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녀의 백팔십도 회전하기--<완결> > 소설·수필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소설·수필

  • HOME
  • 창작의 향기
  • 소설·수필

☞ 舊. 소설/수필   ♨ 맞춤법검사기

 

 

모든 저작권은 해당작가에게 있습니다.무단인용이나 표절을 금합니다

[소설]그녀의 백팔십도 회전하기--<완결>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memaa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44회 작성일 15-10-31 01:26

본문




                      8. 진정한 행복




“나와 결혼해 주지 않을래, 은서야?”

은서는 문득 도현의 눈에 고이는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엄마에게 들은 얘기를 상기하며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도현이도 그의 고모에게 호텔에 관한 진상을 전해 들은 것이 아니면 저토록 나약해 진 모습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집에서 절대 불가 원칙을 고수한다고 도현이 의지를 굽힐 사람은 아니었지 않은가.

“고모와 아버지가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질었다는 소릴 들었다. 너와 너의 아버지에게. 숨기고 감춰야 할 비밀일 수가 없었어, 난.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은서에게 정직해야만 한다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난 생각해. 고모가 부당한 방법으로 은서 아버지 호텔을 부도시키고, 결국은 소유하게 되었다, 은서야. 너의 지난 세월에 우리 집안의 책임이 커. 미안하다, 은서야. 우리 집안을 대신해 진심으로 사과한다. 차마 용서해 달란 말은 못 하겠어.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게 세월이니까.”

“나도 알아요, 도현 씨.”

은서는 절절한 그의 사랑을 느끼고, 도현이처럼 자신도 냉정하게, 형성된 비난을 되짚어 봐야 한다고 절감했다.

“아, 알고 있었니?”

“엄마에게 전해 들었어요.”

“엄마? 은서 친 어머니?”

“그래요, 어제 친 엄마를 만났네요. 신이 냉정한 판단을 하라고 적절한 시기에 보내주신 거라고 생각했어요. 먼저 고백해 줘서 고마워요, 도현 씨. 엄마에게 지난 얘기를 듣고 도현 씨네가 우리 집을 몰락시킨 사람들이라는 울분을 느꼈어요. 도현 씨가 솔직하게 나와서 나도 솔직하게 말하는 거예요. 사랑보다 감정이 앞서대요, 그 땐.”

“당연한 거야, 그건.”

 

 

“하지만 돌이켜 보니, 도현 씨 고모 입장은 전혀 헤아려 보지 않은 것 같네요. 내 엄마만 불쌍하고, 나 또한 겪지 않아도 됐을 불행을 타인에 의해 강제 받은 것 같았어요. 정말 부끄럽게도 아버지 호텔이 내 것이었다고, 내 재산을 강탈당한 것이 맞다고 분개했네요. 어쩌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호텔이었을 텐데요.”

“은서야…….”

“아버지가 엄마를 책임지지 않았을 때, 나 역시 버림받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난 단지 아버지 혈육이라는 이유 하나로 엄마처럼 버려지진 않았지만, 결국은 그 대가를 치루며 살아야했죠. 나와 엄마는 아버지의 재산에 아무런 소유권도 상속권도 주장할 수 없는 제 삼 자라고, 법적인 문제를 결부시키지 말고 냉정하게 받아드려야 한다고, 이제 생각드네요. 아버진 애초에 날 거둬가지 말아야했어요. 책임 못 진 사랑이었으면 그냥 엄마에게 키우도록 내버려둬야 한 거죠. 그랬다면 모두가 덜 불행했을 거예요. 도현 씨 고모도, 엄마도, 나도, 아버지도. 결혼 직후에 남의 아기, 그것도 남편의 가슴을 앗아간 여자의 자식을 키우게 된 고모, 우리 중에서 가장 불행한 분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아버지와 도현 씨 고모 사이의 일은 애증이 빚어 낸 두 분만의 사건이라고, 나와는 별개 라고, 이제 깨닫게 되는 내가 공정하지 못했다고 반성하게 되네요.”

은서는 깊은 성찰없이 무작정 팔이 안으로 굽는 식의 사고를 했던 자신을 되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참 불쌍하신 분이었다. 사랑에 실패하고 자식까지 빼앗기고 홀로 살아온 분이니, 그 어째 가련하지 않겠는가. 딸 하나 있는 거 불우한 삶을 살아온 것이 안타깝고 원통해 도현의 고모를 원망하고 책임을 묻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당신이 도현의 집안을 원수 같은 집안으로 여긴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 문제만 제외하면 엄마가 도현의 고모에게 감정을 가질 권한은 없다고 당신은 알고 계신 것이다. 때문에 엄마가 도현의 집안을 원수 같은 집안이라고 규정 지은 것은 은서 입장에서만 그러하다는 의미일 것이었다. 은서 자신도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원수 같은 집안이란 생각이 퍼뜩 들었으니까.

 

 

 

그러나 냉정히 따져 보니 도현의 고모의 행위는 아버지를 향한 것이었지 그녀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딸린 자식이었지 엄격히 도현의 고모와는 무관한 존재였으며, 그녀 재산이었던 적이 없는 호텔이었으므로, 도현의 고모의 행위를 문제삼아 원수 라는 감정으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아 보였다. 때문에 은서는 아버지와 도현의 고모 사이의 벌어진 사건을 아버지의 혈육이라는 이유로 애통해 하고 분개하고 복수의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결론 지었다. 

“은서야…….”

도현은 예상과는 사뭇 다른 은서의 태도에 오히러 당황했다.

“아버진 내게 잘 했어요. 엄마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을 거예요. 그랬으니 날 낳은 거 아니겠어요. 그러나 도현 씨 고모는 아버지와 결혼 생활 내내 불행했어요. 난 비록 고아원에서 성장해야 했지만 그 시간들이 절망과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었고, 강인한  나를 만들었죠. 욕심 나지 않아요. 호텔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살았으면 내가 행복했을까요? 물질적으론 풍요롭고 부족함이 없었겠지만, 아버지를 좋아했을 것 같진 않아요. 두 여자를 불행케 한 아버지를 지금처럼 그리워하고 사랑하진 않았을 거예요. 얼마 동안에 불과했지만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을 땐 정말 행복했어요. 언젠가는 엄마도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죠. 열심히 성실히 산 아버지의 모습이 고아원에서의 내게 어떤 동력이 되었죠. 그거면 돼요. 아버지가 내게 남긴 유산은. 친 엄마를 버렸고 의붓어머니마져 등 지게 한 아버지였음을 모르고 싶네요. 미안해요, 내가 도현 씨와 도현 씨네 집안 싸잡아서 아버지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욱한 감정 가졌었어요. 그런데 도현 씨 얼굴 보니까, 내가 도현 씨 얼마나 사랑했고, 사랑하는지, 물씬 밀려오더라고요.”

은서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근친상간도 묵살하고 싶었었고, 의붓어머니임을 알았을 때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부딪혀 보리라 샘솟던 의지로 사랑의 기쁨 만끽한 자신이 편파적인 생각으로 흔들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난 은서 잃을 거라고 생각했어. 은서 떠나 버릴 것이라고. 하지만 매달리고 싶었어. 용서 받지 못한다고 해도, 은서 잃고 싶지 않았어. 아니 잃고 살 수가 없을 것 같아, 염치 없이 같이 살자는 말부터 나오더라. 우리가 결혼해 같이 살다보면 고모가 뉘우치고 은서에게 용서를 빌게 될 거라고, 은서 몫의 재산, 너무 늦었지만, 돌려 줄 것이라고, 그리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은서에게 잘 하게 되리라, 은서 붙잡을 욕심에 그런 내 생각만 하고 있었어. 부끄럽다, 용납할 줄 아는 은서 앞에서 내 자신이, 우리 집안이 너무 부끄럽다.”

“부끄러울 거 없어요, 도현 씨. 왜 우리가 인연이 되었는지, 우리 앞에 놓였던 시련들을 극복하고 결국 도현 씨네와 나 사이에 얽힌 사연까지 밝혀지는 단계까지 왔는지, 우리 안에 깊어진 사랑으로 생각해 봐요. 운명이 아닐까요. 화해를 바라는 신의 섭리가 아닐까요. 엄마와 도현 씨네 고모, 아버지, 그들의 애증을 우리에게 전가시켜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하라는 신의 과제가 아닐까요. 도전해 봐요, 우리. 신이 준 숙제를 우리가 풀어봐요. 세상이 우릴 욕한다고 해도.”

도현은 은서 옆으로 옮겨 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사랑해, 은서야. 사랑해. 너에게 정말 잘 할게. 우리 집안에서도 너에게 용서를 구하게 될 거야. 너의 아버지에게도. 널 잃는 줄 알았어, 정말.”

도현의 눈에 또 다시 눈물이 고였다.

“나도 그럴 줄 알았어요. 도현 씨 내 사람이 아니구나 라고.”

 

 

은서는 그의 품에서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고요해 지는 자신을 느끼며 새삼 깨달았다.

그의 품은 안식처 같았다. 어떤 고난에도 끄덕없을 안식처 같았다. 당연히 그녀도 그에게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둘 사이엔 사랑 이외의 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었음으로. 사랑은 그와 했지 그의 집안과 한 것이 아니었음으로.

그것이 중요했다. 삶은 미래를 지향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끌어안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사유가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은서 씨?”

사표를 내는 은서를 뿌듯한 눈으로 쳐다보며 영주가 물었다.

“곧 알게 될 겁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팀장님.”

은서는 영주가 어떤 생각을 갖고 승리자의 미소를 짓는 지 유추가 되었지만, 정정해 주고 싶지가 않았다. 어이없게도 영주는 은서가 도현이와 헤어졌다고 확신하고 있는 눈치였다.

“잊어 줘요, 은서 씨. 도현 씨와 기억들. 남의 여자 기억속에 도현 씨가 추억거리로 남아 있는 건 불쾌하거든.”

은서는 그냥 나오려던 생각을 바꿨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 줘서 감사하네요, 박영주 팀장님. 도현 씨에게 저주스런 기억을 주셨던데, 그 기억 내 사표와 함께 돌려드립니다. 그 동안 예뼈해 주셔서 목이 다 메입니다. 참, 이 사표는 도현 씨의 의견이죠. 그럼…….”

영주의 낯빛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은서는 사무실로 나와 동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빌딩 밖까지 배웅한 미애는 은서가 영주의 등살을 못 견디고 사표를 낸 줄 알고 눈물을 보였다.

“아니야, 언니. 나중에 놀라지만 마.”

“좋은 일로 그만 두는 거야. 그럼 다행이고.”

 

 

“언니가 있어 큰 의지가 되었어. 베스트통신에서 언닌 나의 수호천사였어. 고마워.”

은서는 가는 곳마다 반드시 한 사람씩 있던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들을 상기해 보며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 빚을 갚으리라고 새삼 다짐했다.

“참, 미스 한. 혹시 K 마트 회장님 아는 분이야?”

“왜요?”

“1년쯤 전에 우리 집에 왔었어. 엄마가 세르비아호텔 전 사장집에서 일을 좀 도와 주었다고 했었지! 그것을 알고 찾아왔어. 아이를 찾고 있었어. 그 아이와 우리 엄마가 서로 연락하고 있냐고 물었었지. 그런데 미스 한의 키다리 아저씨가 알고 보니 K 마트 회장의 개인 비서인 거야. 미스 한이 사표를 낸다고 해서 이제 접촉할 일이 없을 것 같아 대체 뭐하는 분이냐고 여쭤 봤거든.”

“내 키다리 아저씨라니?”

“미스 한 후견인이 미스 한의 안위를 늘 염려하고 계셨어. 바로 K 마트 회장의 비서인 분이 말이야. 이상해서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호텔 전 사장의 따님 이름이 은서 라는  거야. 우리 집에서 며칠 우리가 데리고 놀았다는데, 난 생각이 안 나더라고. 오랜 전이어서 그런지. 뭐 예측되는 거 없어?”

은서는 엄마가 가까이서 지켜 보고 있었다는 증거 앞에서 가슴이 뭉클했다. 엄마가 상봉의 시점을 고심하다가 그녀가 곤경에 처한 것 같아 나서게 된 것이 분명했다.

 

 

“글쎄…… 언니 엄마가 뭐라셔?”

“그 회장이 찾고 있는 아이가 미스 한 같아. 내 생각엔. 우리 엄마도 그렇고. 찾아가 봐. 미스 한 고아로 자랐다며?”

은서는 이미 상봉했다고 털어놓으려다가 나중에 조용하게 말해 주는 것이 요란스럽게 회사를 떠나는 것보다 나을 듯 싶었다.

“설마. 동명이인이겠지.”

“시큰둥한 거 보니까, 아닌 것도 같네. 그럼 다행이고. 미스 한 세르비아호텔 회장 아드님과 사귀잖아…… K 마트 회장이 찾고 있는 딸이 세르비아 호텔 전 사장이 결혼 전에 사귀던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았다더라고. 그러니까, K 마트 회장이 호텔 전 사장의 결혼 전 여자가 인 거지. 엄만 그 호텔 장 씨가가 전 사장에게 호텔을 빼앗은 걸로 알고 계셔. 그렇다면 너무 복잡해지잖아. 미스 한이 K 마트 회장의 딸이라면. 아니길 다행이다, 차라리.”

“왜?”

“왜긴? 세르비아 호텔 전 사장이 K 마트 회장을 못 잊어했고, 세르비아 호텔 회장 여동생은 그것 때문에 집에 정을 못 부치고 밖으로 돌았다는데. 의붓어머니였지만 그 역할 전혀 안 했다고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원한을 품을 관계들이잖아…… K 마트 회장과 호텔 전 사장이 헤어지게 된 것은 호텔 여동생 때문이라는데, 엄마가 알기론 호텔 여동생이 K 마트 회장의 존재를 결혼 날짜 잡아 놓고 알게 됐는데, 임신 중인 걸 알고 산부인과로 끌고 가 낙태를 시키려고 했다나 봐. 그런데 K 마트 회장은 낙태한 것처럼 해 달라고 의사에게 간곡히 부탁해 아이를 아무도 모르게 낳은 거지. 두 여자 사이에 앙금이 깊을 거야.”
은서는 택시를 타고 K 마트 관리본부 빌딩으로 가면서 도현의 고모에 대한 이해심이 흔들리는 것을 애써 붙잡았다. 자신이 도현의 고모였다면 그 입장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엄마를 이해해 주고 납득해 주고 포옹해 줄 사람은 그녀 외에 아무도 없을 것 같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회장님, 안에 계세요?”

은서가 회장실 비서실에 들어가자 김 비서가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마중나왔다.

“조금 있다가 들어가세요, 아가씨. 안에 장도현 씨가 와 계십니다.”

어제 격앙된 감정이 가라앉자 도현이 엄마를 만난 얘기를 알고 싶어했다. 이렇게 찾아 뵈려고 도현이 상세히 물었던 모양이었다.

은서는 위로할 길이 없는 엄마를 향한 연민과 죄송스러움이 그 무게를 더하는 듯해 안타까운 심정이었지만, 내심 엄마가 도현을 받아 주어 화목의 장으로 셋의 관계가 정립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도현으로 인해 24년만에 만난 엄마와의 사이가 소원해 지면, 그 관계를 회복하는데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막막하고 참담했다.

도현은 사죄하는 심정으로 강 회장의 집무실을 찾아왔다. 은서에게 사과하고 이해받는 일로 끝날 일이 아닐 것이다. 은서 어머니의 원망과 반감을 최선을 다해 누그러뜨리지 못하면 은서에게도 은서 어머니에게도 온전한 행복을 주지 못하는, 모녀 사이의 순정을 혼탁케 하는 또 다른 원망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우리 집안이 은서에게 너무나 큰 잘못을 했습니다. 우리 집안의 비열한 행위로 인해 은서가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우리 집안을 대신해 사죄드립니다.”

“내게 사죄할 필요는 없어요.”

강 회장은 갑자기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는 도현이 달갑지 않았다. 은서가 처신을 잘 할 줄 알았는데, 정 반대의 결과를 확인케 하는 도현의 방문에 강 회장은 심기가 불편했다.

“고모와 아버지가 은서 아버지 호텔을 가로챈 것을 알고 괴로웠습니다. 고모가 은서의 의붓어머니였다는 것이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왜 고모가 그런 행위를 했는지, 전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화가 나고 견딜 수 없이 치욕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은서를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멍에를 진 저이지만, 은서를 사랑할 수 있도록 어머니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은서에게 죄진 마음으로 사랑을 다 바치겠습니다.”

“우리 은서가 장 실장과 결혼하겠데요?”

“어머님의 허락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저흰 생각합니다. 저희끼리 결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허락이 떨어지기 까지 우린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난 은서에게 어머니로서 자격이 미천해요. 하지만 장 실장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가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죠. 장 실장 고모가 우리 은서에게 엄마라고 불렸던 거 알죠? 그런데 결혼이 말이 돼요?”

“고모의 양해와 허락을 받겠습니다.”

“가능할까요? 나 개인적으론 장 실장 고모에게 유감 없어요. 어찌 보면 죄인이죠. 하지만 은서 잘 키워주었으면 했어요. 은서

 

아버지와 잘 살아 주었으면 했고요. 그러나 나와 은서 때문에 장 실장 고모가 고통받았다는 것을 알고 내가 욕심이 지나쳤나 싶었죠. 아니, 바랄 것을 바래야 했던 거죠.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해요. 서로가 원치 않은 고역을 치러야 했죠, 나나 장 실장 고모나. 장 실장 고모와 은서 아버지 사이에 벌어진 일은 내게 무관해요. 은서도 개의치 않은 것처럼 느껴지네요, 이렇게 장 실장이 찾아온 것을 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은서도 많이 힘들어 했어요.”

“난 은서가 더 이상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을 원치 않아요. 장 실장 집안을 은서가 용서했다면 난 그런 은서 존중할 거예요. 그토록 장 실장을 사랑하는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쉽고 안타깝고 속상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난 은서에게 엄마로서 자격이 너무나 부족하죠. 하지만 울타리는 되어 주고 싶어요. 그럴 자격은 친모로서 내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은서의 마음 고생이 뻔히 보이는데, 그것은 장 실장의 사랑과 상관없이 은서를 불행하게 하는 요인인데, 은서의 엄마로서 그 길로 가도 좋다고, 무책임하게 허락할 수는 없죠.”

강 회장은 자기 아버지의 철천지의 한 같은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갈 결심을 한 은서가 참으로 야속했다. 하지만 은서는 어리석은 판단으로 자기를 망칠 만큼 경솔한 아이는 아니라고 강 회장은 생각했다. 은서는 자기의 사랑을 단념할 수 없는 것이리라. 강 회장 자신이 은서 아버지를 단념하지 못하고 은서를 기어이 낳았던 것처럼.

그 사랑이 어리석었던가? 정녕 후회했던가?

 

 

강 회장은 후회했었다.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통탄했었다. 하지만 은서만은 잘 낳았다고, 은서를 낳은 것만은 후회되지 않았었다. 자기 품에서 키우지 못한 것이 원통했었지만, 은서 죽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 기절할 정도로 마음만은 가슴만은 언제나 은서 곁을 지키고 있었었다. 그런데 은서가 불행을 잉태한 사랑에 자신을 걸고 있었다. 환영받을 리 없는 집안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 잉태된 불행과 정면으로 부딪힐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가엾은 것. 일찍이 챙기지 못한 것이 이처럼 후회될 줄이야.

어떻게 막아야 한담. 내심 은서의 배필로 빈우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강 회장은 무리수 없이 도현을 떨구어낼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엄마 라고 불렀던 여자의 집에 시집가려는 은서의 사랑이, 자신의 경험에 비춰 본 강 회장은 결코 위대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던 것이다. 은서에게 남자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이 원인일지 몰랐다. 빈우와 업무적인 일로 부대끼며 정들다 보면 잔잔한 행복이 격렬한 사랑이 잉태한 행복보다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리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장 실장 집에서 은서를 허락한다면 모를까, 난 은서가 장 실장 집에 며느리로 들어가는  거, 결사 반대 입장이에요. 장 실장 고모와 은서가 남남이라고 하지만 한 남자 밑에서 의붓어머니와 의붓 딸로 살았던 가족 같은 관계도 절대 무시할 수 없고요. 사회적 통념상 허용할 수 없는 관계라는 거, 장 실장이나 은서, 알고 있는 것 같아 길게 말하진 않을게요. 그만 돌아가요. 내게 사죄하려는 마음 고맙게 받을게요. 그럴 입장도 아닌데. 하지만 내 허락을 받으러 온 것이라면, 별로 반갑지 않네요. 얘기하는 걸 보니, 장 실장 집안은 은서 받아드릴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은데, 나와 은서 허락부터 받아내려는 것 같아, 왠지 유쾌하지가 않고 말이죠.”

 

 

“잘 알겠습니다, 어머니. 어머님 지적이 타당합니다. 저희 집안에서 은서 허락받은 후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강 회장은 결연한 의지가 어리는 도현의 표정을 예의 주시했다. 은서와의 사랑이 예상보다 훨씬 깊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얼핏 스쳤다.

“도현 씨?”

걱정과는 달리 밝은 얼굴로 나오는 도현을 보고 은서는 가슴이 부풀었다.

도현의 손을 잡고 비서실을 나온 은서는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며 설렌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가 허락했어요, 도현 씨?”

“조건을 달았어.”

“어떤?”

“우리 집에서 은서 허락하면 재고해 주실 것 같아. 지금은 반대하셔. 당연히 그러실 거라고 예상했었고.”

은서는 가슴에 바위 덩어리 하나가 얹혀지는 것 같았다. 딸이 악연으로 얼룩진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가는 것을 반길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오늘은 그냥 인사 드리려고 온 거야. 우선 은서를 사랑하는 마음 전하고 싶었어. 너무 상심하지 말자, 우리.”

“그럼요, 우리가 선택한 길인걸요.”

“오늘부터 여기서 일하지?”

“예, 그렇게 됐어요.”

“난 은서 쉬게 하고 싶었는데. 고생만 하고 살았잖아.”

 

 

  은서는 그의 마음이 느껴져 잡은 그의 손을 꼭 쥐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도현이 혼자 내려가겠다고 한 걸 배웅해 주겠다고 동승했다.

“저 좀 안아 주고 갈래요?”

은서는 엘리베이터가 하강하자 도현을 깊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도현은 은서를 꼬옥 끌어안았고,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잘 될 거야, 은서야.”

도현은 암담한 현실을 직시하며 숨을 들이쉬었다.

“예, 잘 될 거예요.”

은서는 자신도 도현이도 왠지 공허한 울림같은 소리를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도현 씨가 식 올리지 말고 살자고 하면 그럴 용의 있어요, 나.”

은서는 그와의 사랑을 체념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힌 순간부터 이것만이 함께 할 수 있는 길일 거라고 예견했었다. 나중에 허락을 받는 길, 그 길 외에는 함께 할 방도가 없는 사랑 같았었다. 도현네도 엄마도 그들의 사랑을 축복해 줄 일말의 여지도 없는 입장들일 테니까.

“난 은서 웨딩드레스 입는 모습 볼 거야. 반드시.”

도현이 강한 의지를 보였고, 은서는 그가 너무 믿음직스럽게 다가왔다. 식 올리지 않고 사는 데 그가 동의했으면 내심 실망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내 남자가 그렇게 무능해 보이는 것은 서글픈 일일 것이었다.

“전화할게. 들어 가.”

“예, 도현 씨. 고마워요.”

“뭐가?”

“그냥요.”

 

 

도현이 은서의 머리를 쓸어 넘겨 주고 따뜻한 미소를 지었는데, 은서는 그 미소가 답답한 앞날을 헤쳐나갈 희망의 빛처럼 느껴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665건 7 페이지
소설·수필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1485 대기와 환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63 0 11-07
1484 김광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61 0 10-23
1483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61 0 10-29
1482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60 0 02-15
1481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9 0 07-25
1480 장 진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9 0 03-27
1479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8 0 11-29
1478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5 0 01-30
1477 구식석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4 0 03-05
1476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4 0 09-05
1475 김상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3 0 08-28
1474
동행 댓글+ 1
크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3 0 02-22
1473 김광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2 0 02-18
열람중 memaa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45 0 10-31
1471 청산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45 0 09-15
1470
먼먼 그리움 댓글+ 1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42 0 10-14
1469 정이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40 0 10-27
1468 대기와 환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6 0 11-27
1467 정이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6 0 10-12
1466 장 진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6 0 04-08
1465 전영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6 0 12-09
1464 그린Choo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5 0 08-17
1463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9 0 02-18
1462 o1414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8 0 10-30
1461 마른둥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7 0 10-27
1460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7 0 09-04
1459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7 0 09-30
1458 김광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7 0 10-25
1457 가을의 바다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6 0 10-05
1456 景山유영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6 0 10-30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