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건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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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건조증
최정신
읽던 책 접힌 페이지를 열다 손가락을 베었다
눈곱만한 상처에 미욱의 감각이 소스라친다
보드라운 깃털 어디에 이처럼 날카로운 전의를 숨겼을까
설렁 넘겨버린 연둣빛 책갈피에 핀 꽃의 상처를
나무의 흉금에 새긴 문장으로 읽지 못했다
보리 가시 밑동에 간직한 풋 물이 일용할 양식을 파종하는
사랑의 은유라 읽지도 못했다
햇살과 바람의 은혜를 동봉한 과육을 탐했을 때도
피 흘린 수고에 고맙다는 기척 한 줄 그을 줄 몰랐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못 읽는 드난살이 무지렁이다
딱 한 번, 배당된 책 한 권을 건성건성 넘겨버린 우매를
꽃 빛 생명수가 호되게 질책한다
노을의 사윔이 스러짐이 아니라 절정의 울부짖음임을
불현듯 곱씹어 보기도 하는 것이다
늦게 트인 까막눈으로 낙관처럼 새겨야 할 것들에
침 발라 붉은 밑줄을 긋는다
계절이 나를 몇 장 넘기고 간다
[두레문학 25호]
댓글목록
최정신님의 댓글

장맛비마저도 인색한 여름 살이 입니다
게으름이 만평지기니 종아리 걷고 벌 섭니다 ㅎ
날마다 좋은 날 하세요^^
허영숙님의 댓글

며칠전 책장을 정리하면서
버려야 될 책과 간직해야 될 책을 앞에 두고 고민 했었습니다
돌아보면 전부 한 사람의 인생이다 싶어
다시 펴서 읽어보는 의식을 했습니다 ^^
최정신님의 댓글의 댓글

내도 늘 같은 고민
한 사람의 인생...내가 엮은 또한 엮어야 할 책도
쓰레기장에서 울까봐...ㅎ. 고마워요.
김용두님의 댓글

역시 시인은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네요.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 상상하지 못하는 것을 상상하고,,,
시인의 삶은 참 멋집니다.
저 역시 시인의 한 사람으로 자랑스럽기도 하고
또 저는 왜 이런 눈이 부족하나,,, 자책도 됩니다.
잘 감상하였습니다. ^^
최정신님의 댓글의 댓글

용두님이 진짜 멋쟁이지요
삶에 충실하고 삶에서 시를 쓰고...
늘 건강하길 바랍니다^^
문정완님의 댓글

우와 ~~우우우 댓끼리 엄치척 ㅎ
잘 지내고 계시지예
이 자리를 빌어
동인님 모두 안부 여쭙니다 꾸벅~~
최정신님의 댓글의 댓글

에궁 이 누요?
우리가 이렇게 인사할 사이는 아닌데...
잘 지내시고 시 탑도 잘 쌓고 계시지요?
시도 좀 보여 주세요.
이종원님의 댓글

사랑의 은유를 읽는 시인의 눈빛을 따라가 봅니다. 그저 스쳐지나가기만 하고
나무를 볼 수 없었던 눈을 비비고 보니 몇번이고 숲길을 돌다보니 까막눈을 벗게 되고 감사에 살짝 밑줄을 그어봅니다
최정신님의 댓글의 댓글

엄살이 110단입니다 ㅎ
누구보다 밝은 눈
누구보다 깊은 혜안,
은혜로운 주일 되세요^^
오영록님의 댓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합니다./
여름 건강히 잘 보내세요..
최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