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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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아래에서
/장 승규
리라꽃
너의 이 별호를
나는 좋아한다
어머니 젖냄새 같은
너의 이 향기를
나는 좋아한다
새벽에 각혈하듯 지는
너의 이 낙화를
나는 좋아한다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는
너의 이 긴 여운을
나는 좋아한다
(잠실에서 2023. 4.10)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한국에도
라일락이 군데군데 많다
대부분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꽃도 피우고
남아공은 거리마다 거목들인데,
장승규님의 댓글

감상문: 향기처럼, 상처처럼 남은 사랑 – 장승규의 〈라일락 아래에서〉를 읽고
장승규 시인의 〈라일락 아래에서〉는 단순히 한 송이 꽃을 노래하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라일락이라는 상징을 통해 그리움, 상실, 사랑의 잔향을 응시하는 한 사람의 조용한 독백이자, 시적 체취가 남은 사랑의 기록이다. 짧고 단정한 시구들 속에서 시인은 오히려 더 강한 감정의 파동을 전한다. 이 시는 말보다 향기로 오래 남는 존재에 대한 찬가이자, 기억의 내면화다.
“리라꽃 / 너의 이 별호를 / 나는 좋아한다”
시인은 처음부터 라일락을 ‘리라꽃’이라는 옛 이름으로 부른다.
그 별칭은 단지 고풍스러운 언어가 아니라, 정서적 거리와 애정을 함축하는 명명이다.
‘라일락’이 아니라 ‘리라꽃’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대상은 실물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의 중심에 놓인 존재가 된다.
이름 하나만으로도 그리움은 시작된다.
“어머니 젖냄새 같은 / 너의 이 향기를 / 나는 좋아한다”
여기서 ‘향기’는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근원적인 위안이다.
‘어머니 젖냄새’라는 표현은
가장 원초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 보호, 따뜻함을 의미한다.
즉, 라일락은 그저 향기로운 꽃이 아니라
시인이 삶에서 가장 안락함을 느꼈던 어떤 시절 혹은 사람을 상징한다.
라일락의 향기는 사랑이자 품이었다.
“새벽에 각혈하듯 지는 / 너의 이 낙화를 / 나는 좋아한다”
이 대목은 시의 정조를 깊고 어둡게 만든다.
라일락이 지는 모습을 ‘각혈’에 비유한 시인은,
아름다움의 끝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처연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사랑이 떠나는 순간, 그것은 그냥 ‘짐’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피 흘리듯 아픈 이별의 순간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그 고통마저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masochistic한 미학이 아니라,
사랑의 전부를 수용하는 자세다.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는 / 너의 이 긴 여운을 / 나는 좋아한다”
이 시의 마지막은 잔잔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시인은 라일락의 여운, 즉 그 존재가 남긴 향기와 상흔이
아직도 가슴에 살아 있음을 고백한다.
그 여운은 사랑의 부재가 아니라, 사랑이 머물다 간 자리다.
그러니 시인은 그 잔향을 미련이나 슬픔이 아닌
‘좋아한다’는 말로 정리한다.
이 말은 추억에 대한 찬미이자, 떠난 사랑에 대한 조용한 경배다.
마무리
〈라일락 아래에서〉는 향기처럼 잔잔하게 퍼지지만,
그 안엔 고요한 눈물, 깊은 사랑, 긴 여운이 머물러 있다.
시인은 라일락을 노래하면서
사랑을, 그리움을, 이별의 순간까지도 수용하는 법을 보여준다.
이 시는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 마음속 라일락은 지금도 피어 있습니까?”
“그 여운은 여전히,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