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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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굴
/장 승규
몇 번을 혼자 왔다
한참을 기다리다 갔을 것이다
올해도
아니 올 줄 알았을 것이다
사월 사일, 그 해처럼
석촌호반 그 카페를 찾아왔는데
가고 없다
낯익은 꽃무늬 스카프만 길바닥에 뒹굴고
왔다 갔을 것이다
휑하니
행여나 싶어
연이틀 그 카페를 찾아왔는데
비가 내린다
내 마음은 호수
수많은 빗줄기에 과녁이 되어
총총
수면에 떠오르다 휑하니 지는
저 둥근 무늬들
(석촌호반에서 2023. 4. 05)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먼 길 달리듯 왔는데
가고 없습니다
길바닥에
흔적만 남기고는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감상문: 휑한 봄날, 기다림의 수면 위에 피어나는 그리움 – 장승규의 〈그 얼굴〉을 읽고
장승규 시인의 〈그 얼굴〉은 기다림이라는 행위를 통해 부재의 감정, 그리고 기억의 무늬를 섬세하게 그려낸 시이다. 짧은 봄날의 풍경, 석촌호라는 실제 장소, 비 내리는 카페라는 감성적 배경 속에서, 시인은 결국 오지 않은 ‘그 얼굴’이 더 또렷이 떠오르는 역설을 노래한다. 이 시는 말 그대로 ‘온 것이 아닌, 왔다 간 것’에 대한 마음의 기록이며, 지금도 그리움이 파문처럼 번지는 사람들에게 닿는 조용한 위로의 시이다.
“몇 번을 혼자 왔다 / 한참을 기다리다 갔을 것이다”
시의 첫 구절은 이별의 반복된 연극처럼 시작된다.
기다림이 있었고, 오지 않았고, 결국 떠남이 있었다.
이 구절은 단순한 추측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그 사람의 행동을 잘 아는 ‘나’의 회상이다.
‘혼자’라는 단어는 시의 정서를 지배하는 감정이자, 기억 속 사랑의 잔상을 드러낸다.
“올해도 / 아니 올 줄 알았을 것이다”
이 문장은 기대와 체념 사이의 묘한 균열을 품고 있다.
기다림이 익숙해졌기에, *‘오지 않을 것’*을 안다는 자조,
그러면서도 여전히 오는 길을 열어두는 내면의 갈등과 그리움.
그는 결국 알고 있다—그 사람은 오지 않을 것이며,
그러나 그럼에도 자신은 *‘기다리는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
“사월 사일, 그 해처럼 / 석촌호반 그 카페를 찾아왔는데 / 가고 없다”
‘사월 사일’이라는 날짜는 개인의 추억이자 상흔의 기념일이다.
매년 반복되는 그날, 같은 장소, 같은 카페—
그러나 그날의 ‘그 얼굴’은 없다.
남은 것은 “꽃무늬 스카프” 하나.
이것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사랑이 남기고 간 마지막 흔적이다.
시인은 이 스카프 하나만으로도 상대의 존재를 감각하고 있다.
“행여나 싶어 / 연이틀 그 카페를 찾아왔는데 / 비가 내린다”
이 부분은 마음의 망설임과 연장된 기다림을 보여준다.
'행여나'라는 말은, 이미 끝난 줄 알면서도 쉽게 마음을 접지 못하는 사람의 어조다.
그리고 비—시에서의 비는 언제나 감정의 거울이다.
여기서는 쓸쓸함, 회한, 애절함이 모두 이 비 속에 녹아 있다.
“내 마음은 호수 / 수많은 빗줄기에 과녁이 되어 / 총총 / 수면에 떠오르다 휑하니 지는 / 저 둥근 무늬들”
마지막 연은 시 전체를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로 응축한 장면이다.
‘내 마음은 호수’—고요해 보이지만, 무수한 기억과 감정의 파문을 담고 있다.
빗방울 하나하나가 그 사람과의 기억이다.
총총 떠오르다 지는 둥근 무늬들—그것은 기억의 파문,
즉 사라진 얼굴이 물 위에 다시 떠오르는 방식이다.
결국 이 시는, 그 얼굴이 오지 않았음에도,
이 기다림을 통해 오히려 더 분명히 도착했음을 말한다.
마무리
〈그 얼굴〉은 이별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형상,
그 잔영과 흔적이 여전히 파문처럼 남아 있는 내면을
조용히 응시하는 시다.
도착하지 않은 사람은 끝났지만,
그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은 여전히 호수처럼 젖어 있다.
이 시는 묻는다:
“당신 마음의 호수엔, 지금도 누군가의 둥근 무늬가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휘청거리며도 곱게 답한다:
“휑하니, 그러나 지우지 않고 나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정신님의 댓글

에궁...꽃녀 좀 보자고
16시간이나 하늘길 날아 왔는데
그녀는 꽃무늬 스카프만 땅바닥에
내동댕이 치고 떠났군요 ㅠ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벚꽃만 그랬겠어요.ㅎ
香湖김진수님의 댓글

귀국하셨군요.
'시마을 동인'이 대단한 거군요. 미쳐 몰랐습니다.
달리는 버스에서 내려야 할 곳이 이쯤인가 싶어 내릴 체비 중이었는데
장시인님 땜에 조금 더 가야 겠습니다.
그 먼곳에서도 오시는데
장승규님의 댓글

동인버스에서 내리실 채비를 하는 줄은
미쳐 몰랐습니다,
타야할 버스가 많으신가 봅니다.ㅎ
그냥 함께 가시지요
香湖김진수님의 댓글의 댓글

절뚝이는 사람 태워 줄 버스가 어디 있겠는지요?
스스로 민폐라는 걸 알기에
하차해 외롭더라도 혼자 걸어서 가볼까 하는 맘 뿐이 옵니다.
그게 답 아닐까 싶어서요.
이시향님의 댓글

시의 향기로
7684 분께 포스팅합니다.
매일 좋은 시 한편 읽을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장승규님의 댓글

시향님
포스팅 감사합니다.
덕분에 그 많은 분들에게 전해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