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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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665회 작성일 20-12-01 16:27본문
알람 외 1편
이명윤
새처럼 창문에 날아드는 손,
꿈속까지 나타나 귀를 잡아끄는 손
경쾌하게 리듬을 타고
빙글빙글 허공을 돌더니
벽 속으로 사라지는 손
손을 잃고 새 손을 저장합니다
나는 선택할 손이 아주 많습니다
손가락이 길수록 끈질길수록
유년의 어머니와 잘 어울리지요
손바닥을 잎사귀처럼 볼에 대고
비빌 수 없다는 것이 가끔 아쉽습니다
지구 끝까지 이불을 덮고
다시 숫자를 세면,
우르르 사방에서 쏟아지는 손
방안을 정신없이 걸어 다니는 손
슬그머니 이불속에 들어와
팔을 당기고 발바닥을 간질이는 손
불현듯 커튼을 열어젖히고는
먼지에 콜록콜록 손사래를 치는 손
얼굴이 없는 얼굴처럼
만질 수 없는 차가운 시간의 손
따뜻한 벙어리장갑을 끼워 주면
식은땀 흐르는 이마를
만져줄 수 있을까요
오늘 하루는 푹 쉬어야겠네,
귀에 대고 말해줄까요
반구대 암각화
저 호수에 낚싯바늘을 던지면
시간의 파문이 일고
와와, 수천 년 전의 함성과 북방긴수염고래와
작살을 든 사내들이 줄줄이
공중으로 솟구쳐 오를 것 같다
망원경으로 보세요,
배는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바람은
암벽 속에 꼬리를 감추었지만
고래의 피 묻은 손이 철철
검은 아이를 받아 내고
동굴 속 긴 울음을 먹여 살린
우리는 위대한 사냥꾼의 후예들,
일행 중 누군가 가늘게 탄식했다
오늘은 물에 잠겨 고래가 가져간
손목을 볼 수가 없군요
지금도 공중을 유영하는 치명적인 햇살
혹은 화살에 대하여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우린 모두 먼길을 돌아 여기에 왔음을 안다
암벽 속의 사내가 웃고 있었다
이곳에 오실 땐 고단한 사냥도구는 잠시
내려놓고 오실 것
가깝고도 먼 나라를 순례하듯이
피고 지는 들국화의 걸음으로 다녀가실 것
우리는 거대한 암벽 속의 무늬들,
사냥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테니까
-『문학의오늘』2020, 겨울호
댓글목록
정윤호님의 댓글
정윤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애써 쓴 댓글이 어째 다 날아가버립니다. ㅎㅎ
알람, 왠지 정겨움을 한 번 쯤 돌아보게하는 글이라 품에 안기듯 다가옵니다.
마치 암각화에 숨겨진 비의를 풀어내듯 쓰신 좋은 글도 잘 살펴 감상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강태승님의 댓글
강태승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잘 감상하고 갑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