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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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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물방울 유태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83회 작성일 15-11-22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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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태 경

커피 한 잔의 따듯한 정이 이렇게 잊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얻어 마시는 종이컵에 커피 한 잔이 추운 날씨에 이렇게 잊히지 않는 정을 마셨던 적이 있었다.

어느 싸늘한 겨울 저녁, 바람이 유난히도 온 천지를 온통 뒤흔들고 있어 마음속까지 싸늘했다. 무심히 지나쳐 버린 것보다 남은 세월이 짧은, 아름다운 저녁노을 같은 나이다. 젊어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후회하며, 지금이라도 무엇이든 배우겠다며 마지막 발버둥이라도 치는 듯 오늘도 학원에 도착했다. 아직 시작하려면 20여 분이 남았다. 세차게 불고 있는 바람 소리에 아무도 없는 썰렁하기만 한 식당 밖 의자에 않았다. 한창 영업시간인 것 같은데 밖은 물론 안에도 손님이 없다.

책을 꺼내 읽으려는데 세차게 불고 있는 바람이 시샘을 했는지 방해한다. 잠시 후다. 식당 뒷문이 열리더니 아가씨가 컵을 들고 나와 내 앞에 놓는다. 종이컵의 커피였다.

저 주문하지 않았는데요!”

알아요, 날씨도 싸늘한데 한 잔 드세요“.

아가씨는 성급히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주인은 아닌 듯싶다. 종업원이 분명하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와 담배 연기가 친구를 만난 듯 사이좋게 어울려 나의 후각을 자극한다. 갈수록 거칠어진 바람에 의자가 넘어지고 플라스틱 지붕이 흔들리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마음을 비우고 잠시 생각을 바꾸니, 마치 나만을 위한 음악회에 초대받아 앉아있는 기분이다. 베토벤의 <운명의 교향곡>이 연주되고 있는 듯하다. 한동안 눈을 지그시 감고 음악 감상을 하며 마지막 남은 커피 한 모금의 향기가 입안에 퍼지는 순간이다. 별안간 큰 플라스틱 지붕 한 조각이 떨어져 땅바닥에서 요동을 치며 바람에 밀려 나가는 소리, “짜자 잔~”하며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음악회는 막을 내린다.

 

옛날 고향에서 가을걷이가 끝이 나고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려면 가을 고사떡이라 부르는 시루떡을 만들었다. 어둠이 깔리고 아름답던 저녁노을도 잠이 들 무렵이면 온 동네에 떡을 돌려 나누어 먹는다. 대문을 두드려 누구인가 나오면 하얀 접시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떡 서너 쪽을 건네주며 오가는 정,

참 맛있겠다. 학교 잘 다니지? 잘 먹겠다고 전해드리렴!”

나의 뒷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정답게 말씀하시던 마을 어른의 목소리가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있다. 다음 날이면 빈 접시가 아닌 과일, 엿 등 더욱 많은 정이 수북하게 담겨서 되돌아온다.

한 해 농사가 잘되도록 도와주시고 잘 거두어들여 곳간이 꽉 차도록 하여 주신 신에게 감사하다는 고사떡이다. 쌀가루 한 켜. 팥가루 한 켜씩의 연속으로 가득 찬 시루를 물이 정도껏 담긴 가마솥 위에 올려놓고 틈 사이를 빙 둘러 밀가루 반죽으로 김이 새지 않도록 바른다. 불을 때서 끓는 물의 수증기가 뚫어진 시루 밑구멍을 통해 들어가 서서히 떡은 익기 시작한다. 한 조각의 떡에 얼마만큼의 정성이 필요하고 정이 담겨 있는지 가히 짐작될 것이다.


  아기들의 첫 생일인 돌 때에도 마찬가지다. 많은 정성과 정이 듬뿍 담긴 떡을 온 마을 집집이 서로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다. 돌떡은 더욱이 먹기만 하면 아니 된다며 적은 돈과 함께 마음에 정을 수북하게 채워서 다시 돌려보낸다.


  살을 에는 듯한 엄동설한에도 화롯불에 둘러앉아 밤과 고구마를 구워 정을 나누며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는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맞아도 진달래와 아카시아 꽃 따서 정을 나누다 보면 어느 사이에 6~7, 모두가 어려웠던 보릿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옛날에는 쌀이 없어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라고 하면 옛날 사람들은 바보야! 쌀이 없으면 라면 끓여 먹으면 되잖아요!”라고 하는 요즈음 아이들에게 정이란 과연 무엇이라고 설명을 할지!


  우연히 친구와 점심을 먹을 기회가 있어 그 식당을 찾아갔는데 문이 닫혀 있다. 알고 보니 영업이 되지 않아 며칠 전 문을 닫았다고 한다. 따듯한 커피 한 잔을 내게 주었던 아가씨에게 주려고 맛있는 초콜릿 한 봉지 준비했는데 어떻게 하지? 어디로 갔을까? 얼굴도 기억에 없다. 어디서 일자리나 구했는지? 커피 마시던 자리에 앉아 그 아가씨를 그려 본다.

  불과 $0.10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커피 한잔이 이렇게 오랜 기억으로 남는 것은 아마도 사라 저가는 따듯한 고향에 정이 그리움 때문이리라. 그러기에 그 옛날 시골의 훈훈한 정을 찾아 우마차를 타고 덜컹덜컹 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 마음은 벌써 태평양을 건너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혹시 커피 한 잔을 나에게 준 아가씨도 고향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지나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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