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표고무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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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표고무장화
성영희
그 옛날 아버지의 고무장화를 아시는지, 벗으면 후끈거리는 발의 열기 어느 캄캄한 터널의 냄새가 진동했던 그 검은 장화를 기억하시는지
아버지는 어쩌면 말이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무논을 갈아엎던 깡마른 다리 불거진 힘줄에 달라붙던 거머리는 아버지를 빨아먹던 또 다른 흡반 아니었을까
한 번도 말처럼 달려보지 못하고 아버지는 어느 봄 기어이 맨발이 되었다. 논두렁에 찔러놓은 낡은 삽자루에 가끔, 밀잠자리만 앉았다 떴다 하다 갔다.
장거리 여정을 마치고 이제 막 시동을 끈 트럭 옆에서 나던 그 먼 길의 냄새, 길에서 수명을 다한 검은 타이어들이 더 이상 구를 곳 없을 때 투박한 발하나 맞춤한 장화가 된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오늘 고속도로 갓길에 산산이 찢긴 타이어를 보면서 무수히 많은 봄날과 여름의 진창을 헤집으며 다니던 말표고무장화가 떠오르는 이유는 아버지, 그 터질 듯 후끈거리던 발의 열기를 아직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빨판을 부착시킨 거머리처럼 나는, 붉은 피의 경로를 기억에 고정한 채 오랫동안 아버지를 흡입하고 있다.
시집 <귀로 산다>
성영희
그 옛날 아버지의 고무장화를 아시는지, 벗으면 후끈거리는 발의 열기 어느 캄캄한 터널의 냄새가 진동했던 그 검은 장화를 기억하시는지
아버지는 어쩌면 말이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무논을 갈아엎던 깡마른 다리 불거진 힘줄에 달라붙던 거머리는 아버지를 빨아먹던 또 다른 흡반 아니었을까
한 번도 말처럼 달려보지 못하고 아버지는 어느 봄 기어이 맨발이 되었다. 논두렁에 찔러놓은 낡은 삽자루에 가끔, 밀잠자리만 앉았다 떴다 하다 갔다.
장거리 여정을 마치고 이제 막 시동을 끈 트럭 옆에서 나던 그 먼 길의 냄새, 길에서 수명을 다한 검은 타이어들이 더 이상 구를 곳 없을 때 투박한 발하나 맞춤한 장화가 된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오늘 고속도로 갓길에 산산이 찢긴 타이어를 보면서 무수히 많은 봄날과 여름의 진창을 헤집으며 다니던 말표고무장화가 떠오르는 이유는 아버지, 그 터질 듯 후끈거리던 발의 열기를 아직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빨판을 부착시킨 거머리처럼 나는, 붉은 피의 경로를 기억에 고정한 채 오랫동안 아버지를 흡입하고 있다.
시집 <귀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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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아버지를 빨아먹던 또 다른 흡반
성시인님!
나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거머리 같은 흡반 하나 떼어내지 못하시고
수학여행 갈래?중학교 갈래?
수학여행 갈래?고등학교 갈래?
수학여행 갈래?대학교 갈래?
무논 두렁에 앉아 하염없이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
독한 봉초담배에 그 흡반이 떨어질 줄 아셨을까요?
아버지가 그리운 오후입니다.
아니
1960년대 이야기네요. 얼마 전 같은데
임기정님의 댓글

성영희 시인님 맞습니다
말표 기차표 태화
어릴 적 많이 듣던 단어이지요
시 읽는 내내 아버지가 떠 올랐던 것은
60~70년 그때는
집마다 아버지가 똑같았다는
시 잘 읽었습니다
제어창님의 댓글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 멋지셨던 분이지요
글씨체도 엄청 좋으셔서 한자를 멋지게 쓰시던 분이지요
당뇨로 일찍 돌아가시고 내겐 유산처럼 당뇨를 물려 주셨지요
20살 때 돌아가신 내 아버지~
무의(無疑)님의 댓글

늘 느끼지만
글에
힘이 있는데 알싸한
'영희'
답습니다.
며칠 전 근 10년 만에 아버지를
만나기는 만났지요,
서로
말이 없었지요.
당신은 입을 지웠고, 나는 입을 닫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