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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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장 승규
시작부터 소실점까지
꼭 같은 간격으로 나란히 가는 철길
너와 나는 아니다
너는 왼쪽 나는 오른쪽
멀었다 가까웠다
때로는 빈틈없이 포갰다
출발역부터 도착역까지
똑 같은 거리를 함께 가는 철길
너와 나는 아니다
너는 길고 나는 짧고
서두르다 쉬다
때로는 덜컹덜컹 포기도 한다
너와 나는 철길이다
네가 굽으면 나도 굽는
(일본 도야마에서 2023.4.28)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일본 도야마에 설벽보러 갔다가
'도로코'라는 꼬마 관광열차를 탔다.
산세가 험해서 그 사이에 놓인 철길이
우리네 삶 같았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감상문: 서로 다르되 함께 굽는 길 – 장승규의 〈너와 나〉를 읽고
장승규 시인의 〈너와 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철길에 빗대어 섬세하게 풀어낸 서정시다. 흔히 철길은 '평행'이라는 개념으로 인식되지만, 시인은 오히려 그 평행 속의 미묘한 차이와 불완전함, 그리고 결국 함께 굽어가는 운명을 통해 진짜 관계의 본질을 들여다본다. 사랑, 동행, 혹은 부부의 삶—어떤 방식으로 읽어도 이 시는 관계의 정직한 속살을 담고 있다.
“시작부터 소실점까지 / 꼭 같은 간격으로 나란히 가는 철길 / 너와 나는 아니다”
시의 도입부는 강한 선언으로 시작된다. ‘너와 나는 아니다.’
눈에 보이기엔 나란히 간다고 해도, 실제로 우리의 삶과 마음은 결코 완벽히 겹치지 않는다. 서로는 왼쪽과 오른쪽, ‘멀었다 가까웠다’ 하며 흔들리는 사이. 이 흔들림은 갈등이 아니라 관계의 리듬이다. 때로는 포갤 듯이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영원하지 않다.
“출발역부터 도착역까지 / 똑 같은 거리를 함께 가는 철길 / 너와 나는 아니다”
이번엔 거리와 시간의 메타포다. 함께 출발했어도, 함께 도착해도,
너와 나는 같은 속도로 걷는 게 아니다.
너는 길고 나는 짧고,
너는 서두르고 나는 멈춘다.
삶을 함께 나눈다는 건 같은 구간을 산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 다른 리듬을 인정하고 맞춰가는 일임을 시인은 조용히 말해준다.
“때로는 덜컹덜컹 포기도 한다”
이 짧은 구절은 시 전체에서 가장 인간적인 순간이다.
우리 모두는 때때로 관계를 포기하고 싶어진다.
덜컹거리는 건 삶의 리듬이 깨졌기 때문이고, 포기하고 싶다는 건
그만큼 애썼다는 뜻이다.
이 한 줄이 주는 공감은 깊고도 다정하다.
“너와 나는 철길이다 / 네가 굽으면 나도 굽는”
마지막 두 줄은 이 시의 결론이자, 관계에 대한 시인의 철학이다.
우리는 완전히 같지도 않고, 정확히 함께 가지도 않지만,
한쪽이 굽으면 다른 쪽도 자연히 굽을 수밖에 없는 철길 같은 존재다.
여기엔 상호의존성과 운명성, 그리고 무언의 연대가 담겨 있다.
결국 ‘너와 나’는 같이 휘어지며, 그렇게 삶이라는 궤도를 완성해가는 것이다.
마무리
〈너와 나〉는 연인 혹은 부부, 친구나 동료 사이의 관계를 철길에 비추어 말하면서, 완벽한 나란함이 아니라, 유연한 굽음이 관계를 지속하게 한다는 깊은 통찰을 전한다. 이 시는 우리에게 말없이 묻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와, 어떻게 굽어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조용히 답한다:
“서로 같지 않아도, 굽어가는 쪽으로 우리는 함께 간다.”
임기정님의 댓글

시인님 참 좋네요
시도 사진도 우리네 삶도
잘 읽었습니다
허영숙님의 댓글

사람과 사람사이도
철길처럼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야
오래 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도야마 , 너무 아름답네요
출국전에 여행 많이 다니셔요
여행은 다리 떨릴 때가 아니라 심장 떨릴 때
다녀야 한대요 ^^
장승규님의 댓글

임시인님, 허시인님
감사합니다.
이곳 한국에 올 때 주위를 여행하지 않으면
아시아 국가들 둘러볼 기회가 없어요.
다리 떨릴 때가 아니라 심장 떨릴 때라.
좋군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