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사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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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사무직
이명윤
시금치를 시금치라 부르지 못하고
눈만 끔벅거리는 염소들을 사랑한다
보고서가 날아다니는 사무실은
푸른 초원 같아,
새떼처럼 우아하게 휘날리는 A4용지와 흑백으로 복사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사랑한다
날아드는 상사의 눈빛을 피해 일제히 고개 숙인 모니터를 사랑한다
중세기 교회의 말씀처럼 납득할 수 없는 순간마다 천장에서 신호처럼
내려오는 밥줄을 무의식적으로 사랑한다
형광등 불빛 아래 숨소리마저 사무적으로 관습화된 노동을
사랑할수록 점점 입체적으로 온전해지는 스트레스를
제정신이 아닌 정신의 세계를 사랑한다, 그리하여
귓속말이 미치도록 아름다운 복도와
찬란한 훌쩍거림을 멈추고 전송하는 욕설과
삼삼오오 모여드는 신발들을 사랑한다
만일을 대비하여
복도 끝에서 지키고 선 소화기를 사랑한다
들어도 못 들은 척 능청스러운 얼굴을
이젠 사용법도 흐릿해진 하루를 숙명적으로 사랑한다
-계간 『시와사람』 2018년 겨울호
댓글목록
강태승님의 댓글

퇴고 하셨군요 ㅎㅎ
서피랑님의 댓글의 댓글

넹~~~~~~^^
발표글은 모두 퇴고할 수 밖에요 ㅎ
현탁2님의 댓글

멋집니다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시를 사랑합니다
서피랑님의 댓글의 댓글

감사합니다, ^^
댓글에 힘을 얻습니다..
임기정님의 댓글

저 또한 거룩한 사무직같은 시를 사랑합니다
약오르도록 샘나면서도
사랑합니다
무릎 탁 치며 사랑합니다
서피랑님의 댓글의 댓글

늘 고맙습니당~~
열심히 돈 벌어서
만나면 맛있는 거 많이 사드릴게요 ^^
허영숙님의 댓글

연말 많이 바쁠텐데 이렇게 와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현탁님 말씀처럼 읽으면 기분 좋아지는 시가 정말 좋은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피랑님의 댓글의 댓글

무슨 말씀을요, 당연 자주 와야하는데
그렇지 못해 미안합니다.
선배님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