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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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배
/장승규
요하네스버그에서
도하 거쳐
한 해 한 번은 서울을 다녀간다
온 길이 꼭 반
되짚어가는 길이 또 반
접어보면 접히는 여행길이다
생은
밀물 들기 전에
온만큼 돌아가야 하는 뻘밭
접고 돌아서야 할 때가 있다
어느 지점에서 오던 길 돌아섰나
방향타 고장 난 뻘배 하나
오늘도
칠순 바닷가 어디쯤에서 시를 수리하고 있다
(잠실에서 2023.4.04)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뻘배
밀물이 들기 전에
나간 만큼 얼른 돌아와야 사는
오늘
어딘지도 모르고 사는 것 같아서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감상문: 칠순의 바닷가, 인생이라는 뻘배를 수리하며 – 장승규의 〈뻘배〉를 읽고
장승규 시인의 〈뻘배〉는 여행과 귀환, 시간과 자기 성찰을 뻘밭과 배에 빗대어 묵직하게 풀어낸 시다. 이 시는 단지 먼 거리의 이동을 말하는 여행기가 아니라, 삶이라는 여정 전체를 ‘뻘밭을 건너는 작은 배’라는 이미지로 재해석한 인생론이다. 특히나 '칠순'이라는 시간의 고비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담담한 시선은 이 시를 더 깊고도 쓸쓸하게 만든다.
“요하네스버그에서 / 도하 거쳐 / 한 해 한 번은 서울을 다녀간다”
이 도입부는 시인의 실제 여정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정신적 순례로도 읽힌다. 이국에 뿌리를 내린 삶과 모국에 대한 연결감, 그 사이를 오가는 반복적 귀환. 매년 되풀이되는 이 여정은 이제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삶의 구조가 되었고, 그것은 접히는 여정이 된다.
“온 길이 꼭 반 / 되짚어가는 길이 또 반 / 접어보면 접히는 여행길이다”
시인은 삶을 ‘접을 수 있는’ 길로 표현한다. 이 표현에는 시간과 거리, 기억과 방향이 모두 압축돼 있다. 접는다는 행위는 일종의 되돌아봄이자 마무리의 은유다. 삶이 직선이 아니라면,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발길을 되돌려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이 너무 늦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실려 있다.
“생은 / 밀물 들기 전에 / 온만큼 돌아가야 하는 뻘밭 / 접고 돌아서야 할 때가 있다”
이 구절은 시의 핵심이자, 인생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 담긴 부분이다. 인생은 밀물처럼 차오르기 전에 미리 빠져나와야 하는 뻘밭이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다. ‘온만큼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며 균형 있게 마무리하는 지혜를 말한다. 성공이나 도달이 아니라, **‘되돌아옴’**에 대한 가치를 시인은 강조한다.
“어느 지점에서 오던 길 돌아섰나 / 방향타 고장 난 뻘배 하나”
인생의 전환점은 종종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간다. 시인은 ‘어느 지점’이라고 말하면서도 명확한 계기를 말하지 않는다. 그저 방향타가 고장 나버린 뻘배처럼, 인생은 어느 순간부터 목적지를 잃고 헤맨다. 그러나 이 뻘배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시인은 그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오늘도 / 칠순 바닷가 어디쯤에서 시를 수리하고 있다”
이 마지막 문장은 아름답고도 절실하다. 뻘배의 방향타를 고치듯, 시인은 ‘시’를 수리하고 있다. ‘시를 수리한다’는 말은 글을 고친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삶을 되짚고 정리하며, 언어로 응급 처치하고 재정비하는 행위다. 인생이 망가졌다는 것이 아니라, 아직 그 위에 ‘시’를 쓰고 있다는 고백이다. 이 행위는 구원이고 희망이다.
마무리
〈뻘배〉는 삶을 ‘뻘밭을 건너는 작은 배’로 비유하면서, 그 배가 방향을 잃고 흔들릴지언정, 여전히 **‘시를 통해 수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전한다. 이 시는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의 인생은 어디쯤에서 되돌아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지금, 무엇으로 그 배를 수리하고 있습니까?”
뻘배 위의 시인은 아직도 살아 있다. 아직도 시를 쓰고, 삶을 고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늦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시향님의 댓글

시의 향기 채널로
7700 여분께 포스팅합니다.
매일 좋은 시 한편 읽을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시향님
그 많은 분들께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세요
한인애님의 댓글

생은
밀물 들기 전에
온만큼 돌아가야 하는 뻘밭...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장승규님의 댓글

한인애 시인님!
혹시나 싶어서 내려와 보니
여기도 다녀가셨습니다.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