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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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윤
어느 날 아버지가 고물상에서 데려 온 선풍기는 요리보고
저리 봐도 신기한 새 식구여서 호기심에 슬쩍 손가락을 넣
어 바람을 흔들어 보다가 어머니에게 혼이 나기도 하였는데
느리게 돌던 날개를 따라 아부지 난닝구 땀방울이 헐렁헐
렁 돌아가고 우리 삼 남매 얼굴도 헐렁헐렁 따라 돌던 그 바
람은 참 엉성하기도 하여서 손바닥에도 얼굴에도 달달달 달
라붙었다 떨어져 가던 그 바람은 참 순하기도 하여서 어머니
무릎이 되었다가 한 여름 맴맴 울음소리가 되기도 하였던 그
바람은 가끔 가던 길 멈추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아버진 선
풍기 머리를 사정없이 탁! 하고 쳤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돌
다 보면 어느덧 교복 입고 학교 가는 길, 머리 위를 느리게
따라오던 잠자리는 어느 집에서 달아난 날개였는지 손가락
으로 잡으면 파르르 얼굴을 간지럽히곤 하였던 그 바람은,
지금은 어느 공중에 잠들어 있나
-시집 『수제비 먹으러 가자는 말 』 2020, 푸른사상
댓글목록
정윤호님의 댓글

어릴적 여름 부채 부치던 기억이납니다.
마루에 친 모기장과 마당 평상에서 줄줄이 누워 자던 기억 저쪽으로
훌쩍 데려가는 그 순한 바람을 오늘 만납니다.
아부지 난닝구 땀방울 헐렁헐렁 식히던 바람이
가슴에서 촉촉해지는 아름다운 서정 담아갑니다.
고맙습니다.
이시향님의 댓글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아직도 있습니다.
진한 느낌이 남는 시집 읽고
수제비 먹으러 갔습니다.~~^^
이종원님의 댓글

시원하기는 에어콘이 엄지 척이겠지만 부채 바람에 이어 선풍기 바람에 날아오는
아날로그 옛 생각에 시원해지는 시간입니다. 덜덜덜 추억도 그리움도 가슴까지 떨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