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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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보내고
/장 승규
강릉 밤바다에
파도는
자주 뒤척인다, 곁이 시려서
더러는
백사장에 엎드려
침대보보다 더 하얗게 운다
울수록 울음은 비켜갈 뿐
한 켠이 더 허전해서
차라리
홑겹 모래 길게 끌어 덮고
이 밤도
버릇처럼 뒤척이고 있다
(강릉에서 2023.4.07)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봉별
요즘 만나고 헤어짐이 예사라지만
아무래도 헤어짐은...
갓등 아래 파도는
이 밤도 뒤척이고 있는데
장승규님의 댓글

감상문: 그리움은 파도처럼, 밤마다 뒤척인다 – 장승규의 〈너를 보내고〉를 읽고
장승규 시인의 〈너를 보내고〉는 이별 이후의 고요한 슬픔을 강릉의 밤바다에 기대어 담아낸 서정시다. 시인은 파도, 백사장, 모래, 밤이라는 사물을 빌려 이별 후의 내면 풍경을 조용히 그려낸다. 격정 대신 절제, 눈물 대신 뒤척임—이 시는 그리움이 깊을수록 말이 줄어드는 진실을 알고 있다.
첫 연에서 시인은 말한다:
“강릉 밤바다에 / 파도는 / 자주 뒤척인다, 곁이 시려서”
이 시작은 너무도 조용해서 오히려 마음을 울린다. '강릉 밤바다'라는 구체적 장소는 실제 풍경인 동시에 감정의 무대다. 그곳의 파도는 자주 ‘뒤척인다.’ 여기서 파도는 단지 자연현상이 아니라, 이별한 사람의 불면과도 같다. 곁이 시리기 때문이라는 표현은, 부재의 체온, 잃어버린 온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는 바람보다 더 찬 허전함이 흐른다.
“더러는 / 백사장에 엎드려 / 침대보보다 더 하얗게 운다”
이 대목은 매우 시적이고 아름답다. 파도가 바다에서 넘어와 모래 위에 엎드리는 모습은 마치 슬픔에 무너져 내리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인다. ‘침대보보다 더 하얗게’ 운다는 표현은 단순한 색감의 비교를 넘어서, 파도의 울음이 얼마나 순하고, 얼마나 슬픈지를 보여주는 이미지다. 이 장면은 시각적이면서도 감정적으로 깊다.
“울수록 울음은 비켜갈 뿐 / 한 켠이 더 허전해서”
이 시는 ‘울음’조차 해소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울수록 더 허전해지는 마음—이 역설 속에 진짜 슬픔이 있다. 슬픔이란, 울고 나면 나아지는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빈자리를 깨닫게 하는 감정이라는 통찰이 담겨 있다.
“차라리 / 홑겹 모래 길게 끌어 덮고”
여기서 ‘홑겹 모래’는 슬픔을 덮는 얇은 위로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따뜻하지도, 완전히 가려주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무엇이라도 덮어야 할 만큼 마음이 헐벗었음을 말한다. 홑겹이라는 표현은 너무도 얇아 보호가 되지 않는, 애잔한 마음의 상태를 정교하게 묘사한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말한다:
“이 밤도 / 버릇처럼 뒤척이고 있다”
이 결말은 강렬한 감정의 토로 없이도 충분히 아프다. 버릇이 되었다는 말 속엔 지속된 상실, 반복된 불면, 포기된 기다림이 모두 담겨 있다. 그리움은 이제 일상이 되고, 뒤척임은 파도가 되었고, 이별은 밤마다 다시 찾아오는 물결이 되었다.
마무리
〈너를 보내고〉는 시끄러운 감정 없이도 깊은 슬픔을 전하는 시다. 바다는 울고, 파도는 뒤척이며, 시인은 그 풍경 속에서 이별을 견딘다. 이별이란 떠나보낸 일이 아니라, 매일 새로 보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는 조용히, 그러나 깊이 묻는다:
“당신은 그 밤을, 지금도 뒤척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