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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를 헤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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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김 지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81회 작성일 15-11-19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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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를 헤치며 / 김지명
 
   칠월 하순 민주공원을 품은 산으로 걷는다. 내 앞에는 안개가 마중을 나오듯 짙게 깔렸다. 숲이 우거진 오솔길엔 적막이 감돌아 공포심에 등골이 오싹한 느낌을 준다. 물방울의 미립자가 주위를 맴돌더니 온몸에 끼어들어 속속들이 애무한다. 이것 뿐만은 아니다. 크고 작은 나무와 풀잎에도 흔적을 남겼다. 미립자의 물방울이 가느다란 풀잎에 앉아 한곳에 모이더니 수정처럼 투명하다. 고요한 산속으로 혼자서 안개를 헤치며 오솔길 따라 걷는다. 안개는 함께 놀자고 떼를 지어 사방으로 길을 막지만, 곁에 있기가 싫어서 능선으로 오른다. 이 산에 올 때마다 안개는 가끔 지루한 시간에 머물었지만, 때로는 한순간 멀어져 갈 때도 있었다. 짙은 안개가 오래도록 머물 때 음울한 숲속에는 산새의 울음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평소에 엄광산에는 다종의 산새가 날아다니며 조잘거렸지만, 짙은 안개가 산을 안으니 때까치마저 보이지 않는다. 귀를 쫑긋 세워 새소리를 들어보았는데, 어느 곳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미물이 보이지 않더니 산새가 먹을거리가 없어 활동을 멈춰버린 고요한 산이다. 안개가 떠나지 않아 습한 곳에서 미물이 보이지 않는다. 습도가 높고 기압이 낮아 불쾌지수가 상승해도 산으로 걷는다. 숲속에는 풍부한 음이온 내 기분을 산듯하게 한다. 가벼운 발걸음 옮기면서 정상을 향해 터벅터벅 걷는다. 쇠파리도 없고 하루살이도 눈앞에서 보채지 않아 등산하기 딱 좋은 날씨다. 매미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삭막한 느낌이다. 산은 이처럼 다양한 미물과 동식물 그리고 안개마저 품고 묵묵히 버틴다. 구름도 넘나들고 바람도 쉬어가는 엄광산 정상을 향해 안개를 헤친다.
  안개는 다시 심하게 짙어진다. 뭉게구름이 앉은 듯이 짙게 깔려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안개가 진하여 가시거리가 5m도 되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길 따라 조용히 묘지 언저리로 걸을 때 갑자기 멧돼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묘지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둑을 멧돼지가 파헤쳤다. 멧돼지는 땅벌 집에 꿀을 훔쳐 먹던 중에 나와 맞닥뜨렸다. 멧돼지를 보는 순간 너무나 놀라 허공에 비명을 날리면서 배낭을 높이 들었다. 산짐승을 보면 본능적으로 크게 보이기 위해 양손이 높이 들렸다. 멧돼지는 나의 비명에 놀라 후다닥 안개 속으로 도망갔다. 온몸은 한순간 석고처럼 굳어버리고 머리털은 하늘을 향해 빳빳하게 섰다. 안개 속에서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멧돼지가 사라진 자리에는 땅벌이 시위라도 하듯이 왕왕거리며 설치고 다닌다. 안개 때문에 제대로 날지 못하여 땅으로 기어 다니는 땅벌의 모습이 안쓰럽다. 안개가 없었더라면 벌에 쏘여 풍선처럼 부풀었을 텐데 안개가 나를 살렸다.
  엄광산 중턱으로 안개를 헤친다. 산모퉁이로 스치는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며 안개를 안고 나간다. 산에서 밀려난 안개가 하늘로 날아간다. 바람에 의해 구름이 다양한 모양을 만드는데 주로 동물로 보인다. 이처럼 안개구름이 움직일 때마다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안개가 산허리를 애무하며 스쳐 갈 때 사랑놀이에 지쳐 나뭇잎마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쉼 없이 밀려오던 안개가 한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안개가 걷히고 훤하더니 그것도 잠시 한순간 비구름이 하늘을 덮어버린다. 우당탕거리며 번갯불을 번쩍거리더니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우비를 준비하지 않아 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려고 이리저리 뛰어보지만, 어디에도 숨을 만한 곳이 없어 옷이 다 젖었다. 온몸을 만지던 빗물은 바짓가랑이로 흘러내리더니 등산화에 담겨 발을 씻긴다. 물에 빠진 병아리처럼 우두커니 섰다가 웃비가 그치자 다시 걸음을 시작한다. 소낙비가 스쳐 가고 햇살이 나타난다. 천하가 시커먼 구름으로 덮인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산이 맑고 청명하게 변한다.
  수시로 변하는 날씨에 어리둥절하다. 옷이 다 젖은 채 산마루로 향해 걸었다. 빗물에 샤워할 땐 시원하게 느껴졌지만, 햇볕을 받은 온몸은 갓 삶은 옥수수처럼 옷에서 안개가 피어난다. 오르막을 올라갈 땐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하다. 숲이 우거진 길목에서 그늘을 밟으며 더위를 참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산행 코스가 짧아 바쁘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 오로지 에너지를 적게 낭비하려고 천천히 걷는다. 안개 속으로 걷다 보면 나뭇잎에도 이슬방울이 맺혔다. 우듬지 사이로 햇빛이 내려앉을 때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물방울은 수정처럼 반짝거린다. 안개는 시간이 흘러도 흩어지지 않고 내가 걷는 쪽으로 밀려든다.
  이마엔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혀도 오솔길 걷는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온몸이 젖은 채 산마루를 바라본다. 산의 가슴부위를 감싸 안은 안개는 벗어나기 싫은 모양이다. 정상에서는 햇빛이 눈을 부시게 하지만, 산봉우리를 제외하고는 이불이 깔린 듯 구름이 허공을 꽉 메웠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구름의 수평선뿐이다. 넓게 펼쳐진 구름 모습이 바다를 방불케 한다. 산마루에서 내려다볼 때 경관은커녕 구름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안개는 한곳에 머물지 않고 어디론가 옮겨간다. 산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안개를 몰고 다닌다. 안개가 없었던 날엔 바다가 한눈에 들어 선박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안개가 세상을 덮어버려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없어 아쉽다. 평소에는 산봉우리들의 풍경에 취했는데 지금은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산에서는 산새의 노랫소리 계곡의 물소리 등 다양한 자연의 소리가 내 심금을 울린다. 자연이 만들어낸 멜로디가 귀를 즐겁게 할 뿐 아니라 오솔길 걷는데 발걸음마저 가볍다. 산에서는 동물의 소리 또한 다양하게 들린다. 대를 잇기 위해 사랑하자는 소리인지, 어미가 새끼를 부르는 소리인지, 나는 알아들을 수 없다. 이처럼 다양한 소리가 삶의 힐링이 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 공포감을 주기도 한다.
  안개 속으로 산행할 때 긴장감을 느끼면서도 멈추지 않고 오솔길로 걷는다. 건강을 위한 산행은 쉬지 않고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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