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벙이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꺼벙이
/장승규
동정 한 닢
길거리 걸인에게 그냥 주는 일이 없다
오늘 주면
내일도 있을 것 같아서
십오 년이나
대갓집 머슴으로 살았다, 나는
머슴이고 싶었을까
오늘도 여기
아이를 데리고 찻길가에 나온 이 아주머니
나오고 싶었을까
동전 한 닢
그 손에 건네주지 않았다
그 일이 그 아이 직업이 될 것 같아서
(남아공 서재에서 2023.7.01)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좀 알량하지요.
그러고는 마음 한 켠이 아프기도 하구요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감상문: 선한 의심과 꺼벙한 사랑 사이 – 장승규의 〈꺼벙이〉를 읽고
장승규 시인의 시 〈꺼벙이〉는 짧고 담백한 언어 속에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인간적인 망설임, 그리고 조심스러운 연민을 담아낸 작품이다. ‘꺼벙이’라는 다소 익살맞은 제목은 정작 시의 내용과 대조적으로, 내면의 복잡한 윤리적 갈등과 슬픈 통찰을 품고 있다.
첫 구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동정 한 닢 / 길거리 걸인에게 그냥 주는 일이 없다”
이 문장은 겉으로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는 복잡한 사회적 정황이 녹아 있다. 단순한 시혜나 선의조차도 이제는 쉽게 베풀기 어려운 세상—그리하여 우리는 동전 하나조차 조심스럽게 다룬다. 그리고 이유는 이렇게 덧붙여진다:
“오늘 주면 / 내일도 있을 것 같아서”
이 구절은 곧 이어 나오는 전체 시의 정조를 미리 암시한다. ‘주면 습관된다’는 이 논리는 복지 사회에서 흔히 듣는 경계의 말이며, 이성적 판단이자, 때로는 정당화된 외면이다.
이어지는 회상:
“십오 년이나 / 대갓집 머슴으로 살았다, 나는 / 머슴이고 싶었을까”
여기서 시인은 과거를 끄집어낸다. 머슴이 된 것이 선택이 아니었듯, 찻길에 선 여인이나 아이 역시 그 자리를 원해서 나왔을 리 없다. 그러나 사회는 그들을 ‘거기에 있는 이유’로 판단하고, 도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저울질한다.
이제 시선은 현재로 돌아온다.
“오늘도 여기 / 아이를 데리고 찻길가에 나온 이 아주머니 / 나오고 싶었을까”
이 질문은 무척 중요한 전환점이다. 시인은 판단을 멈추고,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곧 덧붙이는 마지막 구절은 안타깝게도 다시 멈칫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동전 한 닢 / 그 손에 건네주지 않았다 / 그 일이 그 아이 직업이 될 것 같아서”
여기서 시인은 꺼내기 어려운 진실 하나를 꺼낸다. 도움이 반복되면 그것이 체계가 될 수도 있고, 아이가 그 삶을 학습할까 두려운 마음. 어쩌면 진짜 이유는 그런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또는, 정말로 사랑에서 비롯된 조심스러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시인은 이 딜레마 앞에서 쉽게 외면하거나 정당화하지 않고, ‘꺼벙하게’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다는 점이다.
마무리
〈꺼벙이〉는 동정이 무엇인지, 도와준다는 것이 어디까지 선한 일인지,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돕지 않기로 할 때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작고도 큰 갈등을 다룬 시이다. 시인은 도와주지 않은 스스로를 정당화하지도, 미화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말없이 그 순간을 받아낸다.
그렇기에 이 시는 거창한 교훈 대신, 우리 안의 진실을 꺼내어 조용히 놓아준다.
“그때 나는 정말로, 왜 그 동전을 건네지 않았던가.”
이시향님의 댓글

매일 좋은 시 한편 읽을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시의 향기 채널로 7700 여 분께 발송 예약합니다.
https://story.kakao.com/ch/perfumepoem
장승규님의 댓글

시향님
감사합니다.
꺼벙이를 널리 포스트해 주시니
1연 2행을 약간 퇴고합니다.
"길거리 걸인에게 그냥 주는 일이 없다"로 수정해 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