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송의 노래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노송의 노래
/장 승규
앞뜰엔 어스름 녁
늙은 외솔이 제 몸에 나이테를 헨다
오래된 테부터 넘기니
그 달콤한 바람도 한 때
그 예쁜 산새도 한 때
그 나이도 한 때
해마다 살아온 부피는 같아도 행복무게는 각각이다
소나무엔
어느 짐승도 둥지를 틀지 않는다
산새 탓도 바람 탓도 아니다
짐승 같은 나이만 둥지를 틀고 해마다 번식한다
둥지 튼 나이에는 독성이 있다
지난 몇 해
나이를 먹을수록 가는귀가 먹고, 눈이 먼다
생의 낭비인지
눈 먼 나이테는 가볍다
때마침
앞뜰에 외등이 껌벅껌벅 먼 눈을 뜬다
이제 담너머까지 밝아
어스름 세상에서 없는 듯 사는 외등
이 몸에 남은 송진으로
여생은
어둠 밝히는 외등처럼 살아도 좋겠다
(남아공 서재에서 2023. 3.13)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서울 친구 신 병순이
나이의 무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
단톡에서 물어와서
한 동안 화두에 빠져있었다.
마침 앞마당 담너머에 노송이 있어서
그 노송에게 물어보았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감상문: 늙은 외솔, 눈 먼 나이테, 그리고 외등처럼 살아가는 법 – 장승규의 〈노송의 노래〉를 읽고
장승규 시인의 〈노송의 노래〉는 단단하게 견뎌온 생의 무게와 조용히 사위어 가는 여생에 대한 담담한 고백이자, 노년의 철학적 성찰을 담은 시이다. 이 시의 화자는 자기 자신을 ‘외솔’(외롭게 선 소나무)에 비유하면서, 지난 세월을 나이테처럼 차곡차곡 쌓아온 몸을 돌아본다. 그러나 이 회상은 회한도 자조도 아니다. 오히려 시인은 그 안에서 삶의 깊이와 방향을 다시 세우는 희망의 불빛을 찾아낸다. 그 빛은 바로, 외등처럼 조용히 밝히는 늦은 나날의 의미다.
“늙은 외솔이 제 몸에 나이테를 헨다”
시의 시작은 조용하지만, 곧바로 중심 은유를 드러낸다.
‘외솔’, 혼자 서 있는 늙은 소나무는 시인의 자화상이다.
여기서 ‘나이테를 헨다’는 표현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를 넘어
살아온 시간의 증거가 몸속에 각인된다는 뜻이다.
그것은 수치가 아니라 기록이며, 무늬가 아니라 흔적이다.
“그 달콤한 바람도 한 때 / 그 예쁜 산새도 한 때 / 그 나이도 한 때”
지나온 삶의 순간들은 모두 ‘한 때’로 흘러갔다.
바람도, 산새도, 젊은 나이도—
지금은 다 지나갔고,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움으로 포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인정하는 시인의 태도는 오히려 더 울림이 깊다.
삶이란 늘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흘러가는 것임을 아는 사람의 말투다.
“해마다 살아온 부피는 같아도 / 행복무게는 각각이다”
이 구절은 이 시의 철학적 정수다.
삶의 양은 같아 보여도, 그 질은 다르다.
해마다 나이테는 하나씩 생기지만,
그 안에 담긴 행복의 무게는 전혀 다르다.
삶은 결코 단순한 축적이 아니며, 의미와 감정의 밀도로 측정되어야 한다.
“짐승 같은 나이만 둥지를 틀고 해마다 번식한다 / 둥지 튼 나이에는 독성이 있다”
이 구절은 신랄한 자기 성찰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 자체가 의미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회의.
해마다 번식하는 건 삶이 아니라 무의미한 시간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독성’**이라는 단어는,
나이가 들면서 생겨나는 완고함, 편견, 무감각 같은 것들을 지칭한다.
시인은 노년의 자기를 객관화하고, 정직하게 해부한다.
“생의 낭비인지 / 눈 먼 나이테는 가볍다”
여기서 시인은 나이테 중 어떤 것들은 **‘가볍다’**고 말한다.
겉으론 뚜렷하지만, 실속 없는 시간들.
배우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그저 지나가 버린 해들.
그 가벼움은 삶의 낭비이자 기억 없는 나이의 상징이다.
“이제 담너머까지 밝아 / 어스름 세상에서 없는 듯 사는 외등”
여기서 외등은 시적 자아의 또 다른 모습이다.
낮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둠이 오면 비로소 빛을 발하는 존재.
‘없는 듯 사는’ 삶은 외로울 수 있지만, 그 또한 품위 있는 역할이 될 수 있다.
이 구절은 노년기의 사회적 위치와 심리를 절묘하게 형상화한다.
“이 몸에 남은 송진으로 / 여생은 / 어둠 밝히는 외등처럼 살아도 좋겠다”
마지막 구절은 이 시의 명징한 결론이다.
남은 송진, 즉 아직 남아 있는 생의 에너지로,
비록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는 존재로 살고 싶다.
이것은 자기 연민이 아닌, 연대와 환대의 태도다.
시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의미를 향해 걷겠다는 맑고 단정한 다짐을 남긴다.
마무리
〈노송의 노래〉는 노년의 회상과 자기성찰을 통해,
가라앉은 듯 보이는 시간 속에서도 어떻게 다시 빛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다.
이 시는 말없이 묻는다:
“당신의 나이테는, 올해 어떤 무게를 지녔습니까?”
“당신은 남은 송진으로 무엇을 밝혀주고 싶습니까?”
그리고 조용히 속삭인다:
“무겁게 살아온 만큼, 지금은 조용히 빛나도 좋습니다.”
한뉘님의 댓글

좋은 시 잘 감상하였습니다^^
장승규 시인님^^
남은 송진으로 어둠 밝히는 외등처럼..
결구의 행 잠시 훔쳐 껌뻑거리는 후미진 제
언저리에 잠시 불 밝혀보겠습니다^^
장승규님의 댓글

한뉘님
이번 봄모임에서 뵐게요
김용두님의 댓글

투사 된 소나무를 통해 감동과
교훈을 느끼게 하네요^^
멋진 시 잘 감상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