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긋과 해후의 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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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긋 과 해후의 착시 / 이 종원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가다가
몰려 들어오는 태양에
감았던 눈을 한 뼘 늘리고 나면
머리카락 사이 맑은 호수에 시선이 빠지고 만다
사심을 들키지는 않았을까
미니스커트 큰 키가 옷깃을 여밀 때
나는 눈부심을 핑계 삼아
물살을 오래 거슬러 오른 것은 아닌지
짐짓 시선이 허우적거리는 사이
교행하던 눈동자가 힐긋을 나무라고 지나간다
힘들게 올라섰던 계단을 내려놓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빛의 꼬리를 붙잡으러 오던 길로 돌아선다
잔상을 기억해가며
반짝거리던 물비늘을 걷어내었지만
실밥을 뜯어내듯이
봉쇄되었던 시간이 밀물처럼
주머니에서 새어 나가는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기역으로 꺾인 골목에서
나는 그예 향기를 놓치고 만다
홀로그램이었을까
곡선을 따라 흐르던 바람 소리였을까
시간 속에 가둬두었던 생각이 구르지 못하고
네모처럼 때로 세모처럼
발목에 매달린 무게로 구속한다
개찰구 안으로 사라져가는 좌표를 놓아주고
실루엣만 어깨에 두른 채
또 다른 햇살이 바람에 실려 오기를 바라며
지친 계단을 무심히 오르고 있다
댓글목록
서피랑님의 댓글

요즘 습작에 열정적이시네요,
저는 가끔 만지작거리다 마는데 ㅎㅎ
암튼 꾹꾹 눌러 쓴 시편들을 대하며 많은 자극이 됩니다.
즐감했습니다.^^
이종원님의 댓글의 댓글

꾹꾹 눌러쓰다보니 지워지지가 않아 수정이 잘 않됩니다. ㅎ
늘 조용하게 열심히, 좋은 시를 생산하시는 이 시인님에게서 저 또한 많은 자극을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金富會님의 댓글

많은 현상과 사물과 일상 속에서 무언가 발견한다는 것은 어쩌면
나에 대한 또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것과 같을 것이라는...생각이 듭니다.
발목에 매달린 무게......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