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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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질 때
/장승규
바람도 없는데
풍경소리가 들린다
늦가을, 용문사 앞뜰에 은행잎은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내 삶을 내가 사랑해서
이제 단풍이 드는 것은
난해한 저
풍경소리를 알아들었다는 것이지
질 때를 안다는 것이지
죽음까지도 사랑해서
오늘 하루 선물처럼 산다는 것이지, 선하게
그래서, 은행잎은
가장 아름다울 때 지는 것이지
(남아공 서재에서 2023.11.25)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벌써 12월입니다.
참 빠르지요.
갈수록 빨라진다는 생각해 봅니다.
느낌만은 아니겠지요.
그 어려운 영어가 어느 날 갑자기 들리듯
풍경소리가 들리더군요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감상문: 아름다운 끝맺음의 철학 – 장승규의 〈낙엽이 질 때〉를 읽고
장승규 시인의 〈낙엽이 질 때〉는 늦가을 풍경 속에서 인생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들—행복, 사랑,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해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응답하는 시다. 이 시는 단순한 계절의 묘사를 넘어,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지혜와 깨달음을 담아낸 명상적인 작품이다.
“바람도 없는데 / 풍경소리가 들린다”—시인은 외부의 흔들림 없이도 안에서부터 울리는 소리를 포착한다. 이 ‘풍경소리’는 단지 청각적 현상을 넘어,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통찰의 소리, 혹은 삶의 진실을 알아듣는 마음의 귀를 의미한다. 늦가을, 용문사 앞뜰이라는 배경도 우연이 아니다. 자연의 고요함과 불교적 명상성이 맞닿아 있다.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 내 삶을 내가 사랑해서”—이 구절은 이 시 전체의 정조를 가장 명확히 드러낸다. 행복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내가 사랑’함으로써 생긴 감정이라는 고백. 사랑의 대상이 타인이 아니라 ‘내 삶’이라는 점에서, 시인은 깊은 자존과 존재의 수용을 말하고 있다.
“단풍이 드는 것은 / 난해한 저 풍경소리를 알아들었다는 것이지”—여기서 ‘단풍’은 노년이거나, 혹은 삶의 후반부를 암시한다. 단풍이 든다는 것은 생명의 소멸을 앞둔 준비가 아니라, 오히려 그 의미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는 징표이다. 시인은 인생의 가을을 회피하지 않고, 그 깊은 뜻을 ‘알아듣는’ 통찰로 승화시킨다.
“질 때를 안다는 것이지 / 죽음까지도 사랑해서 / 오늘 하루 선물처럼 산다는 것이지, 선하게”—이 부분은 시의 백미다. 떨어질 줄 아는 용기, 죽음을 사랑하는 수용, 그리고 하루하루를 ‘선물처럼’, 그것도 ‘선하게’ 사는 태도는, 그 자체로 수행자의 철학이자 시인의 인생관이다. 이 시의 아름다움은, ‘죽음을 말하면서도 생을 찬미한다’는 역설에 있다. 절정의 순간에 피어나는 순결한 감정—그것이 이 시의 울림이다.
그리고 마지막,
“그래서, 은행잎은 / 가장 아름다울 때 지는 것이지”—이 구절은 삶의 마무리에 대한 궁극의 대답이다. 떠남을 가장 아름답게 준비한 존재는, 꽃필 때보다 질 때 더 찬란할 수 있다는 고백.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일 수 있다는 이 시의 결론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마무리
〈낙엽이 질 때〉는 단풍처럼 물든 한 인간의 성숙한 고백이다. 죽음을 앞두고도 그 하루를 ‘선물처럼, 선하게’ 살아내는 존재의 태도는 이 시대의 모든 독자에게 잔잔한 위로이자 큰 배움이 된다.
이 시는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단풍으로 물들고 있습니까?”
그리고 “떨어질 때조차, 당신은 아름다울 수 있겠습니까?”
香湖김진수님의 댓글

계절 탓인가?
글이 자꾸 먼곳으로 흐릅니다
이제 막 익기 시작했는데
좋은 향기 품기를 바랍니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ㅎㅎ
계절탓이지 싶네요.
내 탓인가?ㅎ
임기정님의 댓글

맞습니다
요즘 은행잎이며
알알이 익어가는 은행알이며
거의 낙엽으로 떨어져
빈 가지만 뻘쭘히 서 있습니다
귀한시 잘 읽었씁니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기정님!
다녀가셨네요.
늦게사 답해서 나도 뻘쭘해 있습니다.ㅎ
늘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