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의 공식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성영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910회 작성일 17-06-16 21:39본문
성영희
무쇠들, 화덕 앞에 몰려 있다
강한 것 같지만 연하고 푸르스름한 살을 가지고 있는 쇠
잘 벼린 낫 날은 무쇠의 가장 깊은 살이다
뼈가 살을 베는 것은 본 적 없으나
살은 살을 벨 수 있는 것
투박한 모루에 불꽃으로 상기되는 소리들이 박혀 있다
연약한 속을 끄집어내는 불꽃과
두드릴수록 가늘어지는 비명들
펄펄 끓는 불의 의중에 따라 길들여진 것이
연장의 모양이라면
불꽃은 가늘고 긴 계절을 불러내는 혀다
불의 뼈를 두드리는 사내가 있다. 창을 열 면 가까이 와 있는 국적 없는 별들, 낮 동안 쏘아 올린 불꽃 중 어느 하나는 아주 먼 곳까지 튀었을 것 같다
자루하나 끼우면
끼니가 되거나 공사가 되기도 하는 쇠의 근성
쟁기질을 하는 사람과 칼을 휘두르는 사람은 모두
뜨거운 손잡이를 쥐고 있는 것이다
검은빛을 다 버린 다음에야
다시 번쩍거리는 연장의 공식
날아가지 않고 부리로 들어가서
뼈가 되는 불꽃들
어린 새 한 마리가 푸른 불꽃 속에서 파닥거린다
2017 < 시와 소금 > 여름호
댓글목록
임기정님의 댓글
임기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연장에공식
자글자글 끊어 오르는 찌개 국물처럼
맛있게 읽었습니다
이종원님의 댓글
이종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불의 뼈를 다루는 모습을 보고 시의 뼈를 다루셨습니다
읽다보니 그 풀부질속 불의 춤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강한 회오리가 있습니다
흩어지 실의 더미 속에서 잔잔하게 스토리가 풀려 하나의 털실뭉치가 만들어진 것처럼, 그 실을 뽑아서
주옥같은 옷 한장을 만든 것처럼.. 그 불의 냄새가, 시의 냄새가 한참동안 강렬합니다.
오영록님의 댓글
오영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잘 지내시죠.. 더운날
뵌지도 오래되구요.. 사는 많이 많이 읽은시고요..
활연님의 댓글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조폭들이 이 시를 읽으면 삽시간 영혼이 순진무구해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잘 벼른 단단함이 무르게 심금을 베는 듯한,
그래서 오래 맴돌게 됩니다. 관념에서 시를 구하지 않고
뜨거운 현장을 응시하며 시를 떠올렸을 거인의
모습이 연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