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것에 대한 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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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것에 대한 경배
/장승규
한 아이가 빈봉지를 버려두고 그냥 가네
남산골 쉼터가 더러워진다
바람에 굴러가니
그곳에 썩지 않는 쓰레기가 모여있다
나는 깨닫네
야산에 이름조차 없이 함께 피다가는
저 많은 꽃들
깨끗이 머무르다 가는 거네
이 세상 한 구석도 더럽히는 일 없이
나는 생각하네
두고 가는 것 하나 없이 살다 가자
이름조차
남은 이들에게 쓰레기일지 모른다고
야산을 내려오니
그곳엔 거리마다 간판이 모여있다
밤이면 불을 켜고 날뛰겠지
이름 없는 것을 경배하게 되었네
(한국의집에서 2023.4.23)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시마을 동인님들과 명동에서 1박한 후에
함께 찾은 한국의집에서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감상문: 덧없는 이름보다 조용한 사라짐을 – 장승규의 〈이름 없는 것에 대한 경배〉를 읽고
장승규 시인의 〈이름 없는 것에 대한 경배〉는 도시의 소란과 자연의 고요함, 흔적을 남기려는 인간과 말없이 사라지는 존재들 사이의 대조를 통해, 무엇이 진정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낸 작품이다. 시인은 ‘이름 없음’이라는 개념을 단순한 무명성이 아니라, 깨끗한 존재 방식, 혹은 진정한 삶의 미학으로 끌어올린다.
“한 아이가 빈봉지를 버려두고 그냥 가네 / 남산골 쉼터가 더러워진다”
시의 도입은 너무도 평범한 장면이다. 아이 하나가 무심코 버린 쓰레기, 그리고 더러워진 쉼터. 하지만 시인은 이 사소한 장면에서 존재의 태도를 본다.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야말로 고결하다는 메시지로, 이 장면은 시 전체를 관통하는 도입부가 된다.
“나는 깨닫네 / 야산에 이름조차 없이 함께 피다가는 / 저 많은 꽃들”
여기서부터 시는 본격적으로 **‘이름 없음’**에 대한 시인의 경외를 드러낸다.
이름 없는 들꽃들은 무리를 이루어 피었다가, 말없이 진다.
자기 이름을 내세우지도 않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그저 머물고, 조용히 사라지는 존재들.
시인은 그런 들꽃에게서 어떤 이상적인 삶의 태도를 발견한다.
“두고 가는 것 하나 없이 살다 가자 / 이름조차 / 남은 이들에게 쓰레기일지 모른다고”
이 구절은 시의 중심 사상이다.
사람은 흔히 **‘이름을 남기는 것’**을 삶의 의미처럼 여긴다.
하지만 시인은 되묻는다.
그 이름조차 남겨진 이들에겐 무겁고 지저분한 흔적일 수 있지 않느냐고.
그렇기에 그는 “두고 가는 것 하나 없이” 살기를 다짐한다.
이 다짐은 겸허함의 극치이자, 존재의 생태적 책임감이기도 하다.
“야산을 내려오니 / 그곳엔 거리마다 간판이 모여있다 / 밤이면 불을 켜고 날뛰겠지”
자연을 내려와 도시로 돌아오는 순간, 시인은 대비를 더 날카롭게 보여준다.
간판들은 이름의 과잉, 욕망의 표식이다.
밤이 되면 그 이름들이 불빛을 켜고 '날뛴다'—이 표현은 놀랍도록 적확하다.
이름을 빛내기 위해 소란을 벌이는 도시,
그 안에서 존재는 점점 더 번잡해지고 어지러워진다.
“이름 없는 것을 경배하게 되었네”
시인은 결론적으로 말한다.
이제는 무명(無名)의 미덕을 찬미하겠다고.
이 말은 곧 조용한 존재, 겸허한 삶,
흔적을 남기지 않고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헌사다.
마무리
〈이름 없는 것에 대한 경배〉는
오늘날처럼 ‘남기고 드러내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지우고 사라지는 것’, **‘묻히고 잊히는 것’**이
얼마나 고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설의 시이다.
시인은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남기고 가려 합니까?
아니, 무엇을 남기지 않고 가려 합니까?”
그리고 조용히 대답한다:
“나는 이름 없이, 깨끗이 머무르다 가고 싶다.”
이시향님의 댓글

시의 향기 채널로
7692 분께 포스팅합니다.
매일 좋은 시 한편 읽을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최정신님의 댓글

같이 목격했는데
시신이 장시인한테만
강림했네요 ㅎ^^
장승규님의 댓글

시향님
7천이 넘는 분들에게
포스팅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최시인님
같이 목격했지요.
그 시신이 여신임에 확실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