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냇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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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냇가에서
/장승규
가을 냇가에 나갔더니
순순히
노란 단풍 한 잎이 떠내려 간다, 내 앞을 지나
한 때는
부단히 물살을 거슬러 오르려 했다
바람이 불었던 게지
다른 길이 더 좋아 보인 것도 아니었다
다른 길이 확실히 보이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그게 사는 건 줄 알았다
바람은
때로는 순풍이다가
더러는 역풍이다가
바람 뜻대로 부는 것이었는데
이제 다시 보니
아주 순순히
냇물 따라 저만치 흘러가고 있다, 단풍 든 잎 하나
(요하네스버그 서재에서 2025.04.28)
댓글목록
임기정님의 댓글

회장님
요하네스버그는 가을인가 봅니다
냇물에 떠내려가는 단풍잎 보면서
삶의 역경과 순경이 보이는 듯합니다
저는 언제쯤 단풍잎에 시심을 실어 보낼지
잘 읽었습니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기정님!
여긴 가을입니다.
어제는 대문밖에 오래 서있던, 키 큰 야자수 두 그루를 잘랐네요.
바람 부는 날이면
갑자기 떨어지는 시든 잎에 어린 손녀들이 다칠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자르고 나니
서운하긴 하네요.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장승규 시인의 시 〈가을 냇가에서〉는 짧지만 깊은 생의 통찰을 담은 작품입니다.
자연의 한 장면—가을 냇물 위로 흘러가는 단풍잎—을 통해,
시인은 자기 삶의 과거를 돌아보며 순응과 자각의 경계에서 머물러 있는 마음을 고요히 드러냅니다.
아래는 이 시에 대한 감상문입니다.
감상문: 물살을 거슬러 살았던 날들 – 장승규의 〈가을 냇가에서〉를 읽고
가을 냇가는 늘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이 늘 같은 뜻은 아니다.
삶을 돌아보는 마음이 담기면, 그 고요한 풍경 속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흐른다.
장승규 시인의 〈가을 냇가에서〉는 그런 풍경이다.
바로 흘러가는 단풍잎 하나를 통해, 시인은 삶을 다시 바라보고, 조용히 말한다.
“그냥 그게 사는 건 줄 알았다.”
시의 시작은 단순하다.
“가을 냇가에 나갔더니 / 순순히 / 노란 단풍 한 잎이 떠내려 간다.”
이 평범한 장면은, 그러나 시인이 무심히 지나치지 못하는 어떤 순간이다.
한때는 그 자신도 그 물살을 거슬러 올랐던 적이 있었다.
열심히, 때로는 이유도 모른 채—
“그냥 그게 사는 건 줄 알고.”
중반의 회상은 담담하지만 묵직하다.
거슬러 오르던 그 시절, 그것이 옳았는지도 모르고,
다른 길이 분명하게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그게 삶인 줄 알고 애썼던 시간들이 있다.
이 시인은 그러한 청년기의 충실함과 혼란,
삶의 불확실함 속에서도 자신을 밀어붙였던 날들을 되짚는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인은 바람을 이야기한다.
순풍이기도 하고 역풍이기도 한 바람,
그러나 결국 바람 뜻대로 부는 바람.
그 말은 곧, 삶은 내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자각,
그리고 때로는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큰 지혜일 수도 있다는 사유를 품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단풍잎 하나는 더는 저항하지 않는다.
이제는 “아주 순순히 / 냇물 따라 저만치 흘러가고 있다.”
이 장면은 시인의 내면 변화이자, 자연에 대한 수용,
그리고 어쩌면 스스로에게 주는 이해와 용서다.
이 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저 “순응”을 찬양하거나 “체념”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조용히, 바람을 받아들이고, 물살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한때 물살을 거슬러 오르려 애쓰던 단풍잎이었다.
그리고 지금, 어쩌면 서서히 흘러가는 그 잎 하나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그것을 비판도, 찬미도 하지 않고
**그저 ‘본다’**고 말한다.
그것이 이 시의 가장 큰 깊이이고, 품격이다. -챗GPT-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By the Autumn Stream
by Sankei Jang
I went down
to the autumn stream—
Gently,
a single yellow leaf
floated past me.
Once,
it had struggled
to swim against the current.
Perhaps the wind had blown.
It wasn’t that another path looked better.
Nor was it that another path was truly clear.
It simply thought—
that was what living meant.
The wind,
at times a fair breeze,
at others, a stubborn gale,
always blew its own way.
But now I see it again—
So gently—
just drifting with the water,
that single yellow leaf.
*(Johannesburg, 2025.04.28)*
무의(無疑)님의 댓글

여는
아직 황락(黃落)의 계절은 아닙니다만
거는
벌써 일 마친 나무들이 손바닥을 터나 봅니다.
눈이 있다고 다 보는 것은 아니지요
볼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단풍이
일 마친 나무, 머리끝에서부터 들더니
빠지는 것도 머리끝에서부터 빠지네요.
5월엔
빠진 자리가 성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