놀란 척 했다.

“이런, 끝없는 장마가 내 가슴에 시작될 뻔 했네. 끝장 안 내 줘서 고마워, 은서.”

“뭐예요? 반성한 기미가 전혀 안 느껴져요?”

도현이 싱긋 웃으며 은서의 코를 콕 찔렀다.

“무서워, 한은서. 내 심장을 가져갈 뻔 한 거 모를 걸. 덕분에 내 머릿속이 헹거진 것 같아. 이 귀여운 아가씨의 강단 있는 처신 때문에.”

 

 

“어떤 여자든 나처럼 했을 텐데요, 뭐. 오해는 곧 파멸의 시작이라던가요. 사랑이 약하면 별 짓을 다 해도 믿지 못한다더군요. 앞으로 그런 마음으로 도현 씨 지켜볼 거예요.”

도현이 웃음을 거두며 숨을 들이마셨다.

“설마 아직도 날 믿지 못한 거야? 아니지?”

“도현 씨가 날 믿어도 된다, 이런 말 같은데, 그렇게 안 들리나요.”

도현이 껄껄 웃었다.

“그렇게 들렸거든, 사실.”
“치…….”

은서는 토라진 척 콧방귀를 뀌고 그를 외면했다. 그의 손가락이 머리카락 속으로 들어오더니, 이내 강하게 그의 쪽으로 당겼다. 그의 입술이 순식간에 그녀의 이마를 눌렀다.

 

 

“사고나면 어쩌려고?”

“안 나! 아무도 우릴 데려가지 못하거든. 그 어떤 신도.”
“치, 자기 마음대로야.”
“하하하, 신이 정한다는 운명 같은 거지. 갓 태어난 아기에게 일정 기간 자기면역이 있듯이, 새로 탄생한 커플에게도 그런 기간이 있는 거지. 그래서 아까 은서에게 매달리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거지. 그랬던 거지.”

“별로 안 웃기는 것 같네요, 거지 거지 하는 그 말투. 별로 안 차네요, 자기 면역 자기 면역 하는 그 논리. 하지만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건 잘 한 일이에요. 이상!”

은서는 분위기를 유쾌하게 하려고 애쓰는 그에게, 위안을 줄만한 말 한 마디를 해 주어야 할 것 같아서 얼굴이 붉게 물드는 말을 끼어팔 듯 툭 던졌다. 어느 순간 도현의 따뜻한 손이 그녀의 손을 꼭 쥐어 주었다.     

동네에 접어들자, 체증처럼 느껴지는 영주가 불현듯 떠올랐다. 빈우의 추리가 사실일까. 영주의 옛애인이 바람이 나서 영주를 배신했고, 영주는 배반한 애인과의 과거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그때의 울분을 폭발시키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망상 같았다.

 

 

“도현 씨, 우리 팀장님에게 과거가 있었대요.”

은서는 도현의 조언을 구하고자 불쑥 입을 열었다.

“아, 아까 팀장 남자친구인가 혹은 애인인가 하는 남자와 나눈 얘기? 그런데 친구면 친구고, 애인이면 애인이지, 혹은은 뭐야?”

“분명치 않아서요. 그건 별 거 아니고요, 팀장님이 특별한 사유없이 날 무지 예뻐한단 말이에요. 달갑지 않을 정도로. 얼토당토 않는 예상인데, 내가 팀장님의 과거애인의 무엇을 떠올리게 해서 날 보기만 해도 욕망이 느껴지는 걸까요. 예뻐해 주고 싶은 욕망이요?”

도현은 무심코 물었다.

“어느 부서 팀장인데?”

“홍보팀이에요. 박영주팀장님이라고.”

도현은 불이 바뀌는 신호등을 하마터면 놓치고 그대로 질주할 뻔 했다. 애써 은서와 그녀를 관련 짓지 않으려고 은서 회사 생활에 대해 전혀 묻지 않았었다.

그런데 하필 은서가 홍보팀에서 근무하고 있을 줄이야. 그리고 지금 은서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이유 없이 미워한다고? 왜지? 은서는 그 영악한 여자를 전혀 닮지 않았다. 그렇다면 영주가 나와 은서가 교제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반증인가. 어떻게 알지?

 

 

도현은 차를 출발시키며 격앙되는 감정을 숨기고 물었다.

“팀장의 과거 남자의 여자라면, 그 남자가 팀장을 배신했다는 얘기인가? 다른 여자가 생겨서 말이야?”

“팀장의 남자 친구 혹은 애인되는 남자, 참 그 남자 K 마트 사장님이래요. 그 사장님이 그런 추론을 하더라고요. 팀장님이 퇴근하는 나와 그 사장님이 면접에 관해 잠깐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그것을 본 팀장님이 과민한 반응을 보였거든요.”

영주가 만나는 남자라고? K 마트 사장. 왠지 낯이 익은 얼굴 같았었다. 경제신문이나 잡지 따위에서 보았을 것이다. 도현은 언짢은 감정이 스치는 것을 묵과했다.

“이해가 안 되는데. 과거 애인이 바람 났었고, 그리고 은서의 무엇이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 애인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건 팀장에게도 문제가 있었던 거 아닐까. 홍보팀장이라면 회장의 딸로 알고 있는데, 오직 못 났으면 자기 아버지 회사를 위해 근무하는 직원에게 옛 감정을 치료하려 하겠어. 그런 여자이기 때문에 과거 애인이 떠나버린 거겠지. 하지만 납득이 안 되는 추론인 것 같아. 이해가 안 돼. 대리 역할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은 없어. 기억 속에서 고통을 주는 사람이 주변의 누구를 통해 되살아나고 묵은 분노를 그 사람에게 폭발시킨다? 싸이코가 아닌 이상 그 정도의 분별력은 인간의 기본 소양이잖아.”

 

도현은 슬금슬금 치미는 어떤 울화를 억누르려고 애쓰며 말했다. 하지만 애증의 그림자는 파괴 의식을 충동질하고 있었다.

“그렇죠? 나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대체 왜 그토록 날 예뼈할까요?”

은서는 영주를 아는 도현을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상류층 사람들 사이에 그 정도의 정보는 공유하고 사는 것이 일반적일 것 같았다. 빈우가 누구라고 하자 기억을 더듬더니 금세 떠올리는 눈빛이었었다. 썩 좋은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글쎄, 트레이닝 차원이 아닐까. 신입을 훈련시키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 은서에게 못 되게 구는 건 그 중 하나일지 몰라. 내 생각엔 과거 애인이 바람난 것 같진 않거든. 그리고 은서가 그 경쟁 여자를 닮았다는 건 억지 이론 같고. 팀장이 아직까지 그 과거 애인을 잊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당시에 집착이 굉장했을 것 같아. 욕심도 대단했고, 증오심도 장난이 아니었을 것 같고. 대체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본 것만 믿지. 그리고 똑같이 복수하려는 의지가 너무 강해. 아마 과거 애인과는 서로 죽일 듯이 싸우고 증오하고 책임 전가하고 자존심 끝까지 세웠을 거야. 아마 지금까지도. 아니, 새로 사귀는 남자가 있다니, 이젠 아니겠구나. 어쨌든 그런 감정이 내재된 사람은 자격지심 따윈 없거든. 자기가 잘 났는데, 열등감이 어디서 나오겠어. 이유 없이 괴롭히는 건, 호감의 다른 표현이거나 열등감의 다른 표출이거든. 그러니, 과거 애인을 닮았다는 예상은 하지 마.”

 

 

"그래요, 어쩌면 내가 예민한 건지 모르겠어요. 팀장님이 자격지심을 가질 사람은 아니거든요. 내 눈에도.“

“괜찮아질 거야. 아니면 우리 호텔로 오던지 하라고. 참, 이건 그냥 물어 보는 건데, 팀장이 은서에게 애인이 있다는 거 알아?”      

“아니요. 신입이 그런 소리 떠버릴 수 있나요?”

은서는 도현의 논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도현의 위로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점차 나아질 거라고는 희망을 품게 했다. 그런데 도현은 왜 생뚱맞은 질문을 하는 것일까.

“하하, 그렇군.”

도현이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었다는 듯 웃어 넘겼다. 그러나 예측이 빗나가자 의문이 증폭되었다. 영주가 그와 은서의 관계를 알고 있다면 영주의 행동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란다. 그렇다면 영주는 은서에게 왜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정말로 부하 직원 교육 차원일지 모를 일이었다. 길들이기 위한 전술 말이다.

은서는 도현의 생뚱맞은 질문에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싱겁게 마주 웃어 주었다.

 

 

집에 도착하자 도현이 그녀의 입술에 굿나이 키스를 했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키스였다. 감정의 굴곡이 심했던 관계로 더욱 깊었던 아까의 욕망의 흔적이 옴팍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도현은 은서를 들어보내고 옥탑방을 오랫동안 올려다보았다. 비는 멈추었지만, 시꺼먼 하늘 아래 그녀의 방은 오늘 따라 매우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강혁은 살짝 손을 올려 자신이 전화한 사람이라고 밝히는 중년의 여인을 발견했다. 정장 차림이 아니면 출입할 수 없는 청담동의 블란서 레스토랑이었다. 방한한 영국의 투자회사 회장을 한 주간 경호했던 강혁은 공항에서 고객이 출국하는 것을 지켜보고 돌아오는 길에 강 여사라는 여인의 전화를 받고 이곳으로 온 길이었다.

[이강혁 씨죠? 좀 만날 수 있을까요?]

강혁은 강 여사라고만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여인이 무슨 용건으로 만나자고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었다. 경호에 관련된 일일 거라고 추정해 봤을 뿐이었다. 경호 의뢰는 대체로 사무실로 오는데, 고객의 추천을 받은 의뢰인들이 개인에게 전화를 거는 수가 종종 있었다.

 

 

수수한 투피스 차림에 비해 여인이 풍기는 이미지는 강렬했다. 조용히 앉아 있는데도 근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강혁은 그녀가 평범한 여인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식사할까요?”

“괜찮습니다.”

여인의 온화한 눈길이 강한 이미지를 부드럽게 누그러뜨렸다.

강혁은 점심 식사 약속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앞의 여인을 만나로 오는 길에 도현의 전화를 받았다. 도현은 1시간 앞으로 다가온 점심을 같이 하자고 말했다. 강혁이 선약이 있다고 하자 그 약속을 지킨 후에 점심을 하자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강혁은 도현을 이곳으로 오라고 말했다. 여인과 장시간 대화할 일은 없을 것 같았던 것이다.

여인이 강혁의 의사를 묻고 커피 두 잔을 시켰다. 커피가 날라져 오자, 인자한 미소를 물고 있던 여인이 마시라고 권하며 입을 열었다.

 

 

“먼저 고맙다는 말부터 할게요.”

여인의 뜬금없는 소리에 강혁은 의아해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친구 한 사람 있죠. 여자 친구?”

“여자 친구라면? 한은서 말이에요.”

“예, 은서, 한은서. 그 애를 가리키는 거 맞아요.”

강혁은 의구심이 가득 찬 눈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누, 누구시죠?”

“어려서부터 은서 보살피고 챙겼다는 얘기 들었어요. 강혁 씨의 도움이 컸을 것 같더군요. 은서가 저렇게 훌륭하게 자라준 데는.”

강혁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여인의 정체가 감지됐다.

 

 

“혹시…… 혹시, 은서 어, 어머니 되세요?”

여인이 애정 어린 눈으로 강혁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혁아, 나 오늘 엄마 봤어…….’ 은서의 음성이 귓전에서 맴돌았다. 은서가 본 여인이 바로 이 분이었구나. 강혁은 당장에 은서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은서는 어머니와 상봉을 했을 것 같았다. 은서를 만나지 않고 그를 먼저 찾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 은서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일순 강혁을 서글프게 했다. 도현이 앞에서 자기 바래다 준다고 한 것을 언짢게 여긴 것일까. 아니면 도현이 멀리 하라고 요구한 것일까.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해 도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십오 년이 넘은 해를 같이 맞고 같이 보냈던 소중한 사람 한은서. 그녀를 여자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은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 남자의 등장으로 인해 그 긴 세월의 우정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강혁은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내가 고맙다는 인사 해도 되는 거죠?”

강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은서 어머니시라면 제 어머니나 다름없어요. 말씀 놓으세요, 어머니.”

“난 그럴 자격 없어요. 어서 앉아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강 회장은 반듯한 강혁의 행실을 발견하며 마음이 흐뭇했다. 은서에게 이토록 건실한 친구가 있었다는 것은 하늘의 축복일 것이다.

“아니에요, 난 은서에게 죄인이에요. 우리 은서는 엄마 잊었을 거에요. 하지만 난 그런 은서의 존재도 몰랐어요. 은서가 죽은 줄 알았지요.”

“옛?”

강혁은 당혹감에 사로잡혔다. 아직 은서를 만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소식을 듣고 달려왔어야 했죠. 변명같지만, 당시에 난 병원에 입원 중이었어요. 대수술을 받았죠. 슈퍼마켓에 강도가 들어 머리를 크게 다쳤어요. 그래도 왔어야했죠. 우리 은서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데, 나 아픈 것이 무슨 대수겠어요.”

탄식하는 은서 어머니를 보며 강혁은 가슴이 아팠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누가 그럴 소릴…… 은서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자랐는데.”

“귀국하는 지인에게 부탁했었죠. 은서 소식 좀 알아 봐 달라고. 한참이 지나서 연락이 왔는데, 은서네 식구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비보를 전해 왔더라고요. 할머니와 아버지가 죽은 후 은서는 고아원으로 보내졌는데, 그곳에서 병사했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에 돌아와 은서가 잠시 거주했다는 고아원을 수소문해 보다가 깜짝 놀랐죠. 은서가 생존해 있는 거였어요. 지인이 고아원을 잘못 알고 확인했는데, 그 고아원에도 은서라는 아이가 있었다네요. 난 은서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요. 저 버린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 듣고도 버렸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니까.”
“그렇지 않아요. 은서가 엄마를 얼마나 그리워했는데요. 그리고 잘못된 소식이었고, 어머니께선 머리를 다쳐 입원중이었잖아요.”

 

 

“다른 것은 그렇다고 쳐도, 은서 절 떠난 것은 용서받지 못할 거예요. 그래서 은서 앞에 나설 용기가 아직도 안 나네요.”

강 회장은 은서를 데려간 성북동 둔중한 대문을 수도 없이 두드렀었다. 매번 어깨들에게 내쫓겨 났지만, 은서를 잃고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지하 방에 내던지고 간 봉투를 가지고 찾아간 은서 아버지. 그는 은서 염려 말고 새 출발하라는 말만 되풀이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결혼을 그는 받아 드린 후였다. 허공을 붙잡으려는 것처럼 은서를 찾는 일이 까마득해져만 갔고,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 그러던 중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669건 6 페이지
소설·수필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1519 마른둥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4 0 10-27
1518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47 0 10-27
1517 memaa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74 0 10-28
1516 memaa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9 0 10-28
1515 memaa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36 0 10-29
1514 memaa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45 0 10-29
1513 몽진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9 0 10-29
열람중 memaa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95 0 10-30
1511 memaa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40 0 10-30
1510 o1414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8 0 10-30
1509 김광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93 0 10-30
1508 memaa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73 0 10-31
1507 memaa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47 0 10-31
1506 박 영숙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67 0 10-31
1505 淸草배창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56 1 10-31
1504 몽진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84 0 11-01
1503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82 0 11-01
1502 김광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44 0 11-02
1501 장 진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75 0 11-03
1500 시몬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20 0 11-03
1499 울프천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83 0 11-06
1498 대기와 환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64 0 11-07
1497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51 0 11-07
1496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57 0 11-08
1495 김광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89 0 11-11
1494 몽진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82 0 11-12
1493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51 0 11-14
1492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1 0 11-17
1491 김 지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82 0 11-19
1490 몽진2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1 0 11-19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