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그릇 조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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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게 둥글게 손바닥을 돌린다
먹고 마시는 것들의 속을 비울 때마다
컵이며 밥공기며 접시며 냄비며 주전자며
사각형보다 둥근형이 많은 그릇들
설렁설렁 돌려도 깨끗해지는 시간
둥글게 돌리고 돌리다 보면
저절로 둥글어져 가는 굴절의 경지
법 없어도 살겠다
간혹 사각의 반찬 통에서도 둥글게 돌리면
통할지를 생각한다
둥근형처럼 둥글게 들어가다간
찌꺼기가 제대로 빠지지 않는다
뾰족해진 원인을 읽어내어야 한다
하는 수 없이 생긴 모양대로 각을 세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직선의 방식대로
닦아내고 닦아내어야만 했다
좋은 게 좋다고 무조건 둥글게 가는 것이
다 먹히는 건 아니었다
모나지 못해 둥글었거나 둥글지 못해 모났었거나
귀가 얇았거나 귀를 틀어 막았거나
몸 전체를 숙여 디귿이라 쓰고 이응이라 읽는다
헹구고 헹구어 물기 마를 때까지
매일 밥 먹는 사람을 대행하여
묵언 수행의 산빛 언어를 깨치고 있다
그릇과 그릇끼리 이마를 맞대고
낮은 포복으로 열반을 오르고 있다
댓글목록
배월선님의 댓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장남제님의 댓글

이런 구절이 떠오릅니다
가세 가세 피안 가세 우리 모두 피안 가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사바하
반갑습니다.
허영숙님의 댓글

와우, 배시인님
봄빛과 함께 오셨습니다^^
빈 그릇에 담긴 사유에 저도 오래 머물러 봅니다
좋은 시 자주 올려주세요~
이종원님의 댓글

빈 그릇처럼 보이지만 시인님의 마음이 담겨 찰랑거리는 소리가 참으로 가슴을 다독여주는,
하나로 연결된 ㅇ의 사연의 소리를 듣습니다.
최정신님의 댓글

빈그릇에 담긴 사유가 반짝반짝하네요
설거지의 순간도 놓치지 않는 시안이 날카롭네요.
서피랑님의 댓글

시로 만나니 더욱 반갑습니다.
빈 그릇을 하나씩 채우는 일이,
기다려 집니다.
윤석호님의 댓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별도 달도 자전도 공전도 둥글지 않은게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 각을 세우고 모나게 산다는건 여간 간이 크지않고서는 꿈도 못 꿀 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무의(無疑)님의 댓글

계시지요, 잘
둥글어 둥글어 모서리 부딪지 않고 예까지 온 듯합니다.
뵙겠습니다,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