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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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장 승규
봄날은 진창이다
두견새 울음에 젖어서
하늘이 질퍽하다
홍벚꽃 낙화에 젖어서
땅이 질퍽하다
떠난 그대 생각에
이 가슴이 진창이다
(석촌호반에서 2023.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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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규님의 댓글

봄날은 가고
나는 오고
이제
나만 남아서
장승규님의 댓글

감상문: 질퍽한 봄, 떠난 사랑이 피워낸 진창의 계절 – 장승규의 〈봄날〉을 읽고
장승규 시인의 〈봄날〉은 흔히 떠올리는 화사한 봄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감각에서 출발한다. 따뜻함도, 생명력도, 들뜬 기운도 없다. 이 시에서 봄은 **진창(진흙탕)**이다. 젖고, 무너지고, 걸을 수 없고, 빠져드는 감정의 풍경이다. 시인은 봄을 빌려와 떠난 사랑의 진실한 후유증을 노래한다. 이는 짧고 간명한 언어로 완성된, 압축된 감정의 결정체다.
“봄날은 진창이다”
시의 첫 행은 독자의 인식을 정면으로 뒤엎는다.
봄날이 진창이라니? 보통은 ‘햇살 가득한’, ‘살랑이는’, ‘꽃이 만개한’으로 묘사되는 계절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 봄은 찬란한 계절이 아니라, 마음이 질척이는 시간이다.
이 단 한 줄로, 시인은 감정의 지형을 완전히 전복시킨다.
“두견새 울음에 젖어서 / 하늘이 질퍽하다”
두견새는 우리 시가에서 늘 이별과 그리움의 상징이었다.
이 울음은 단순한 새의 소리가 아니라,
애끓는 심정, 혹은 떠난 이를 부르는 소리로 들린다.
그 소리에 젖은 하늘—
즉 **세상의 위(위쪽, 정신, 영혼)**가 무너지고 젖어버린 상태다.
감정이 하늘마저 질퍽하게 만든다.
“홍벚꽃 낙화에 젖어서 / 땅이 질퍽하다”
여기서는 낙화, 즉 꽃이 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홍벚꽃은 봄의 절정을 상징하지만, 이 시에서는 이미 떨어지고 있음에 방점이 찍힌다.
그리고 그 낙화는 ‘젖는다.’
꽃잎 하나하나가 감정을 적시고,
그 땅—즉 몸과 현실의 바닥이 질퍽해진다.
시인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영혼에서부터 발 아래까지,
모두 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떠난 그대 생각에 / 이 가슴이 진창이다”
결국 모든 자연적 비유의 귀착지는 여기다.
진짜 질퍽한 곳은 마음,
그 중에서도 ‘가슴’이다.
봄의 소리, 봄의 꽃, 봄의 풍경 모두가
사랑을 잃은 한 사람의 내면과 공명하며 진흙탕이 된다.
이 한 줄에서 시인은 이 모든 진창의 이유를 드러내며,
짧은 시의 중심을 완성한다.
마무리
〈봄날〉은 짧지만 깊은 시다.
생명의 계절 봄을, 사랑이 떠난 자의 눈으로 보면
그저 진창일 뿐이라는 역설.
시인은 젖고, 질퍽이고, 무너지는 감정의 풍경을
두견새와 벚꽃이라는 시적 장치로 치밀하게 설계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모든 것이 결국
"떠난 그대" 때문임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 시는 우리에게 말없이 묻는다:
“당신의 봄은, 지금 진창이 아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