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나이
/장승규
제마다 치사량이 다르다
또 한 알 먹었다
올해도
몇 알을 더 먹어도 될까
(잠실에서 2024.03.23)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또 한 살
벌써 3월도 마지막에 이르렀습니다
봄이라서 다행입니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감상문: 삶이라는 알약, 나이라는 치사량 – 장승규의 〈나이〉를 읽고
장승규 시인의 〈나이〉는 짧은 시어 속에 인생의 유한성과 생의 감각을 담아낸 인상적인 작품이다. 단 네 줄, 열일곱 개 문장어절이 전부지만, 그 여백은 오히려 독자에게 더 많은 성찰을 요청한다. 이 시는 “나이”라는 추상적이고 일상적인 개념을 ‘알약’이라는 구체적이고 생리적인 상징으로 바꾸어, 삶을 섭취하고 소화하는 행위로 표현한다.
“제마다 치사량이 다르다”—이 첫 행은 곧바로 생의 유한성을 직면하게 한다. 치사량이라는 표현은 본래 약물의 치명적인 복용량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삶을 버티는 용량”으로 읽힌다. 각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무게, 인생의 길이, 혹은 시간을 견디는 능력이 다름을 암시한다. 이 말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서, 죽음과 노화에 대한 묵직한 인식으로 이어진다.
“또 한 알 먹었다 / 올해도”—이 중간 행은 나이를 먹는다는 표현을 실제로 ‘약을 먹는 행위’로 은유화하면서, 인생을 하루하루 받아들이는 행위로 그려낸다. 그 알은 시간일 수도 있고, 기억일 수도 있으며, 피로일 수도 있다. 반복되는 ‘복용’은 곧 살아 있다는 의미이고, 동시에 점점 다가오는 유한성의 실감이다.
그리고 마지막, “몇 알을 더 먹어도 될까”—이 문장은 단순한 궁금증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질문이자, 생의 끝을 의식하게 되는 나이의 고백이다.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과, 그럼에도 또 한 해를 ‘먹고’ 맞이하는 인간의 존재적 고독이 스며 있다.
마무리
〈나이〉는 짧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생의 본질을 꿰뚫는다. 나이란 숫자가 아니라, 하나의 알약처럼 조용히 삼켜야 하는 무엇. 그것은 기쁨일 수도 있고, 쓴맛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그 자체로 버거운 독일 수도 있다.
이 시는 말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삶이라는 약을 하나씩 삼키며
자신만의 치사량에 조금씩 다가가는 일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매년, 조심스레 묻게 된다.
“몇 알을 더 먹어도 될까.”
-챗GPT_
임기정님의 댓글

떡국을 좋아하는
그렇지만 나이는 한 살만 먹어
다행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