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즈음에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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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즈음에 달
장 승규
조나라 한단성 곽개처럼*
지난 날 묻어두고 온 보물이
나도 있었네
고향 사천성에
추석 즈음 앞산에서 뜬 달들
며칠 사이
뒷산에 가지런히 반달로 묻어두고
여태껏 찾아오지 않으니
오늘 밤
두 분이 함께 오셨나
야자수 늘어뜨린 잎새로
저 달이
이 밤따라 하나 둥글다
(남아공 서재에서 2023.9.28)
댓글목록
香湖김진수님의 댓글

옅은 구름에 가린 달이 둥글고 큽니다.
타국 그것도 머나먼 남아공
고향생각 간절하겠습니다.
건강하시소.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감상문: 달빛 속에 묻어둔 보물 – 장승규의 〈추석 즈음에 달〉을 읽고
장승규 시인의 〈추석 즈음에 달〉은 유년의 기억과 고향, 부모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것을 매개하는 '달'이라는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상징을 섬세하게 엮어낸 작품이다. 이 시는 계절의 중심인 추석을 배경으로, 시공을 넘어 이어지는 정서의 흐름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단아한 서정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회한과 다정한 애도가 배어 있다.
첫 연,
“조나라 한단성 곽개처럼 / 지난 날 묻어두고 온 보물이 / 나도 있었네”—
여기서 시인은 고대 중국의 역사를 빌려온다. '곽개'는 조나라의 명장으로, '묻어둔 보물'이라는 표현은 단지 물질적 유산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기억, 고향의 풍경, 혹은 부모와 함께한 시간들 같은 정신적 유산을 뜻한다. 시인은 그 보물을 마치 한단성 어딘가에 묻어둔 것처럼, ‘고향’ 어딘가에 감춰두었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그 보물은 돌아가야만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고향 사천성에 / 추석 즈음 앞산에서 뜬 달들”—
‘사천성’은 시인의 실제 고향이기도 하고, 동시에 모든 이의 마음속 고향을 대변한다. 추석이라는 시점은 공동체의 시간, 가족이 모이고 달을 함께 보는 명절이다. 이 ‘달들’은 해마다 떴고, 그 시절엔 함께 보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달들’은 “며칠 사이 / 뒷산에 가지런히 반달로 묻어두고” 사라진다. 이 표현은 은유적이다. 반달은 채워지지 않은 기억이고, 뒷산은 묘지이자 마음의 창고이며, 보물이 묻힌 자리이기도 하다.
“여태껏 찾아오지 않으니 / 오늘 밤 / 두 분이 함께 오셨나”—
여기서 '두 분'은 부모를 의미하는 듯하다. 돌아가신 분들이 이제 달빛으로 다시 찾아오신 것이다. 생전엔 추석 달을 함께 보았고, 지금은 그 기억 속에서, 아니 이 밤의 풍경 속에서 다시 만난다. 시인은 그리움과 환상을 뒤섞어 말한다. 환영이지만, 그건 진실보다 더 진실한 만남이다.
마지막 연은 이 시의 절정이다.
“야자수 늘어뜨린 잎새로 / 저 달이 / 이 밤따라 하나 둥글다”—
이국적인 ‘야자수’는 현재 시인의 삶이 고향이 아닌 타지, 아마도 남반구 혹은 남쪽의 먼 나라에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그 위로 떠오른 달 하나가 오늘따라 ‘둥글다’고 한다. 왜일까? 그리운 이들이 이 밤에 와준 듯해서, 마음이 차오른 것처럼 달도 완전해진다. 실제의 만월이 아니라, 감정의 충만함이 달을 둥글게 만든 것이다.
마무리
〈추석 즈음에 달〉은 한 편의 조용한 추모시이자, 고향과 부모, 유년과 현재를 한 줄기 달빛으로 이어주는 다리 같은 시다. 시인은 말한다—달은 매년 떠오르지만, 그 해에 함께 바라보던 사람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그러나 시인은 또한 말한다—기억하고 기다리면, 이 밤처럼 둥근 달은 다시 온다고.
“당신은 어느 밤의 달 아래, 누구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리고
“지금 당신 마음의 하늘엔, 달이 어떤 모양입니까?”
이 시는 그렇게, 당신 안의 보물 하나를 조용히 꺼내 보게 만든다.
장승규님의 댓글

향호님
감사합니다
님도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