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직장 > 소설·수필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소설·수필

  • HOME
  • 창작의 향기
  • 소설·수필

☞ 舊. 소설/수필   ♨ 맞춤법검사기

 

 

모든 저작권은 해당작가에게 있습니다.무단인용이나 표절을 금합니다

중년의 직장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김 지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71회 작성일 16-01-03 10:16

본문

 

중년의 직장 / 김지명


  새벽을 헤치며 근무지에 들렀다. 아파트에 들어서면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새벽을 깨뜨린다. 일찍 출근하려는 입주민이 승용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얽히고설킨 차 사이에 우두커니 섰다. 이삼 중으로 주차한 차를 경비원과 함께 밀어야 빠져나갈 수 있어서다. 기다리는 입주민 아주머니는 출근 시간 일분이 낮에 한 시간보다 바쁘지만, 혼자서 승용차를 밀지 못하여 경비원이 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근무하는 아파트는 아주 오래되어 주차공간이 몹시 부족하다. 전세로 살아도 자동차는 가정의 필수도구이므로 주차장이 부족하다.
  기왕에 경비하려면 부자아파트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고급아파트에 근무하려고 지원도 했지만, 관리소장과의 밀거래 루트를 몰라서 면접에서 밀려났다. 부자 아파트에 근무하는 경비가 잡수입이 있다고 자랑한다. 서민아파트에 경비원과 고급아파트 경비원의 조건은 극과 극이다. 고급아파트는 라인마다 경비가 있어 적은 세대를 관리하지만, 이곳엔 300세대에 주간과 야간을 번갈아 한 명씩 근무한다. 서민 아파트를 책임지는 경비원에게 잡수입은커녕 질책만 늘어놓는다. 좋은 직업이라고 가족처럼 지내려 했지만, 서민 아파트의 입주민은 경비원을 일꾼처럼 지시만 한다.
  입주민의 한 아주머니는 머리가 점멸등 같이 깜박거렸던 모양이다. 음식물 끓인다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놓고 외출하여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서에 신고한 후에 불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복도에 소화기를 꺼내 들고 바쁘게 뛰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서 창문을 깨고 소화액을 뿌리며 소방차가 올 때까지 화재진압을 도왔다. 소방요원이 도착하여 불길을 잡았으므로 화재는 다행히 다른 집까지 번지지 않았다. 건망증은 중년들의 생리적인 현상이라 어쩔 수 없었다. 중년이 되면 피할 수 없는 기억상실증 누구나 경험이 있겠지만, 나는 식사를 마치는 순간 전화를 받고 찬과 함께 전화기를 냉장고에 넣어놓고 찾는다고 퇴근 시간이 늦을 때도 있었다.
  경비원은 인내와 이해심이 필요하다. 양 눈과 귀 그리고 입 등 세 가지를 철저히 가리고 근무에 임한다. 장기간 근무하려면 입 벌린 언어 장애인이 되어야 한다. 입주민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어도 타인에게 옮기지 못한다. 입주민 사이의 비방은 한쪽 귀로 걸러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심결에 전해진 말 한마디로 상대방은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해야 웃으면서 근무할 수 있다. 말은 옮겨질 때마다 가지가 벌기 때문이다. 당사자에게 옮기면 입주민은 싸움이 일어나고 경비원은 쫓겨나기 때문에 입조심 말조심해야만 근무 기간이 길어진다.
  눈뜬 봉사로 살아야 한다. 분리수거 해야 하지만, 캔 종류만 넣어야 하는 통에 병과 플라스틱을 넣는 주민도 있다. 아무 곳이나 통째로 버린 입주민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도 본체만체하여야만 한다. 별난 사람들이 안하무인이므로 먼저 파악하고 갈지 않기로 했다. 별난 부인은 음식물이 가득한 비닐봉지를 통째로 버린다. 분리수거 하지 않는 쓰레기로 인하여 가끔은 입씨름이 벌어지기도 한다. 수난과 시련을 감내하면서도 열정을 갖고 근무에 임하지만, 알아주는 입주민은 아무도 없다. 주민이 이웃을 비방해도 듣고도 못 들은 척 양 귀를 막고 입을 다문다. 근무 중에는 할 말만 하고 못 듣고 못 본척해야 한다.
  입주민이 살아가는 방식은 아주 다양하다. 아파트라는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희귀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젊은 과부에게 주일마다 찾아와서 사랑을 고백하는 중년 사내가 있는가 하면 잠옷 차림으로 쓰레기 버리려 밖으로 나오는 주부도 있다. 한낮에 커튼치고 불 밝혀 생활하는 입주민, 거주하지 않지만, 가끔 들러서 러브호텔처럼 사용하는 여유로운 가구주, 늦은 밤에 어린이 놀이터에서 고독을 즐기는 중년 부인, 주차장에서 남의 차를 긁어놓고 그냥 가버리는 여인, 경비실을 흡연실로 착각하는 사내, 이토록 다양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아파트에서만 볼 수 있는 진기한 풍경들이다. 입주민들도 느끼지 못하는 아파트형 생활방식을 경비하면서 침묵으로 지켜본다.
  근무시간에 입주민의 상담자가 되기도 한다. 중년 부인이 가끔 찾아와 가정불화를 털어놓고 고민을 상담하기도 했다. 할머니가 말썽꾸러기 손자를 지켜보다 상담을 요구했든 사례도 있었다. 근무 중에 가장 싫은 자는 술에 취해 대화하자고 찾아오는 입주민이다. 술 담배를 못하는 나는 끝없이 풍겨대는 냄새를 참지 못하여 상담을 중단할 때도 있었다. 사소한 일에 이웃끼리 다투거나 토라진 주민이 찾아오면 두 사람을 불러 화해시키는 교량적 역할도 했다. 입주민은 경비원에게 안전을 맡기고 편안한 잠에 취하지만, 경비원은 신경이 쓰여 잠시도 앉아 있을 수 없어 자주 순찰 다닌다.
  서민 아파트는 경비원이 자주 바뀐다. 시장에서 좌판을 놓고 장사하는 고령자가 많아서다. 학식이 부족한 입주민의 억센 언어가 경비원 근무를 단축한다. 이해를 시키려면 막무가내 대항하기 때문에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서다. 요즘은 경비원의 학식이 상당히 높으므로 언쟁이 잦아진다. 고급 공무원도 정년퇴직한 후에 직업이 없어 촉탁직으로 경비업무에 종사한다. 공동생활에서 함께해야 한다고 설득해도 안하무인이다. 고급아파트일수록 지인들이 많아 배려하면서 살아가지만, 서민 아파트 입주민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적막 속의 근무는 긴장의 연속이다. 저녁노을이 사라지면 마을은 온통 먹물로 물들어가지만, 아파트 외등은 주변의 어둠을 밀어내고 환하게 밝힌다. 간혹 처녀 총각이 아파트 놀이터에서 데이트할 때 밝은 불빛이 그들을 보호한다. 연인들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 사랑을 속닥이지만, 나는 무척 신경이 쓰인다. 아파트 뒤쪽 외진 곳에서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인끼리 있을 때는 한 쌍의 잉꼬처럼 아름다워 보이지만, 두세 명의 청년들이 나타나 그들에게 시비를 걸 때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가까이 다가가 입주민의 청년에게 타일러 돌려보내기도 여러 번이다.
  펄 속에서도 연꽃이 자라듯 서민 아파트 입주민이 경비원에게 물질적으로 베푸는 사람도 있었다. 설 추석 명절에 한두 명의 주민에게 비누 한 박스 선물 받았지만, 나에겐 그런 감동적인 날이었다. 내생의 마지막 직장생활을CC-TV에 밀려 즐거웠던 경비 근무를 구만두는 아쉬움은 아직도 미련이 남는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25건 1 페이지
소설·수필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25
담임선생 2 댓글+ 1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3 0 07-29
24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4 0 07-28
23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7 0 05-22
22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17 0 05-04
21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53 0 04-12
20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03 0 03-18
19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3 0 02-14
18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28 0 01-30
17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48 0 05-12
16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16 0 03-12
15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0 0 02-18
14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5 0 01-30
13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99 0 01-09
12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38 0 01-09
11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69 0 12-08
10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75 0 08-23
9
장자산에서 댓글+ 2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71 0 06-01
8
파도소리 댓글+ 2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6 0 04-22
7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49 0 04-06
6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62 0 02-13
5 지명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85 0 01-13
4 김 지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56 0 01-07
열람중 김 지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72 0 01-03
2 김 지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80 0 11-19
1 김 지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65 0 07-21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