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경전(經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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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경전(經傳) / 조경희
배고픈 이의 한 끼니 빵도
푸른 내일의 새싹 한잎 틔울 종자(種字)도 되지 못한,
한 가지 바람은 생애 꽃 활짝 피워보는 일
바람의 수레를 타고 흐르는 시간을 거슬러 흰 눈 내리는 거리를 지나자 이내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날리네
전생에 내가 거하던 마굿간 처마 밑
수염이 허옇게 세고 깡마른 노인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골동품처럼 앉아 있네
기다렸다는 듯 노인은 멈춘 시간의 태엽을 다시 돌리며
품안에서 경전을 꺼내 내밀었네
뜨거운 말씀 읽다 보면 길은 수미산으로 향하고, 불꽃을 유희(遊戱)하듯 억겁(億劫)의 시간 오가며 맨몸으로 읽었네
읽으면 읽을수록 안으로 단단히 구워지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몸 어느새 아득해지고 있었네
마침내 종이 울리고
시간의 톱니바퀴는
부풀려진 시간의 문 앞에
날 데려다 놓았네
문이 열리며, 열리며
내 몸은 한송이 꽃이 되고
노인은 오래 된 비밀처럼 푸른 옥수수밭 속으로 사라졌네
시간을 여행 중인 바람은 거리마다 벚꽃을 피워놓은 채 서둘러 북쪽으로 떠나버리고
한 손에 강냉이를 들고 걷는 연인들 웃음소리 봄햇살에 팡팡팡 터지네.
댓글목록
조경희님의 댓글

날이 많이 더운데
제목도 '뜨거운 경전'이네요
더위에 건강 잘 지키시고
다가오는 8월에도 파이팅 하시기 바랍니다
박해옥님의 댓글

정말 뜨거운 경전인데요
생의 꽃을 활짝 피우는 일이 예삿일은 아니니까요
암쪼록 늘 건강하시길^^*
조경희님의 댓글

네, 박해옥 시인님
더운 여름 잘 견디시고
소녀다운 모습으로 가을에 뵙길 바라겠습니다
화띵입니당^^
산저기 임기정님의 댓글

저 또한 뜨거운 경전 무진장 좋아하지요
아마도 백두산 갈 때 그 경전을 엄청 만이 읽었지만
요즘 읽는 게 제 철 아닌가요. 그렇지만
옆에 누군가 있다면 그 열기마저도
사르륵
아주 맛있게 읽었습니다.
조경희님의 댓글

임기정 시인님,
강냉이 맛이 구수한가요?^^
다녀가신 발자국 고맙습니당
시원한 여름 보내세요
박커스님의 댓글

옥수수, 수염도 안 자른 옥수수가 한 박스 들어왔는데
요즘은 넘 흔해서 쩌먹기도 누구 주기도,,ㅎ
겨울 간식 중 최고였던것 같아요,,이불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두손 가득 한 입 가득 물고 씹던 그 추억의 레시피,,,지금도 토욜이면 시장에서
뻥뻥 소리나는데,,,입맛이 바뀌었네요. 건강하시고
즐거운 여름 날 보내세요.^^
金富會님의 댓글

조 시인님 답게.....
잘 갈무리 하신 작품....
느낌 좋습니다.....
그 경전이 너무 두껍고 길어서...좀 그렇지만.....^^ 여름 이라는 경전
조경희님의 댓글

맹위를 떨치던 더위도 어느덧 한꺼풀 풀린 느낌입니다
생각해보니 올 여름엔 그 흔한 옥수수맛도 못보고
그냥 지나가는 듯 하네요
박커스, 김부회 시인님 오늘도 해피한 하루 만나세요^^
허영숙님의 댓글

새로운 동인방에서 이 시가 제일 뜨거운 것 같습니다
노인이 사라진 푸른 옥수수밭,
그 대비가 멋진데요
뜨거운 경전을 식혀 줄 소슬한 바람이 조석으로 붑니다
또 좋은시 보여주시고요
최정신님의 댓글

여름을 견디고 알알이 박힌 경전이 뜨겁다 못해 활활 타는군
오늘은 가을비 추적이니...그리움이 노크 중...
우리의 추억도 낡아 ...안데스 산맥 어디쯤 바람으로 날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