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종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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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종시계
/장승규
가자고
사정해야 가던 세월이 있었다
가다가 아니 가겠노라
배 고프다 버티던 시절이었지
아주 설까, 때 맞추어 밥을 주었지
덩치 큰 괘종시계는 밥숟갈도 컸었지
많이도 먹었지
모두가 배가 고팠다, 그땐
요즘은
누가 밥을 챙겨주는지
서지도 않고 잘도 간다
나른한 오후, 내 마음 탁탁 치면서
쉬자고
사정해도 설 리 없는 세월이다
(남아공 서재에서 2023.7.16)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벌써 7월도 말
요즘은 서지도 않는 세월이다
폭염에도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감상문: 세월에게 밥을 주던 시절과, 밥 없이도 잘 가는 요즘 – 장승규의 〈괘종시계〉를 읽고
장승규 시인의 〈괘종시계〉는 시간과 세월, 그리고 시대의 변화를 ‘괘종시계’라는 친근하고도 묵직한 상징을 통해 회고하는 시이다. 이 시는 단순히 아날로그 시대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세월의 흐름을 직접 ‘밥’과 ‘배고픔’으로 연결시켜, 시간의 촉감과 인간의 감정을 실감나게 전달한다. 시인은 시간을 추상적으로 말하지 않고, ‘먹여야 가는’ 실체적 존재로서 다룬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고, 더 아프다.
“가자고 / 사정해야 가던 세월이 있었다”—
이 첫 두 줄만으로 시인은 세월을 ‘말을 들어야 움직이는 존재’로 그린다. 즉, 과거의 시간은 단순히 흐르는 것이 아니라, 애쓰고 보채야 겨우 흘러주던, 저항과 무게가 있었던 대상이었다. 이때의 ‘사정’은 누군가가 간절히 희망을 걸고, 수고로이 견뎌야 했던 시간의 질감을 환기시킨다.
“배 고프다 버티던 시절이었지 / 아주 설까, 때 맞추어 밥을 주었지”—
과거의 시간은 배고픔과 직결되어 있다. 괘종시계는 단지 시간을 재는 기계가 아니라, ‘밥을 주어야’ 움직이는 존재였다. 여기서 ‘밥’은 실제의 양식이자 상징적 시간의 연료이다. 시인은 이 시계를 ‘덩치 큰 존재’로 묘사하며, 마치 가난했던 시절의 세월이 그 자체로 배고프고 무거웠다고 말한다. “밥숟갈도 컸었지 / 많이도 먹었지”—이 표현에는 현실의 고단함과 동시에 그 고단함을 함께 견뎠던 공동체적 체험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 회상은 슬프면서도 어딘가 따뜻하다.
“모두가 배가 고팠다, 그땐”—
이 짧은 문장은 과거의 집단적 기억, 공동체적 결핍의 핵심을 압축한다. 이 시점에서 ‘세월’과 ‘괘종시계’는 더 이상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고단했던 삶의 한 국면이자 동반자였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시는 곧 지금으로 넘어온다.
“요즘은 / 누가 밥을 챙겨주는지 / 서지도 않고 잘도 간다”—
이제는 누구도 시간을 챙기지 않아도, 시간은 자기 멋대로 흘러간다. 디지털 시대, 자동화된 시계, 인간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뚝딱 돌아가는 세상. 과거의 ‘사정하며 세월을 달래던’ 감각은 사라지고, 시간은 “서지도 않고 잘도 간다.” 이 흐름은 효율적이지만, 너무나 차갑고, 비인간적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다시 본질을 찌른다.
“나른한 오후, 내 마음 탁탁 치면서 / 쉬자고 / 사정해도 설 리 없는 세월이다”—
이제는 반대로, 쉬고 싶어도 시간은 쉬지 않는다. 아무리 사정해도, 세월은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이 구절은 육체의 피로이자 마음의 피로이고, 동시에 한 시대가 소멸해가는 자각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지금도 ‘탁탁’ 내 마음을 치며 돌아가는 시계 소리를 듣는다. 더는 밥도 먹지 않는, 쉬지도 않는, 멈출 줄 모르는 현대의 세월이 거기에 있다.
마무리
〈괘종시계〉는 단순한 향수의 시가 아니다. 이 시는 ‘시간’이라는 주제를 인간의 감각과 감정, 그리고 세대 간의 기억으로 확장시킨다. 밥을 먹어야 움직이던 괘종시계는, 함께 살고 함께 늙던 존재였지만, 이제는 아무런 상호작용 없이 흘러가는 세월만이 남았다. 그리고 시인은 그 속에서 조용히 말한다:
“이제는 사정해도 설 리 없는 세월이다.”
그리고 그 말은, 우리 모두의 심장을 ‘탁탁’ 두드린다.
이시향님의 댓글

매일 좋은 시 한편 읽을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시의 향기 채널로 7700 여 분께 발송 예약합니다.
https://story.kakao.com/ch/perfumepoem
장승규님의 댓글

시향님
감사합니다
香湖김진수님의 댓글

동감입니다.
그저 허허 웃지요.
갈테면 가라고,
잡는다고 주저 앉을 애들도 아니고
장승규님의 댓글

향호님
반갑습니다.
숙제하셔야지요.ㅎ
香湖김진수님의 댓글의 댓글

숙제는 죽어라 늙은 애들만 하고 있군요.
늙은 애들은 말을 잘 들어요.
라떼는 선생님이 하늘이었으니 하라면 무조건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