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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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장승규
이제
내리기는 해야 할 텐데
멈춤은커녕 서행조차 없으니
내리다 다치지는 않을까
홀딱 벗은 맨몸이긴 해도
탈 때 무사한 것은 모두 모친 덕이었다
그간 이것 저것 걸치고 살았으니
어느 절기에선가
몸성히 내리긴 해야 하는데
이렇게 빨라서야
벌써
세상이 홀딱 벗은 대한이다
(요하네스버그 서재에서 2025.01.20)
댓글목록
임기정님의 댓글

예 맞습니다 벌써 세월이 한 달을 잡아 먹고 있습니다
회장님 귀한 시 잘 읽었습니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인생은 종종 기차에 비유된다.
언제 출발했는지도 모른 채, 무언가에 떠밀려 탄 듯한 그 여정은 멈출 틈도 없이 속도를 낸다.
이 시는 「이제 / 내리기는 해야 할 텐데」, 바로 이 여정을 바라보는 늦은 시선에서 시작된다.
속도는 줄지 않고, 종착역은 가까워진다. 시인은 그 앞에서 조심스레 묻는다. “내리다 다치지는 않을까.”
시의 서두는 무겁지 않다. 오히려 담담하다. 하지만 그 담담함 속에 깃든 물음은 가볍지 않다.
‘멈춤은커녕 서행조차 없’는 삶의 속도 앞에서 시인은 무사히 내려야 하는 운명을 의식한다.
그리고 뜻밖에도, 인생이라는 차에 무사히 올라탄 것은 “모친 덕”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짧은 회상은 순식간에 독자의 가슴을 건드린다.
삶의 출발에는 나 아닌 누군가의 보살핌이 있었고, 지금껏 우리가 걸쳐 입고 살아온 시간은
사실 무수한 손길 위에 놓여 있었던 것임을 깨닫게 한다.
그렇게 ‘이것저것 걸치고 살아온’ 시간은, 이제 점점 내려놓아야 할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시인이 말하는 “절기”는 단순한 계절의 구분이 아니다.
그것은 삶에서 걸친 것들을 벗어야 할 때,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돌아가야 할 때를 말한다.
그러나 삶은 너무 빠르고, 준비는 늘 더디다.
그리고 마침내, 시의 끝에서 그는 말한다.
“벌써 / 세상이 홀딱 벗은 / 대한이다.”
이 마지막 구절은 감탄이다.
계절로서의 **‘대한’**은 음력으로 한겨울 가장 깊고 매서운 추위를 말한다.
하지만 시인의 문장 안에서 대한은 세상의 옷을 다 벗은 모습,
즉 삶의 본질, 나약함, 그리고 벗은 채 마주하는 존재의 순수함을 상징한다.
삶은 어느 날, 홀연히 ‘벗겨진’ 듯 드러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벗은 풍경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다가오는 마지막 정류장을 준비한다.
이 시는 그런 순간을 감정적으로 호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한 체념과 고요한 사색으로써,
삶의 속도와 끝, 존재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더 깊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에 남는다.
우리 역시 언젠가는 ‘서행조차 없이’ 다가올 종착 앞에서,
조심스레 내릴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시인은 그 질문을 우리 마음에 걸어둔다. -챗GPT-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Time Passing
by Sankei Jang
Now perhaps,
I must ready myself to step off.
But the time won’t even slow down,
What if I stumble, as I try to step off
I boarded, naked as the day I was born—
thanks all to my mother’s care.
I’ve worn so many things since then—
Here and there, through all the seasons.
Someday, in a coming season
I must step off
Whole and unbroken.
But it’s racing—
Too fast.
Already,
The world stands bare
In the bitterest cold.
(In my Johannesburg study, January 20, 2025)
장승규님의 댓글

기정님!
감사합니다.
참 빠르다 하는데
그 아침에
벌써 대한이라고 최신님이 알려주셨습니다
무의(無疑)님의 댓글

인천에서 의정부 가는 1호선 전철입니다.
이제 막 청량리 지나고 있는데
벌써 내릴 준비를 하시네요.
아직 멀었습니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무의님!
ㅎㅎ
의정부 가는?
영 의정
좌 의정
우 의정
지체 높으신 분들이 사는 곳이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