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 붉은 끝동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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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붉은 끝동 같은*
-열화정**
범 한 마리 웅크리고 앉았다. 한달음에 뛰쳐나갈 것처럼
여백 속 의도된 한 방울의 담묵이다
고샅을 거쳐 함께 오른 볕이 땀을 식히고
대숲을 빠져나온 바람
보고 들은 이야기 재잘거리니 돌담 너머 기웃거리는 웃음이 야릇하다
모난 데 없이 가지런히 쌓인 돌담
오랜 풍상 견디며 터 잡고 산 향민의 마음 같아 오래, 오래 들여다보았다
담 너머 보이는, 옹기종기 눈 아래라 듬직하고
누마루에 앉아 받아 든 차 한 잔
머금은 새파란 새벽 향기가 입안에서 기지개를 켠다
나누는 이야기도 기쁘려니와 찻잔에 띄워 건네는 눈빛 또한 따사롭고
가고 없는 이들이 남긴 시 한 수, 한 수가 정겹다
늘 비취는 것 보다 스쳐 지나는 것에 더 마음 쓰는,
까치 두 마리 제 그림자 가지고 장난치는
ㄱ이라 해도 좋고 ㄴ이라 해도 괜찮을 작은 연못
모든 것 다 품어주는 어머니 같아 못된 새끼 돌 하나 던져 그 마음 헤집는다
얼굴마저 씻은 볕이
떠날 시간 되었다고 앞장서 길을 잡는다
옷소매 붉은 끝동 같은
자목련, 잊지 말라고 온몸으로 진다
*드라마 제목 차용
**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에 있는 정자로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같은’ 촬영지
모던포엠 3월호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자목련의 노래이군요
정말로
옷소매 붉은 끝동같은
향호님!
여기서라도 자주 뵙고 싶습니다.
임기정님의 댓글

옷소매 붉은 꽃등 드라마 본 적 없지만
열화정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네요
시 맛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