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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시상詩想에 대한 짧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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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92회 작성일 24-05-0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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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상詩想에 대한 짧은 생각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시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늘 머리를 메운 생각은 시상에 대한 문제였다. 시상의 사전적 의미는 시를 지을 때 떠오르는 시인의 느낌이나 생각이다. 하지만 과연 사전적 의미로 시상이라는 말을 다 대변할 수 있을지 매번 의문이 든다. 시인의 느낌이나 생각 속에는 오랜 시간의 변천과 세월의 윤색, 경험에 근거한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대뇌의 기능적 요소 등 많은 인자가 서로 반응하고 작용하면서 만들어지는 찰나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테드 휴즈[Ted Hughes]의 “생각 속의 여우” 라는 작품 속의 도입부를 보면 시상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구절이 있다.


생각 속의 여우


테드 휴즈


나는 상상한다 이 한밤중의 순간의 숲을

딴 무엇인가가 살아있다

시계의 고독 곁에

그리고 네 손가락이 움직이는 이 백지 곁에

-중략


영국의 유명한 시인 테드 휴즈를 언급한 감상글에 이런 말이 있다. '죽은 생각들을 살려내는 언어의 소생술을 가진 시인‘


시상이라는 것은 실제 존재하거나 보이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감상글의 말처럼 죽은 생각이나 죽은 말이나 이미 가시화 되어있거나 그 반대의 경우에 속한 모든 것에서 얻을 수 있는 시적 영감이라는 생각이 정답일 것이다. 무엇을 보고 느끼는 것과 동시에 무엇이 아닌 것에서 [실존, 실재] 무엇을 본다는 것, 상상이라는 말이다. 상상은 볼 수 없는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위대한 작업이다. 동시에 본 것에서 보지 못한 것을 느끼는 일종의 나만의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사물이나 현상에 대하여 다분히 공통적 감정이나 느낌은 있겠지만 좀 더 나만의 안경을 끼고 볼 수 있을 때, 그것을 시인만의 독특한 시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꿈을 기록하는 시인이 있다. 김참 시인이다. 그의 시는 꿈의 변용이라고 한다. 그의 시 세계는 꿈이 가득하다. 때론 동시처럼 때론 동화의 한 부분처럼, 옛날이야기의 한 부분처럼 독자에게 다가와 자신의 꿈속으로 들어와 독자 자신의 꿈을 꾸게 유도하는 시인이다. 시상에 대하여 김참 시인의 시,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이라는 글을 인용해 본다.


시(詩),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


김참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해야만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주위에서 듣는 여러 가지 소리들도 음악이 된다. 시도 마찬가지리라. 글로 써야만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시가 아니겠는가? 흔들리는 나무도, 그 나무 아래를 걸어가는 사람도, 그의 구둣발 소리도 시가 아니겠는가? 그렇다! 글로 표현되지 않아도 시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가 사는 세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나는 시가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혼란스런 모습을 띄고 있어서 그 실체를 쉽게 그려내기 어렵다. 지구 위에는 인간 외에도 다양한 동식물이 존재하고, 그것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새들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물고기는 강과 바다를 헤엄치며 산다. 사람이 느끼는 세계는 물고기나 새들이 느끼는 세계와는 다르며, 나무와 풀, 돼지나 고양이들이 느끼는 세계와 다르다.


우리는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박쥐들에게는 박쥐들의 세계가 있고, 풍뎅이에게는 풍뎅이들의 세계가 있다. 우리가 새와 물고기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듯, 새나 물고기도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알지 못하고, 무당벌레와 심해어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다. 나의 시가 세계를 그려내는 작업이라면 이 작업은 끝이 없는 여행이며 모험이다. 때로는 길을 잃고 미로 속을 헤매지만 나는 나의 여행을 사랑한다.


음악과 그림이 시 쓰기에 도움을 줄 때가 많다. 특히 음악을 들으면 시상이 잘 떠오르는 편이다. 그래서 시를 쓸 때는 음악을 틀어 놓는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시를 쓸 때는, 음악을 틀어 놓지 않았을 때보다 시가 잘 써진다. 시 쓰기에 몰입하다 보면 음반 몇 장 듣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그림을 보면 느닷없이 시상이 떠오를 때도 있다. 첫 시집에 수록된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는 고대인들의 그림을, 두 번째 시집에 수록된 「너의 눈」은 샤갈의 그림을 보고 쓴 시다. 뿐만 아니라 두 번째 시집에는 그림이나 그림 속 인물, 그림 그리는 사람을 소재로 하고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 그림도 시가 되고 음악도 시가 된다. 모든 것이 시다.


나는 가끔 꿈속에서 고향 마을을 보곤 한다. 내가 살던 마을의 산 아래에는 저수지가 두 개 있었다. 나는 가끔 꿈에서 그 저수지들을 본다. 내가 꿈에서 보는 고향도 그렇지만, 내 꿈에 나타난 저수지 역시 고향에 있는 저수지와는 다르다. 나는 저수지 주위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데 꿈속에서 나는 그들과 잘 안다. 꿈에서 깨어나 생각해 보면 그들은 내가 모르는 사람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예전에 내가 알았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저수지에는 아주 거대한 물고기들이 산다. 그놈들이 수면을 박차고 오르면 나는 개미만큼 작아진다. 나는 언젠가 저수지와 저수지에 사는 거대한 물고기에 대한 시를 써보리라 생각했다. 거대한 물고기가 나오는 시를 쓴 적은 있지만 시를 고치는 과정에서 거대한 물고기는 사라져 버렸다. 그 대신에 나는 저수지를 찾아가는 시 한 편을 썼다.


비가 그치면 새들이 날아 나오는 숲을 알고 있다. 그 숲은 이 세계에도 있지만, 꿈의 세계에도 있다. 숲 뒤에는 산이 있고 비가 그치면 구름이 산 너머로 천천히 움직인다. 가끔 비에 젖은 날개를 끌고 가던 거무튀튀한 나방이 양철 지붕 아래로 힘없이 떨어진다. 그 양철 지붕 아래 네모난 창문이 있고, 창문 안에 한 사람이 서 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바다 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도라지 밭을 흔들며 지나가는 것을 본다. 바람이 불 때 뒷산 삼나무가 몸 흔드는 것을 보기도 한다. 덜컹거리는 완행열차가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는 잠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때때로 그는 내가 되기도 한다.


잠에서 깨어나니 돌아가신 할머니가 무를 다듬고 있다. 나는 작은 아이가 되어 할머니 드엥 업혀 있다. 할머니는 다듬은 무를 한쪽으로 치워 놓고 집 밖으로 걸어 나간다. 나는 할머니 등에 업혀 풀밭 위를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개구리를 바라보거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새들이 바람에 휘청거리는 것을 보기도 한다. 비가 온 뒤라 풀들은 젖어 있었고 도랑엔 흙탕물이 흐르고 있다. 할머니는 말없이 도랑을 바라보았고, 말 못하는 나도 할머니 등에 업혀 흙탕물 흐르는 도랑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니 할머니와 내가 서 있는 땅이 쏜살같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어지러워 고개를 들었다. 산자락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구름과, 구름을 밀어 올리는 바람이 산자락의 나무들을 마구 흔들고 있다.


나물을 뜯으러 산으로 갔던 동네 처녀들이 바구니를 들고 돌담 옆을 지나간다. 돌담 앞에 늘어선 오리나무 뒤에서 푸른 눈의 고양이가 슬그머니 걸어 나온다. 소나기가 지나간 마을은 너무 조용하다. 아무 소리도 없다. 마을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올 때 나는 할머니 등에 업혀 날아다니는 나비를 본다. 흰 날개 펄럭이며 훨훨 날아가는 나비를 본다. 도라지 하얀 꽃 파도 위를 날아가는 나비를 바라본다. 도라지 밭 지나 해바라기 노란 꽃 위에 내려앉는 나비, 내 눈 가득 들어오는 나비를 오랫동안 바라본다.


비가 그치자 굴뚝과 이어진 벽을 타고 개미들이 열을 지어 기어 다닌다. 개미를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개미 눈에는 내가 보이는 걸까? 개미들은 왜 걸어 다니지 않고 기어 다니는 걸까? 개미는 왜 끝도 없이 먹이를 나르는 걸까? 나는 왜 종일 방에 처박혀 잠을 잤을까? 잠자지 않을 때는 왜 깨어 있는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잠을 자거나 깨어 있어야 하는 걸까? 잠을 자지도 깨어 있지도 않는 것은 죽은 것들밖에 없는가? 잠을 자거나 깨어 있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나는 날마다 이런 생각이나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다. 새들은 어스름을 타고 숲으로 돌아간다. 회색 구름도 점점 검은색으로 변한다. 개미들은 양철 지붕 아래 떨어진 나방을 끌고 그루터기 뒤로 기어갈 것이다. 짙은 치자 향기를 싣고 온 바람이 뜰에 서 있는 삼나무를 타고 방으로 들어온다. 나는 책상 위에 펜을 내려놓고 마지막 완행열차가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본다.


그는 그 무렵 완행열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완행열차가 검은 연기를 뿜으며 멀어지는 것도 자주 보았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다. 그가 태어나기 몇 해 전에 철로는 폐쇄되었고 완행열차는 물론 특급열차도 그 마을을 지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완행열차의 기적 소리를 들은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언덕 위로 검은 연기를 뿜으며 천천히 지나가는 완행열차를 본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는 생각을 멈추고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가 쓰는 시에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둘러싼 공간이 제시된다. 그러니까 그의 시에서는 대부분 시에 등장하는 사람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는 때때로 그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사라진다. 그는 그가 쓴 시 속으로 들어가 여행을 시작한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집을 나와 바깥 세계로 여행을 한다. 가끔, 그도 그가 쓰는 시 속의 인물이 되어 여행을 떠난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은 모험이다. 그는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자주 길을 잃는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집을 찾으려고 미로 속을 헤매기도 한다. 때로는 길을 잃고 그는 이상한 사람들이 사는 이상한 세계로 들어간다. 언젠가 그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겠지만, 그는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고 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이 세상에 갑자기 태어나 영문도 모르고 한세상 살아가는 나를 닮았고, 자신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들을 닮았다.


「시(詩),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 김참] 일부 인용


시상이라는 주제에 맞는 시 세 편을 선정해 시인이 사물이나 현상에 대하여 느낀 것과 시상으로 풀어나가는 시인 고유의 시 세계를 살펴보기로 했다. 시상은 매우 쉬운 말이면서 동시에 매우 어려운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첫 작품은 허청미 시인의 [건널목을 건너면 정육점이 있다]라는 작품을 소개한다.


건널목을 건너면 정육점이 있다


허청미


횡단보도 건너 정육점이 있고

분홍빛 진열장 안에

원형이 해체되고 이름으로 부활하는

소와 돼지와 닭과 오리들의 부품들이 헤쳐 모였다

허기진 하에나 해마에 고딕체로 새겨진 잉여의 사체들이다


사체 몇 점을 담은 검은 비닐봉지가 정육점에서 나오다

붉은 신호등의 단호함을 무시한다

회색 카니발 속도의 근성은 잔인했다

9회 말 역전 홈런처럼

검은 비닐봉지는 허공으로 떠오르고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이편저편에서 저음으로 과아악 과악-

어디서 날아왔을까 곡비처럼 까마귀가 운다

오늘 카니발은 회색빛이다


정육점은 건널목 건너에 있었고 있고 또 있을 것이다

나는 너는 우리는 배고프고

정육점이 있는 건널목을 건너는 이유다

붉은 신호등 앞에서 색맹이 되는 이유다


인간의 욕심 중에 가장 큰 것은 어쩌면 식욕일지도 모른다. 배고픔은 생존을 위한 가장 최소한의 욕구지만, 배고픔을 넘어 먹는 것에 대한 욕심이 과할 때 우리는 식탐이라고 부른다. 먹는 것을 탐한다는 말이다. 생존을 넘어 먹는 것에 대한 과한 욕심, 물론 식도락이라는 말 역시 있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먹는 것에 대한 욕심의 범주 속에 있을 것이다. 시인의 시상은 한 군데 머물러 있지 않았다. 정육점의 분홍빛 진열장 안에 해체된 채 누워있는 소와 돼지 닭 오리 등등의 부품 속을 가장 먼저 보고, 사체 몇 점을 담은 비닐봉지를 보고, 건널목을 보고, 불의의 사고를 당한 비닐봉지가 허공을 부유하는 것을 보고 급정거하는 타이어의 스키드마크를 보고 그 모든 본 것들 속에서 인간이 건널목을 건너는 이유를 상상해 냈다. 


횡단보도 건너 정육점이 있고

분홍빛 진열장 안에

원형이 해체되고 이름으로 부활하는

소와 돼지와 닭과 오리들의 부품들이 헤쳐 모였다

허기진 하에나 해마에 고딕체로 새겨진 잉여의 사체들이다


정육점의 고기에 대해서는 분명하고 단호한 어조로 먹는 것이 아닌, 잉여의 사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어떤 죽음은 숭고하고 어떤 죽음은 아무렇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생존 앞에서 먹이는 또 다른 어떤 것의 먹이가 되는 사슬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삶이다. 하지만 잉여의 사체를 먹기 위해 우리는 건널목을 건너고 정육점의 분홍색 불빛에 이끌린다는 것에 대한 시인의 메시지는 매우 선명하다.


정육점은 건널목 건너에 있었고 있고 또 있을 것이다

나는 너는 우리는 배고프고

정육점이 있는 건널목을 건너는 이유다

붉은 신호등 앞에서 색맹이 되는 이유다


우리는 배고프고/ 과연 우리는 배고프기 때문에 건널목을 건너는 것일까? 잉여의 사체를 탐하기 위하여 붉은 신호등 앞에서 색맹이 되는 것일까? 시상에서 전개된 시인의 시적 자아는 배고픔 너머의 우릴 경계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너머 존재하는 ‘탐’의 속성에 대하여 경계의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를 쓴다는 것은 대상을 자기만의 눈으로 보는 것이며 그렇게 본 것에 대한 자기만의 잣대를 들이대고 상상의 품격을 확장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소와 돼지와 닭과 오리를 보는 우리의 시선[나]과 소와 돼지와 닭과 오리가 보는 우리[너] 그 시선의 너머에 과연 잉여의 사체만이 존재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본문 중 9회 말 역전 홈런처럼 떠오른 검은 비닐봉지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나] 혹은 [너]의 잉여 되거나 해체된 무엇일지 못내 아득하다.


두 번째 작품은 조성범 시인의 [순장]이라는 작품이다. 순장은 왕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그의 아내나 신하 또는 종들을 함께 매장하던 고대의 장례 풍속이다. 잠시 순장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나열해 본다.


『삼국사기』 고구려 동천왕 22년(248)조에는 왕이 죽자 가까운 신하들이 스스로 죽어 순장되려 하자, 사왕(嗣王 : 중천왕)이 이는 예(禮)가 아니라 금했으나 장례일에 이르자 스스로 목숨을 버린 자가 매우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의 경우에서 보이는 자사순장(自死殉葬 : 죽은 자를 따라 자발적으로 죽어 순장에 임함)의 풍습은 부여에서 보이는 살인순장(殺人殉葬)과 비교되는 또 다른 형태의 순장풍습이라 할 수 있다.


또 『삼국사기』 신라본기(新羅本紀) 지증왕조(智證王條)에는 ‘502년(지증왕 3) 봄 3월에 명령을 내려 순장을 금하였다. 그 전에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 5명씩을 죽여서 순장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이를 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 보아 신라의 순장 습속은 국초에서부터 전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고대 한국사회에서 순장이 행해졌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그 폐해도 심각했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고고학적 자료를 보면, 의성 탑리, 창녕 계성리 등의 돌덧널무덤과 양산 부부총(夫婦塚), 고령 지산동 제45호분, 순흥 읍내리 고분 등의 예에서 순장의 증거들이 확인된 바 있다. 특히, 고령 지산동 제45호분의 경우는 시종(侍從)·무사(武士)·창고지기 등을 구분해 각각의 돌덧널에 순장한 것이 출토유물의 분석 결과 확인되었다.


경주 용강동 고분(사적 328호) 출토 도용은 순장 대신 묻힌 것으로,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 수(隋)와 당(唐)나라 때의 호상(胡商)인 소그드(Sogd/Soghd)인들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강화 양도면 길정리에 소재한 고려 21대 희종(熙宗)의 석릉(碩陵, 사적 369) 주위의 배총들은 당시 가신들의 묘로 여겨진다.


섬서성(陝西省) 여산(驪山)에서 발굴된 진시황제(秦始皇帝)의 무덤에서는 보병의 1호, 궁수·전차와 기마부대의 2호, 그리고 지휘통솔부의 3호의 병마갱(兵馬坑)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중앙 왕릉 근처에서 발견된 80여 개의 갱(坑) 중 석판을 이어 만든 갑옷인 석제찰갑(石製札甲)만 500벌을 매장한 갱(坑)이 새로이 발굴되었다. 이는 진시황이 전사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매장한 것으로 추측된다. 진시황의 병마갱은 한(漢)나라에서도 계속 만들어졌으며, 섬서성(陝西省) 양가만(楊家灣)에서 발견된 주발(周勃)과 1970~1976년에 발견된 주아부(周亞夫) 부자(父子)묘(4·5호묘)에서도 발견된다. 이들은 기원전 195년에 죽은 한고조(漢高祖) 무덤인 장릉(長陵)의 배장묘(陪葬墓)로 추정된다. 그리고 강소성(江蘇省) 서초산(西樵山)에서 1988~1995년에 발굴된 초(楚)나라 3대 왕인 유우(劉禹)의 묘에서도 병마갱이 발견되었다.


이와 같이 순장은 세계적으로 고대문명지역이나 그 영향권에 있는 지역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노예의 노동력, 처첩 등의 인격이 중요시되면서 순장은 차츰 사라지고, 여러 가지 대용물이 등장하게 되었다. -중략-


「한국 민족 문화 대 백과 사전/ 순장]일부 인용


아들이 순장에 관해 묻는다. 시인은 단호하게 말한다. “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국거리가 된 소 같은 이야기란다“시가 여기서 멈추거나 종결되었다면 시의 순기능이 다소 부족한 미완성 작품으로 오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인의 시상은 국거리가 된 소에서 시작해 순장과 순종의 의미를 극적으로 이끌어 냈다. 쉽게 확장하기 어려운 부분을 삶의 어느 지점에서 경험하거나 본 것을 접목하여 시적 완성도를 매우 높인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시의 플롯은 단순하게 꾸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단순하게 보이고자 한 부분에서 시인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구성상의 재치가 번뜩인다는 말이다.


고삐도 멍에도 그때 다 풀리지

그럼 좋은 거예요? 아니, 그래서 없어졌어.


소가 국거리가 된 순간 목을 죄고 있던 고삐와 멍에가 모두 사라져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결국 그 종착점은 국거리이며 그래서 순장이 없어졌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또 강렬하게 자신의 메시지를 던진다.


나 같으면 도망이라도 쳤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지.


순장은 제도하기보다는 아마 순종이었지 싶어.


순종한다는 것은 광의의 개념으로 볼 때 희생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희생이 그랬고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희생이 그랬다. 어느 한순간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결국 순종의 삶을 택한 우리네와 우리네 부모 세대, 시인의 시상은 소 한 마리에서 출발하여 순종이라는 숭고한 의미로까지 발전하고 전개된다. 좋은 시는 절대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글자 하나하나 수만 번을 고민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눈으로 읽으면 그렇다.


마지막 작품은 박선희 시인의 [동반]이라는 작품이다. 어항 속 물고기가 새끼를 낳고, 혹 잡아먹힐까 다른 곳으로 옮기던 중, 물 밖을 나온 어미가 바닥에 떨어져 죽었다는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실의 나열이다. 하지만 시상은 그 사실의 나열을 천천히 관조해 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동반


박선희


출산이 임박한 물고기

어항 속을 휘젓고 다녔다

구피를 건네주던 이에게 전해 들은 말

“새끼들 태어나자마자 잡아먹혀요”

그들을 보호하려고 유리그릇으로 옮겼다


유리그릇 속 어미는 필사적이었겠지

뱃속의 눈동자들을 지키려 뛰어오른 높이가 

낭떠러지가 될 줄

온몸으로 그 높이를 건너 죽음에 이를 줄

남산을 끌어안고 방 네 귀퉁이를 휘젓고 다녔던

나의 어느 날처럼

구피의 산통이었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축축한 몸이 말라가는 동안 어미는

새끼들에게 무슨 말을 건넸을까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었을 새끼들

바닥은 걷어가는 죽음을 받아 안고 떨고 있었다

행여 호흡이 돌아올까 무리 속에 넣어 보지만

힘겹게 숨결 흐려지는 중이었다

제 목숨 캄캄해지는 줄도 모르고*

고요를 끌어안은 어미


위한다는 일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끔찍함이라니

깜깜하고 깜깜한데*

너는 내 눈 속을 헤집으며

밤낮으로 뛰어오르고 있다



*김충규 시 인용


위에 언급한 조성범 시인의 [순장]에서 필자는 순종과 희생을 같은 의미의 희언이라고 필설한 바 있다. 박선희 시인의 [동반] 역시 희생의 관점을 시인의 시선으로 새롭게 여미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위한다는 일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끔찍함이라니


이 한 행에서 시는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행 속에는 어떠한 해설이나 어떠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구피 새끼를 보호하려고 어미를 유리그릇으로 옮긴 것이나 유리그릇 속의 어미가 뱃속의 눈동자들을 지키려 필사적으로 뛰어오른 것이나 그 모든 행위의 귀결점은 죽음에 이르는 끔찍함이었다. 시인의 어려운 한 시절, 남산을 끌어안고 좁은 방의 네 귀퉁이를 휘젓고 다닌 기억들, 그리고 산통, 구피의 산통, 어미의 산통, 삶의 산통, 인생의 산통, 이 모든 산통의 의미는 비록 죽음에 이르는 끔찍함이라 해도 결국은 운명이나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희생이며 순종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바닥은 걷어가는 죽음을 받아 안고 떨고 있었다


제 목숨 캄캄해지는 줄도 모르고*

고요를 끌어안은 어미


깜깜하고 깜깜한데*


세 개의 행만 따로 놓아도 훌륭한 시가 된다. 어둠의 배경과 걷어가는 죽음을 안고 떨고 있는 바닥의 풍경과 깜깜 + 깜깜의 공감각적 표현이 절묘하다. 혹자는 단순한 진술의 나열이라고 읽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시인이 전개하는 시상과, 그 확장과, 그 배후에 먹먹하게 들어선 시인의 아픔이 읽힌다. 다시 또 몇 번이라도 유리그릇 밖으로 뛰어오를 그 아름답고 처연한 어미 구피의 몸짓은 결국 우리네 인생의 우리 자신이 아닐까 싶다.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동질의 부피가 무겁다. 


시상은 시의 출발점이며 시를 구성하는 골격이며 바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땅이 없으면 건물을 지을 수 없다. 그 땅이 모래땅이면 사상누각이 되는 것이며 단단한 토지라면 고대광실이 될 것이다. 골격이 부실하면 고대광실도 쉽게 무너지는 법이다. 시상의 토지 위에 사유라는 골조를 단단하게 세워놓으면 고층 빌딩도 쉽게 지을 수 있듯 사유의 확장도 곧게 뻗어 나갈 수 있는 법이다. 시는 어쩌면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면 꿈을 꾸는 일이다. 김부회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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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제어창님의 댓글

profile_image 제어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고백

        서승원

시 앞에서 나는 개
어여쁜 꽃이나 높게 솟아 오른 나무가 아닌
시에 찔려 죽는 인간도 아닌
그저 한 밤중에 달을 보고 짖는 개
멍멍 개

김시인님 글을 읽다가 생각나서 디카시로 써보려고 적어봤습니다
공부가 되는 글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장승규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는 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새소리 물소리가 음악이듯,
네 모습 내 모습이 회화이듯,

시는
이 세상을 그려내는 한 가지 방법이다

시상이란
시적 영감이다.
시인이 세상에서 시 한 편을  쪼아낼 때 떠오르는

보이는 것에서 안 보이는 것을 보고 느끼는
시인만의 영감이다
이 영감을 쪼아내는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김부회님!
우리 동인의 자랑입니다.

시인님의 글을 위와 같이 이해하고
단순한 내 머리 속에 꽉 새겨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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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을동인의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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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댓글+ 4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1 0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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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올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2 0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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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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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떼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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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암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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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누나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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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하셉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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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경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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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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