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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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모나리자정님)
능소화 편지 / 허영숙
꿈결인가, 그대를 만난 것이
단 한 번 본 것뿐인데
허락도 없이 들어앉은 그대를 쫓아
일생을 소진하며 여기까지 왔다
잠깐 스치고 오래 헤어져 있었으니
그리운 문장들만 넝쿨을 이루고 자라
담벼락이 환하다
그대 발소리는 멀고
그 소리 담으려 나를 더 크게 열어
한 잎 귀 넓은 꽃으로 핀다
한여름 땡볕을 딛고 담장을 타고 오르는
이 지독한 흡착은
그대가 일생에 또 한 번 이 길을 지나 갈 때
꽃 무더기에 숨은 나를
모르고 스쳐갈까하는 염려 때문이다
먹구름을 밀며 하늘이 뒤로 숨고
그대와 나의 먼 행간에도 빗방울이 든다
간당간당한 꽃대를 아프게 움켜쥔다
이토록 간곡하고도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뼛속까지 훑고가는 소나기가 내리기전에
내가 먼저 나를 놓아버릴 것이다
댓글목록
강태승님의 댓글

서정시 -시의 기본 -서정시 잘 쓰는 시인이
진짜 시인이라는 개인적인 확고한
시의 견해 도 - 담벼락에 두고 -
능소화 밑에서 어렸을적 소나기 소녀와 엮었던 추억에? 잠겼다 갑니다 ㅎㅎ
정윤호님의 댓글

참 곡진한 아름다움이군요.
이후 능소화를 볼 때마다 이 시가 생각날 듯 합니다.
가슴이 따듯해 오는 좋은 시, 고맙게 잘 감상하고 갑니다.
香湖김진수님의 댓글

비바람 지난후 수없이 떨어진 능소화 꽃송이
그게 비바람 때문이 아니고 스스로
자신을 놓아버린 거군요
왜 그리 처연하나 했더니 그런 사연이 ......
앞으로 능소화 곁을 지날 때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열심히 아는 얼굴 찾아보렵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그냥 지나쳐 왔고
마음 준 거는 그니인데 어떻게 알아본데요?
마음이 있으면 통할까요?
임기정님의 댓글

능소화를 보면서
참 이쁘기도 하지만 끝없이 정상을 향해
오르려는 모습 또한
저에게 본보기가 되었는데.
허영숙 시인님 시 역시 볼 때마다
와 와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맛있게 읽고 있습니다.
날씨가 한풀 꺾이려고 하는지
요즘 비 님이 자주 오시네요.
건행하십시요
조경희님의 댓글

요즘 산책하다 보면 주홍빛 능소화가 환하게 피었던에
능소화로 풀어낸 시에 가슴이 뭉클~
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고
가까운 시일이 우리 한 번 뭉쳐요~
배월선님의 댓글

능소화의 마음을 섬세하게도 읽으셨네요
그냥 시를 따라 흐르다 보니 여름 능소화 폈다 지는
한 생애를 훑게 됩니다
사진도 너무 잘 찍으셨죠 모나리자정님 사진과 함께
잘 어우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