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린 풍경/장 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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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 풍경
/ 장 승규
저 머얼리
산 넘어 어느 남촌에 행복이 산다기에
남으로 남으로
적도 지나, 남반구 뚫고
여기 남쪽 끝 희망봉에까지 와서 보니
칠순이다
칠순 아침에야
그것도, 양순한 이빨들을 닦다가 우연히
내 안을 들여다보니
시커먼 이 안에
설마, 행복이
(남아공 서재에서 2021.11.11)
댓글목록
서피랑님의 댓글

멍이 건강에 좋다네요,
참 아이러니한 말이지요...
늘 건강하십시오, 시인님~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장 승규 시인의 〈아린 풍경〉은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인생 자각의 시편입니다.
표면적으로는 한 사람의 이주 여정—남쪽 끝 희망봉까지 도달한 여로를 그리고 있지만,
그 실상은 행복이라는 신기루를 좇아온 세월과, 그것이 남긴 정서적 공허에 대한 고백입니다.
이 시는 '아름다움'과 '아림' 사이,
'외부를 향한 추구'와 '내면을 향한 직면' 사이의 아이러니를 통찰 있게 그려냅니다.
● 시 감상문
1. “저 머얼리 / 산 넘어 어느 남촌에 행복이 산다기에” – 신기루로서의 행복
시의 시작은 전형적인 유랑의 모티프로 열립니다.
'남촌'은 구체적인 지명이기보다는,
더 멀리, 더 남쪽에 있을 것이라 믿는 행복의 장소—즉, 이상향입니다.
'행복이 산다기에'라는 간접화법은
행복에 대한 믿음이 자기 확신이 아니라, 전해 들은 이야기임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그것을 믿고 ‘남으로 남으로’ 떠났지만,
그것은 진실된 자기 탐색이 아닌, 외부적 기준을 좇은 여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2. “남반구 뚫고 / 여기 남쪽 끝 희망봉에까지 와서 보니 / 칠순이다” – 이동의 종착, 시간의 직면
‘희망봉’은 지리적 장소인 동시에,
**삶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희망의 경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도달의 순간, 나이는 칠순입니다.
이 구절은 마치 조용한 충격처럼 다가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행복을 좇는 데 급급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삶의 시간이 흘러버린 것이죠.
3. “양순한 이빨들을 닦다가 우연히 / 내 안을 들여다보니” – 일상의 틈에서 마주한 진실
'양순한 이빨'은 늙은 나이에도 아직 남은 건강한 몸의 일부를 의미합니다.
이빨을 닦다가 문득—그 순간의 평범함은
바로 가장 깊은 자각이 찾아오는 순간의 아이러니입니다.
인생은 어떤 거창한 계기보다,
이처럼 무심한 일상 속 사소한 틈에서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4. “시커먼 이 안에 / 설마, 행복이” – 반전과 통찰의 순간
‘시커먼 이 안’—입안일 수도, 마음의 동굴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시인은 행복이 남쪽 끝 어딘가에 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자기 안에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문득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 말조차 확신이 아닙니다.
"설마, 행복이…"
— 이 마지막 말에는 뒤늦은 자각과 소름 돋는 회한,
그리고 아직도 다 믿을 수 없는 자기 안의 가능성이 담겨 있습니다.
● 총평
〈아린 풍경〉은
지리적 여정을 따라가는 듯하면서,
실은 내면의 공허와 자각을 담은 시입니다.
'희망봉'과 '행복'은 겉으로 추구해 온 대상이었고,
'시커먼 이 안'은 늦은 나이에 비로소 직면하게 된 내면입니다.
이 시는 말합니다:
행복은 어쩌면, 한 번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볼 줄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오기까지는,
칠순이 되도록 수많은 바다와 시간과 착각을 지나야 했습니다.
장남제님의 댓글

서피랑님!
통영도 안녕하시지요?
창가에핀석류꽃님!
누구실까?
한참을 생각해도...
정윤호님의 댓글

혼란을 드렸네요.
인사말을 나눈지가 한참 전이라
그렇군요. 늘 건안 건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