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공선원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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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공선원*
-상처 입은 개들이 짖는 소리는 멀리 스님의 전생에서 흘러오는 음악이다
이명윤
경남 사천의 한 마을엔
백 마리의 견공들과 사는 여스님이 있다
수십 개의 울음이 일제히 스피커를 울리면
귀먹은 동네 나무도
화들짝 버들잎 내리고
지팡이도 허둥지둥 오던 길 되돌아 걷는다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어
방송국에서도 다녀갔다
개 껌 좀 씹어보고 소파에서 지냈거나
철창 속에 오도카니 갇혀 살았든 간에
하나 같이 낯선 도로에 버려졌거나
개소주집 문턱까지 간 울음들,
꿈에까지 찾아온 눈빛에
부처님 터를 개 놀이터로 바꾸었지요
스님의 눈에서 운명이란 말이 반짝거렸다
상처의 목덜미마다 이름표를 달고
악보처럼 되살아난 백 마리 견공들
방과 거실, 화장실이며
마당 곳곳 우당탕탕 흘러넘쳐
기도도 휴식도 낄 자리가 없다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
이거 참, 동네 시끄러워 죽겠다는 말
모두 헐헐 목줄 풀고
울음과 뒤섞여 논다, 댕댕댕
쉴 틈 없이 울어대는 목탁 소리
꽤 소란스러운, 우리의 부처님들
* 경남 사천에 있는 유기견묘 쉼터.
갑순이
이명윤
분홍 저고리가 구름 위로 날아간다
녹색 치마가 너울너울 강 너머로 날아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불렀던 다정한 이름,
갑순이가 떠나갔다
자신을 부르는 우리들의 시골스러운 입술이 싫다 했다
갑돌이와 고전적으로 엮이는 것도
정말 넌더리 난다 했다
더 이상 찾지 말라고 사십 년 세월을 둘둘 말아
서류가방에 넣고 떠난 날,
라디오에선 구슬픈 애청자 사연이 흘러나왔고
얼굴 없는 갑돌이도 멋쩍은 듯 사라졌다
그녀가 떠난 자리엔
눈부신 정장 옷을 입은 여자가 왔다
우주는 낯선 색깔로 새롭게 태어나고
위성 같은 우리들의 눈빛은 점차 바뀌어 갔다
가끔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 들려오는 그런 날에
갑순아, 라고 부르면 갑순이처럼 뒤돌아보던
갑순이가 그리워진다
그녀도 미처 몰랐던 갑순이의 순한 얼굴이
우리도 미처 몰랐던 갑순이의 들꽃 내음이
모두 훨훨,
노래 가사 속으로 떠나가 버린 것이다
- 계간「인간과문학」2024년 겨울호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경남 사천은 나의 고향입니다.
남의 나라에서 오래 사느라
상처입은 개 한 마리 여기 있습니다.
그대 덕분에
이제 돌아갈 곳이 있어 다행인
임기정님의 댓글

저도 대길이 보내고
가끔 대길이 보고플때는
대길아 하고 부릅니다
제 가슴에 정을 묻혀두고 간 녀석
이명윤 시인 시 읽으며 공감 100백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