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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한 바퀴 도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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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서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8건 조회 301회 작성일 18-11-14 18:41

본문

우주를 한 바퀴 도는 시간

이명윤


   
죽은 자를 위한 법이 있다
 
아무리 행려병자라 해도 24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사무적인 목소리로 장례식장 직원이 말한다
그의 빈소는 비어 있다
 
그날 오후 장례식장 비스듬히 열린 창문 사이로
잠시 햇살이 들어왔을 뿐인데
하루가 지났다
식은 국밥 한 그릇에 숟가락을 얹자
일 년이 훌쩍거리며 갔다 새들처럼
웃고 떠드는 조문객 사이로 십 년이
농담처럼 흘렀다
사정이 있다며 하나 둘
자리를 뜨는 얼굴마다 주름이 돋아났고
우리는 복도에 줄지어 선 화환처럼 늙어갔다
빈소는 여전히 비어 있다 꿈결인 듯
햇살이 잠시 엎드려있다 떠났고
바람을 타고 국밥의 향기가 은은하게 감도는가 싶더니
어디선가 한꺼번에 다정한 목소리들이 몰려와서
그의 사진을 내내 만지작거렸다
그날 장례식장 옥상 하늘엔
무수한 날들의 별이 밤새 반짝거렸다
24시간이 다녀간 뒤,
 
그는 화장장으로 갔고 신발 한 켤레만 남겨놓고 떠났다
 
걸음이 어느 구름 속으로 사라졌는지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시산맥2018년 겨울호
 


추천1

댓글목록

임기정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임기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참으로 가슴 아프고 먹먹해 오는
시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우주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은 같은데
떠남에 있어 변변히 배웅조차 받을 수 없는
행려병자
갑자기 머릿속이 하해지 는 느낌입니다.
귀한 시 잘 읽었습니다.

허영숙님의 댓글

profile_image 허영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의 행려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빛이 따스합니다
그의 걸음은 여기와는 다른
따뜻한 세계로 걸어가지 않았을까...
이토록 아프게 바라보는 이 있었으니까요

이종원님의 댓글

profile_image 이종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또 다른 제목을 쓰거나 부제를 쓴다면 행려에 대한 경례라고 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리운 이에 대한 추모 같이 섬세한 시인님의 눈빛에 읽는 가슴도 따듯해집니다.
고인에 대하여 빌어준 명복으로 우주가 한순간 따듯해졌음을 느꼈습니다.

성영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성영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서피랑님 시편마다 묻어 있는 진중한 삶의 무게에 경의를 표합니다.
언젠가  누구나 다 거쳐야 할 시간
그 거룩한 시간에 망자도 산자도 아름답게 추억할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최정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최정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주에 점하나로 떠나는 그가
시인의 사랑으로 가는 길에 빛이 되어 환하겠습니다.
이 해가 다 지고 있네요. 마무리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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