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모(旋毛)에 대한 단편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선모(旋毛)에 대한 단편 / 이 종원
사진첩을 들추다가
툭 떨어진 옛날
오롯이 담긴 흑백이
낙엽처럼 바스락거린다
중절모를 쓴 낯익은 젊음이 흐릿한 것은
꺼내야 할 그리움이 많은 탓이다
부치지 못한 전상서
주소 잃은 봉투
모두 벗겨진 채로
나를 카피한 얼굴에 밑줄을 그었다
설핏 보아도 선명한
궤적을 털어도 닮은 지문
당신의 발자국을 밟고 온 나 또한
눈물을 감추려고 사진 속 모자를 꺼내는데
반쯤 벗겨진 이마가 닮았고
내미는 왼손이 더 근친이다
머리카락 세던 소리
"가마가 둘이라 장가도 두 번 가겠네"
농담 반 놀림 반 태우던 쌍가마
"안돼! 난 장가 한 번만 갈 거다"
울음 쓰다듬던 눈빛
풍장 되어 날아간 기억이 선뜻하다
광속으로 돌려본 필름 속
추억을 입기 위해 벗은 모자 아래
쌍가마 자리 형광처럼 밝다
댓글목록
임기정님의 댓글

얼마 전 아는 사람과 이야기하다
왜 부모에게 물려받는 것은
안 좋은 것들이 많은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의 머릿결은 회오리치듯 하고
곱슬머리에 그런데 고거이는 아직 못 갔으니
빼고
아무튼 추억 속의 흑백 영사기 돌아가듯
잘 읽었습니다.
무덥던 날씨가 한줄기 비 적심으로
좀 시원한 밤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종원 시인님 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이종원님의 댓글의 댓글

좋은 것보다 안좋은 것에 대한 기억과 미련이 더 커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제 생각 또한 그렇고요
그러나 지금은 주고 떠나신 좋은 것에 대하여 감사함이 큽니다.
DNA는 부차적인 것이요 생명을 주신 것이 첫째니까요.
무더위 이기시고 건강하시길요 대길이 때문에 흘리는 땀이
몸에는 좋지 않을까 합니다.ㅎ 7월 한달이 점점 짧아지네요
걸음을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香湖김진수님의 댓글

마음을 품었는데 어찌 그리움이 없겠는지요.
닮지 말아야지, 당신처럼 안 살거야!
다짐에, 다짐을 했겄만 거울에 비췬 벽면 속 사진 한장.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에 당신이 있었습니다.
어찌 그리 똑같은지,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리움.
이제서야 압니다. 당신과 나는 둘 아닌 하나라는 걸.
보고싶습니다.
이종원님의 댓글의 댓글

형님의 사모곡은 늘 아련하면서도 진정이 묻어났지요
그 굵은 선이 지나간 자리 떠올려봅니다.
아직도 선연한 그리움이 가득하십니다.
먼 걸음 서슴치 않고 달려가 닦아주시며 쏟아내던
그 짙은 향이 생각납니다.
이시향님의 댓글

쌍가마라 장가 두 번 가면
부러울 것도 같은데
아닌가 봅니다~~~^^
이종원님의 댓글의 댓글

다들 부럽다고 했는데 아직은 ㅎ~~~~
놀림과 농담을 곧이 듣던 시절, 벌써 한참을 돌아 한바퀴를 돌았습니다.
정윤호님의 댓글

"중절모를 쓴 낯익은 젊음이 흐릿한 것은
꺼내야 할 그리움이 많은 탓이다"
글 앞에서 저도 그리움 하나 꺼내봅니다.
시인님의 환한 얼굴이 떠오르네요. 참 다정한 글입니다.
이종원님의 댓글의 댓글

아버지 사진은 아직도 중절모를 쓴 청년 그래도 남아 있습니다.
머리 벗겨진 것도 이제는 똑 닮아갑니다. ㅎ
안 좋은 것을 물려주셨다는 것보다, 좀 더 잘해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큽니다. 그러나 한 편의 글로 아쉼을 덜어내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더위에 건강하시길요
조경희님의 댓글

그리움을 끄집어내는 시간은 오롯이 혼자라서 좋은 거 같습니다
흑백의 시간들을 저도 더듬어 보게 되네요^^
잘 감상했습니다
건강하고 시원한 여름 보내세요
이종원님의 댓글의 댓글

가끔은 그리움도 추억도 명약이 되기도 합니다.
흑백이 그리워지는 것 또한 흑백을 담아놓았기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시인님의 좋은 기억, 슬픈 기억도 대입해보고
반추해 보셔서 새로운 감성 하나로 긴 씨줄과 날줄을 이어가 보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덕분에 많이 시원해집니다.
최정신님의 댓글

오늘은 중절모를 쓰신 아버님이
그리움의 산실이군요
계신다면 흐뭇한 미소지으시며
등을 토닥이실 것 같아요
추억은 시인의 밥과 같지요
아련한 추억에 동참합니다.
이종원님의 댓글의 댓글

아버님의 사진이 유명 배우의 이미지를 닮았던 생각이 납니다.
어린 시절의 응석이 생각나서 웃어봅니다.
레트로 맛집을 찾아가서 그날의 밥으로 감동의 고개 끄덕일 수 있었습니다.
퓨전도 좋지만 레트로도 좋은 맛인 것 같습니다.
허영숙님의 댓글

등굽은 아버지를 보다가 사진첩을 보면
젊은 얼굴로 어린 내 손을 꼭 잡고 찍은 모습에서
가슴이 아려옵니다
요즘은 저도 사진첩을 보는데
지나간 시간이 거기에 다 묶여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