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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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윤
부고 소식에 모처럼 만난 네 명이
석고상처럼 무뚝뚝 앉아 있었고
2차선 국도를 따라 하루해가 빠르게 지고 있었다
배고프다,
최초에 누구의 입에서 그 순결한 말이
흘러나왔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일행은 그때부터 두 시간 후면 만날
식단에 대하여 진지한 토론을 시작했다
음식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이 별의 오래된 의식이어서
대화는 차창 밖에 걸린 검붉은 노을 같았고
식어도 휘휘 저으면 다시
눈빛이 살아나는 육개장 같았다
우리는 산처럼 들판처럼 끝없는 허기를 느꼈고
식도처럼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날 땐
룸미러에 공허하게 떠 있는 서로의 웃음과
눈이 마주치기도 하였다
지루한 식욕을 끝낸 고인을 향해
불빛은 바퀴를 굴리며 정처 없이 흘러갔고
눈이 침침해질 무렵 나는 허리를 펴며
천천히 슬픔의 속도를 줄여 나갔다
그리고 하나 둘
창가에 기대어 잠든 쓸쓸한 귀들에게
애피타이저 같은 음악을 한 모금씩
느리게 흘려주었다
보름달이 떠 있었고 정확히,
삼십 분 전이었다
-월간 「한국산문」2025년 1월호, 이달의 시
댓글목록
무의(無疑)님의 댓글

정확히,
뒤에 붙은 쉼표에서 오래 머물다 갑니다.
지루한 식사를 끝낸 고인은 보름달로 떠 있지만
석고상처럼 무뚝뚝한 산 자는 배가 고프다, 어쩌면
‘정확히,
삼십 분 전’일지도 모르는데....
장승규님의 댓글

배고프다
그때부터 두 시간 후면 만날
식단에 대하여
정확히,
도착! 삼십 분 전이었다
보름달이 떠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