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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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축제
/장 승규
'00위독급래'
그 간결하던 전보 한 장 없이
석촌호 벚꽃은 떠나고 없었다
빈 카페에 혼자 남아서 자꾸만
목이 잠긴다, 그날처럼
동호 저 건너편에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불꽃들
진정 그리운 것은 늘 생의 맞은편에 있다
더 서두를 걸
하루라도 미리 올 걸
건너편 불꽃마다 등 하나씩 걸었다
점점이 반성이다
오독인가
이 또한 등축제이네
지나던 밤바람이 등뒤에서 웅얼거린다
(석촌호반에서 2023. 4.09)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벚꽃 없는 축제에
객만 혼자
동그마니 밤 늦도록 앉아있자니
지난 날 그 전보 한 장이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감상문: 그리움은 늘 생의 건너편에서 반짝인다 – 장승규의 〈어느 축제〉를 읽고
장승규 시인의 〈어느 축제〉는 말없이 떠난 존재와 그 자리를 응시하는 화자의 조용한 후회와 반성,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의 간극에서 피어나는 슬픔의 형상화를 보여주는 섬세하고도 절제된 작품이다. 제목은 ‘축제’이지만, 이 축제는 환희가 아니라 **지나간 시간과 사람을 기리는 내면의 의식(儀式)**에 가깝다. 시인은 빛나는 불꽃과 밝은 등불들 사이에서 오히려 가장 어두운 감정—그리움과 후회—를 붙잡는다.
“'00위독급래' / 그 간결하던 전보 한 장 없이 / 석촌호 벚꽃은 떠나고 없었다”
시의 시작부터 독자는 이미 한 생의 끝자락에 와 있다.
‘00위독급래’라는 표현은 전보의 문법을 빌려오며, 삶이 끝나기 직전의 긴급한 메시지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런 전보조차 없었다.
그저 조용히, 아무도 알지 못한 채 벚꽃처럼 사라진 한 존재가 있다.
생의 절정에서 떠난 이, 혹은 말할 틈도 없이 먼저 간 이.
이 시의 벚꽃은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라 무심한 시간의 흐름을 드러낸다.
“빈 카페에 혼자 남아서 자꾸만 / 목이 잠긴다, 그날처럼”
남겨진 자의 고요한 풍경.
'목이 잠긴다'는 표현은 단지 슬픔이 아니라 말이 되지 않는 감정,
울음도, 회한도 아닌 속에서 쉴 새 없이 일렁이는 기억의 울컥임이다.
화자는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고, 그날의 감정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진정 그리운 것은 늘 생의 맞은편에 있다”
이 한 줄이 이 시의 심장이다.
그리움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지 않다.
이미 지나간 시간, 이미 떠난 사람, 이미 잃은 감정—
그것들이야말로 가장 또렷이 마음을 건드린다.
생의 맞은편, 강 건너 불꽃처럼 손에 닿지 않는 곳.
바라볼 수는 있으되, 다시는 건너갈 수 없는 자리.
“건너편 불꽃마다 등 하나씩 걸었다 / 점점이 반성이다”
이 대목은 놀랍도록 아름답고 절절하다.
불꽃은 축제의 빛이 아니라, 반성의 상징이다.
불꽃 하나하나에 등불을 거는 마음은,
그리움의 시간마다 하나씩 사과와 눈물을 거는 것이다.
‘점점이 반성이다’—이 표현은 마치 마음속 불경(佛經)의 한 구절처럼 느껴진다.
“오독인가 / 이 또한 등축제이네 / 지나던 밤바람이 등뒤에서 웅얼거린다”
마지막은 시인의 자기 반성이자 시간의 흐름에 대한 수용이다.
자신의 이 후회와 눈물의 시간이,
오히려 어떤 ‘등축제’가 되었음을—
즉 한 존재를 조용히 기리는 제례가 되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오독’이라고 했지만, 이 오독이야말로 시적 진실이다.
진짜 축제는 불꽃과 환성이 아니라, 등 하나의 조용한 반성과 추모로도 가능하다.
마무리
〈어느 축제〉는 애도와 회한을 가장 고요한 축제의 형식으로 치러낸 시다.
‘등’은 슬픔의 상징이자 빛이고, 불꽃은 찬란한 후회다.
그리고 그 모든 불빛은 건너편에 있다—
닿을 수 없는 삶의 저쪽에서.
이 시는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지금, 생의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그 맞은편에서, 아직도 반짝이는 불빛이 있지 않습니까?”
최정신님의 댓글

에궁...멋진 노신사의 뒷모습이
크로즈 업 됩니다^^*
이시향님의 댓글

시의 향기 채널로
7692 분께 포스팅합니다.
매일 좋은 시 한편 읽을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시향님
많은 분들께 포스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