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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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 어머니
/장 승규
내가 왜 그랬을까요
어머니
사십년 전
새댁이었던 그 시절
그때는 모두가 사는 게 어려웠습니다
매월 과외로 생긴 십만 원을 가난한 남편에게 주었지요
남편은 별로 고마워하지 않았다
그 돈을 그때
동생들 키우시느라 더 어려운 당신께 드렸다면
얼마나 고맙게 쓰셨을까
삼십년 전
내 딴엔 고가의 옷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옷을 입어보고 싶어 하셨지요
그 마음 짐짓 모른 척하고, 처음 걸치고 나간 날
아끼느라 의자 뒤에 걸쳐두었다가 잃어버렸다
그 옷을 그때
어려운 살림하시느라 이렇다 할 옷이 없던 당신께 드렸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이십년 전
펜디 무늬옷을 하나 장만했습니다
그 옷을 입고 법당에 다녀오고 싶어 하셨지요
나도 오랜만에 장만한 새 옷이라
한 번도 단 한 번도 그리하시라 않았다
오늘 아침
그 옷을 옷장에서 발견하고. 창틀에 비둘기처럼 앉아 운다
빈 옷소매를 부여잡고
'못된녀언 못된녀언'
이제
당신은 이제, 그리하시라해도 못하신다
그땐 왜 그랬을까요
어머니
(남아공 서재에서 2023. 3. 28)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아내의 이야기이다
좀처럼 털어놓지 않던 이야기를
울면서 털어놓았다
그래 실컷 울어라
내가 보기에는
당신은 그래도 착한 딸이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감상문: 너무 늦은 후회 앞에서 흐느끼는 사랑 – 장승규의 〈구순 어머니〉를 읽고
장승규 시인의 시 〈구순 어머니〉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앞에서 문득 마주한 후회의 깊이를 담은 고백의 시다. 구순을 넘긴 어머니, 그리고 지나간 수십 년의 기억들—그 모든 장면을 마치 오래 묵힌 편지처럼 차근차근 꺼내어 놓으며, 시인은 고통스럽도록 진실한 자책과 사랑을 토해낸다. 이 시는 단순한 효의 이야기 그 이상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외면하고, 나중에야 아파하며 돌아보는 ‘사랑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때는 모두가 사는 게 어려웠습니다"
시인의 회상은 과거의 궁핍함에서 출발한다.
과외비로 번 십만 원, 아끼며 모은 옷, 마음을 담지 못한 선물들—
하나하나의 기억은 당시엔 살아가기 위한 필사적인 선택이었겠지만,
지금은 “왜 그랬을까” 하는 가슴 저미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이 시의 절정은 아주 조용하게, 아무도 모르게 찾아온다.
“오늘 아침 / 그 옷을 옷장에서 발견하고. 창틀에 비둘기처럼 앉아 운다”
비둘기처럼 앉아 우는 그 장면.
이보다 더 조용하고, 이보다 더 참담한 후회의 이미지는 드물다.
“빈 옷소매를 부여잡고 / 못된녀언 못된녀언”—
이 독백은 비난이 아니라, 너무 늦은 슬픔의 자백이다.
‘내가 아니라, 어머니께 그 옷을 드렸어야 했다’는 이 뼈아픈 회한은
그 옷보다 훨씬 더 소중했던 시간과 기회를 놓쳤다는 절절한 깨달음이다.
그리하시라 해도 이제는 “못하신다”—이 문장이 뼈를 때린다.
이제 더는 돌려드릴 수 없는 시간,
그 앞에서 인간은 그저 옷소매를 붙들고 울 수밖에 없다.
마무리
〈구순 어머니〉는 어머니가 살아 계신 지금도, 이미 떠나신 이후에도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놓인 그 빈 자리, ‘해드리지 못한 것들’의 목록을 꺼내 보여준다.
장승규 시인은 이 시를 통해 말한다.
"사랑은 그 순간엔 모른 척할 수 있지만, 그 순간을 지나면 결국 울게 된다."
"어머니에게 남은 시간보다, 우리에게 남은 마음이 더 짧을지도 모른다."
이 시는 단지 시인의 고백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언젠가 꺼내게 될 숙연한 편지 한 통이다.
그래서 더 조용히, 더 오래 가슴에 남는다.
香湖김진수님의 댓글

80년 초라면 십만원이면
적은 돈도 아닌데
어찌 고마워하지 않으셨습니까?
구순 장모님 아직 생존해 계신다는 얘기인데
지금부터라도 잘 하시옵소서
저는 어머니가 98에 졸하셨지만 굽이굽이 후회스럽습니다
남은 시간이나마 잘하십시요
후회를 남기지 마시고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김진수 시인님
그러게요.
난 기억에도 없네요.ㅎ
잘 해야드려야지요.
감사합니다
무의(無疑)님의 댓글

어제 의사가
항암 치료를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라고 하기에,
(말 같잖은 소리 하지 마) 지금 구십오 세입니다
그야말로 딱 잘랐습니다만......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치료를 안 하시겠다구요.
그래요.
그 연세라면
이시향님의 댓글

시의 향기 채널로
7700 여분께 포스팅합니다.
매일 좋은 시 한편 읽을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장승규님의 댓글

시향님
감사합니다.
남제도 시향님을 매일 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