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도 빛나는 별이 되어 (현충일 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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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에도 빛나는 별이 되어 (현충일 헌시)
정연희
첫새벽 자리끼가 얼어갈 즈음
어린 자식들 잠에서 깰세라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나가시는 어머니의 발꿈치를 보았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화수 앞에서
무사 귀환을 빌던 어머니의 젖은 눈자위를 보았습니다
우리들의 아버지
우리들의 오빠와
우리들의 어머니가 피워낸
검붉은 모란꽃 같은 유월이 오면
멈춰버린 젊음으로
아들보다 더 젊은 아버지의 모습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가슴에 묻은 자식은, 호명될 때마다 어머니의 심장을 파고들었고
비명碑銘마다 당신 없이 살아온 애통의 세월이 흥건합니다
포탄 속으로 뛰어들기 위해,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
중대 본부에 전하고 돌아온 저녁,
함께 눈물의 잔을 나누던 전우와,
진혼나팔 소리, 가족의 통곡 소리와 함께 묻힌 전우의 얼굴이
몹시도 그리운 노병의 가슴에
조국을 향한 열정 같은 붉디붉은 장미가 다시 피어오르고
살아 있는 우리, 숨 쉬는 것조차 죄스러운 유월입니다
그러나 지금 들리십니까?
푸른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외치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경제와 문화의 소리가,
충성스럽고 당당한 당신들이 계셨기에
오늘 이 빛나는 자리가 함께합니다
스스로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촛불같이
내 조국이라면 기꺼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당신들이 계셨기에
이 땅의 새는 날개를 펴 더 높이 날아오르고
쓰러진 초목도 몸을 흔들며 일어섰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잊히는 일 많다지만
잔바람에도 흔들리던 조국의 운명 앞에
뜨거운 피 쏟으며 지켜낸,
용기와 충성의 깊이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 희생 헛되지 않아
이 나라 이 땅 어디서든
대낮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별,
당신의 흔적이 보입니다
당신의 피로 세운 반석 위에
두려움을 잊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살고
당신의 염원이 거름이 되어
조국의 번영과 영광을 함께 지켜볼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겨레의 영웅이신 당신의 고귀한 희생을
대대손손 영원토록 잊지 않을 것입니다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고맙습니다.
아들보다 더 젊은 아버지의 모습이
아려옵니다.
좋은시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임기정님의 댓글

저의 아버지 또한 6, 25사변 때
전투 중 좌측 대퇴부 상이를 입어
상이군경으로 제대하여
어릴 적엔 다리 저는 모습이 무척이나
창피하고 싫었습니다
이십 대가 넘으면서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졌습니다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동족 상잔의 비극
시를 읽는 내내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 오르네요.
잘 읽었습니다
제어창님의 댓글

현충일 날 욱일기를 내 건 아파트 주민의 기사가 있었지요
일제때나 6.25때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에게
얼마나 큰 죄인 줄 모르고 하는 행동인지 참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입니다
무의(無疑)님의 댓글

저는 현충일이 결혼기념일입니다.
온 국민의 애도 속에, 몇몇의 축하 속에.... 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라는 말 참 좋지요.
우리들의 아버지
우리들의 오빠와
우리들의 어머니
가 우리들을 지금 여기 있게 했고
우리가 다시 훗날의 우리가 살 수 있는 세상을 꾸며가야 겠지요
허영숙님의 댓글

기념일 만이라도 그분들을 기억할 수 있는
날들이었으면 합니다
덕분에 마음이 경건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