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일암(向日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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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영희
마당 끝에 물을 두고 있는
산문(山門)의 기와들은 파도를 닮았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보면
다 닫고 오라는 듯
입과 귀와 눈을 막은 불상들이
묵묵부답으로 서 있다.
간신히 몸 하나 비집을 수 있는
석문을 통과할 때마다
몸은 저절로 낮아진다.
일곱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만나는 관음전
낮아지라고 더 겸손하라고
머리를 낮추고 몸을 숙일 때 마다
하나씩 줄어드는, 넘치던 호흡들
몸에 든 이 병도 다 뜻이 있었겠거니
쫓아내려 하지 않고 다만
묵묵부답으로 보듬고 가엾게 여기다보면
저도 내가 가여워 물러 나겠거니
좁고 어두운 석문을 통과할 때마다
움츠리는 부피들과
멀리 바다를 향해 도열하듯 서 있는 거북들
모두 한 태양으로 눈 뜨고
한 달(月)로 잠드는 인연들이니
살고 또 죽는 병으로
우리는 모두 동병상련인 것이니.
모던포엠 2019, 2월호
댓글목록
이종원님의 댓글

낮아지려고 겸손하라고를 주문처럼 외워오신 시인님은 그 자체로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시에 있어서는 우뚝 솟은 향일함을 닮아 광채가 눈부시게 여수 앞바다에 쏟아지는 듯 합니다.
성영희님의 댓글의 댓글

이종원 시인님의 댓글이 너무 눈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네요.
더 좋은 시로 뵙는게 보답이라 여기며...
오늘밤은 빛나는 꿈을 꿀것 같아요.^^
최정신님의 댓글

오래 묵은 나의 향일암을 다시 채록하게 하는 글,
개인적인 성향이 발로 쓰는 시를 즐가
기지요
우리 모두 동병상련이란 문귀에 마음 젖네요.
성영희님의 댓글의 댓글

산다는 것이 다 동변상련이 아닐까 생각하면
귀하지 않은 인연 없고 애석하지 않은 삶도 없는것 같아요.
선생님 겨울 잘 나시고 꽃 봄에 봬요.^^
무의(無疑)님의 댓글

하나씩 줄어드는, 넘치던 호흡들
이 눈대목인 듯합니다. 암튼,
암 뜻 없으니
후딱 쫓아내고
후다닭 내려와, 맥주나
성영희님의 댓글의 댓글

대사께서 어려운 걸음을 다 주시고
감개무량이옵니다.
그러고 보니 닭에 맥주 버무린 적은 없는듯 허이...
허영숙님의 댓글

향일암 오르는 길에 낮은 바위문이 있지요
몸을 낮추고 들어오라는 그 말씀 같다는 생각을 해보며
오래전에 여수 갔다가 들렀던 향일함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후다닭 한 점 하러 저도 갈까요 ^^
성영희님의 댓글의 댓글

바위 하나 풀 한포기 말씀 아닌것 없던 향일암
저도 다시 가고 싶은 곳이네요.
시인님 오신다면 언제든지 대환영이지요.
후다닭은 물론 그 무엇이라도...^^
서피랑님의 댓글

시로 쌓아 올린 고요 앞에
한없이 눈이 부드러워집니다...
성영희님의 댓글의 댓글

정갈한 문장 앞에
한없이 고개 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