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 크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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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석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589회 작성일 20-04-08 05:06본문
타워 크레인
윤석호
1
공사장에 허수아비 서 있다
철근과 콘크리트를 섞어
빌딩 하나 키우고 있다
쉴 새 없이 줄을 감아올리지만
보잘것없는 먹이는 배고픔만 키워 놓는다
해가 기울고, 작업자도 허기에 지쳐 흩어진다
젖을 물려 애를 재우듯
어둠을 물려 지친 공사장을 재운다
담을 데가 없어 고독조차 머물 수 없는 밤
등을 숙이고 팔 한번 편히 내리지 못한다
허수아비에게는 관절이 없다
2
도시 한복판 욕망의 낚시터
땅 껍질부터 벗겨내고
콘크리트 심지를 두들겨 박아 잠을 깨운다
꿈의 높이만큼 망루를 세우고
수평의 평정심으로 낚싯대를 펼친다
한번 시작되면 멈추지 못하는 집착
땅속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가
이제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낚시꾼이 물고기를 낚았다는 말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바다가 물고기 몇 마리로 낚시꾼을 낚은 것이다
3
숲을 쓰러트리고 나무를 토막 낸 공사장에서
빌딩들이 자라고 있다
불안했던지 빌딩마다 쇠 십자가 한 개씩 세워놓았다
숲을 위로하소서
그 숲의 토막 난 나무를 위로 하소서
나무를 토막 낸 경솔함을 용서하시고
그 위에 자라나는 빌딩 또한 용서하시며
다만 몰려올 사람들을 축복하소서
십자가의 기도가 흙먼지처럼 내려앉는다
숲이 사라진 곳에 사각의 봉분들이 자라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20년 4월호
댓글목록
서피랑님의 댓글
서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유장하고도 단단한 한 편의 시,를 읽습니다.
미국 상황은 많이 안좋다 들었습니다. 모쪼록
건강 유의하시고 좋은 시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이종원님의 댓글
이종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빌딩을 쌓아가는 타워크레인의 모습을 깊이 있게 묘사하셨습니다.
사각의 봉분을 쌓아가는!!!!! 압권입니다.
힘들고 어지러운 미국 땅에서의 두려움과 아픔 잘 이기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