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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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궁전
성영희
폐허를 두들겨 빨면 저렇게 흰 바람 펄럭이는 궁전이 된다. 매일 바람으로 축조되었다 저녁이면 무너지는 여름궁전은 물에 뿌리를 둔 가업만이 지을 수 있다. 젖은 것들이 마르는 계단, 셔츠는 그늘을 입고 펄럭인다.
몸을 씻으면 죄가 씻긴다는 갠지스 강 기슭에서 두들겨 맞다 이내 성자처럼 깨끗해지는 옷들, 어제 죽은 이의 사리*를 계단에 펼쳐 놓고 내일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헹구는 도비왈라들, 거품 빠진 신분들이 명상처럼 마르고 있다.
이 강에서 고요한 것은 연기 뿐,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온다.
밤이면 강물은 다시 태엽을 감고 소리를 잃은 것들은 물결이 된다. 화장장의 연기도 무시로 강물 따라 흐른다. 앞 물결과 뒷 물결이 섞여 흐르는 이곳에 오늘이 있고 산자만이 빤 옷을 육신에 걸칠 수 있는 내일이 있다.
물소리를 베고 잠들면 잠결에도 물이 흐를까, 사내들의 팔뚝은 강기슭을 닮았다 끊임없이 궁전을 세우지만 그 안에 들 수 없는 불가촉 타지마할, 하얗게 펄럭이는 그들만의 궁전이다
* 인도의 여자 의상
ㅡ『공정한시인의사회』(201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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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영희 : 충남 태안 출생. 2017 《경인일보》,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섬, 생을 물질하다』가 있음. 〈농어촌문학상〉 〈동서문학상〉 〈시흥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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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오영록님의 댓글

잘 감상하였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아~ 뵌지도 오래되었군요.
성영희님의 댓글의 댓글

옥시기는 잘 여물었는지요.
폭염에 농사 지으시느라 힘드시겠어요.
여름 잘 건너고 시원할때 함 봐야쥬^^
서피랑님의 댓글

1연을 읽다가, 그만 떡 입을 벌리고.,
한참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 시는 한참 더 두들겨 패고,, 빨아 말려야겠구나..^^;;
셔츠가 그늘을 입고 펄럭일 때, 까지.
멋진 작품 잘 감상했습니다.
성영희님의 댓글의 댓글

제가 뻥이 좀 세지요.
언젠가 방송에서 도비왈라들의 삶을 조명하는데
실제 그들의 삶에 이 정도는 뻥 측에 끼지도 못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분이 만든 천형 앞에 평생을 빨래만 하는 삶을 시로 끄적인다는 것이
또한 죄스러운 마음도 들고요.
늘 넘치는 댓글 감사드려요.^^
허영숙님의 댓글

불가촉천민, 법대로 나눈 계급이 없지만
현재 우리의 삶은 자본에 의해서 나누어지고 있는듯 합니다
좋은 시, 다시 읽고 싶은 시
자주 좀 올려주세요
가을이 깊으면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