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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어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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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443회 작성일 23-03-28 09:31

본문

봄 어귀에서

                                            /장 승규


봄들판은 혼자 두는 바둑판같다 

백돌 천지이다

살구꽃 앵두꽃 자두꽃 능금꽃 돌배꽃  

매화 벚꽃...


봄이 두는 백돌은 꽃마다 다섯 잎이다

봄꽃은 오궁도화

이에 치명적인 흑돌 한 수를 나는 알지

 치중수로 꽃은 떨어져 죽지

꽃은 죽어야 열매를 맺지

매화는 매실, 벚꽃은 버찌...


그래도 나는 

봄꽃 어느 송이에도 이 치중수를 둘 수가 없다

그냥 들고 바라볼 뿐 

그새 봄은 자꾸 백돌을 두어간다

변에도 귀에도:

강변에도

동네 어귀에도

 

아무래도 나는 

이 봄에 치중수는 둘 수가 없다

그냥 이 판이 흐뭇할 뿐 



(남아공 서재에서  2023. 3. 25) 

추천1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상문: 흩어지는 꽃들 속, 두지 못하는 사랑의 수 – 장승규의 〈봄 어귀에서〉를 읽고
장승규 시인의 〈봄 어귀에서〉는 봄의 절정과 꽃의 아름다움을 바둑판이라는 독특한 이미지로 풀어낸 시다. 화자는 봄을 백돌처럼 흩뿌려진 수로 바라보고, 그 사이 어디에도 자신은 '치중수'를 둘 수 없다고 고백한다. 여기서의 바둑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삶의 섭리, 또는 사랑과 이별, 생성과 소멸을 좌우하는 결정에 대한 은유다. 시인은 생의 아름다움 앞에서 개입하지 않고 머무르려는 태도, 혹은 순환의 섭리에 대한 겸허한 경외를 보여준다.

“봄들판은 혼자 두는 바둑판같다 / 백돌 천지이다”
봄의 풍경을 ‘바둑판’으로 본 시선이 신선하고 기묘하다.
들판을 흩뿌리는 봄꽃들은 마치 백돌 같고, 그 수는 무한히 아름답다.
여기서 바둑은 단순한 비유를 넘어, 봄이라는 존재가 한 수 한 수 절묘하게 두어내는 생의 무늬임을 상징한다.

“살구꽃 앵두꽃 자두꽃 능금꽃 돌배꽃 / 매화 벚꽃…”
줄줄이 나열된 꽃들의 이름은 마치 봄의 수를 하나하나 세는 듯하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 자체가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방식이다.
봄은 말없이 백돌을 두듯,
자연은 인간의 계산과 무관하게 그저 아름답게 존재한다.

“봄꽃은 오궁도화 / 이에 치명적인 흑돌 한 수를 나는 알지”
이 대목에서 시는 전환된다.
봄꽃의 오궁도화(五弓桃花), 즉 다섯 잎의 꽃은 완전한 모양이자 생명의 이상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 아름다움 위에 치명적인 흑돌,
즉 죽음을 부르는 한 수를 알고 있다.
이는 자연의 순환, 혹은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 이치—
즉 죽음 이후의 결실이라는 자연의 질서로도 읽힌다.

“그래도 나는 / 봄꽃 어느 송이에도 이 치중수를 둘 수가 없다 / 그냥 들고 바라볼 뿐”
가장 시적인 고백은 여기 있다.
알고는 있지만, 감히 행할 수 없는 한 수.
그것은 생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마음이자,
결국 사랑에 대한 깊은 존중이다.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 ‘지는 일’을 자신의 손으로 하진 않겠다는 결연한 겸허.

“그새 봄은 자꾸 백돌을 두어간다 / 변에도 귀에도: 강변에도 / 동네 어귀에도”
자연은 여전히 무심하게 흘러간다.
시인이 머뭇거리는 사이,
봄은 혼자서도 충분히 모든 곳에 삶의 수를 두고 있다.
시인은 자연의 섭리 앞에 개입하지 않는 구경꾼이다.
그러나 그 구경꾼은 가슴 가득한 감탄과 존중을 품고 있다.

“아무래도 나는 / 이 봄에 치중수는 둘 수가 없다 / 그냥 이 판이 흐뭇할 뿐”
마지막은 시인의 태도를 단호하게 정리한다.
그는 생을 건드리지 않고,
그저 흩어지는 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흐뭇할 뿐”**이라고 한다.
이 말 한 줄에는 생명에 대한 사랑, 지나감에 대한 인정, 인간의 자리가 담겨 있다.

마무리
〈봄 어귀에서〉는 생명과 순환의 미학을 바둑판과 한 수의 선택이라는 철학적 은유로 풀어낸 시이다.
시인은 말한다—
아름다움은 개입 없이도 완성되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는 일일 수도 있다.

이 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어떤 수를 두고 있습니까?”

그리고 속삭인다:

“굳이 두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 봄은 이미 완전하니까요.”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향님
반갑습니다.
이번 동인시집 발간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우리 동인들이 마음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시의 향기
독자가 엄청 많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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