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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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香湖김진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5건 조회 213회 작성일 23-12-08 08:50본문
주문진
아이 같은 들뜸으로 선잠 든 아침
때맞춰 울리는 알람이 목덜미를 일으켜 세운다
부스스한 다섯 귀향자
깊이 갈무리해 두었던 설렘을 접어 주머니에 넣고 강릉행 열차에 오른다
창 너머 회색빛 하늘에 투시되는
주문진,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아릿하다
각자 가슴에 갈무리해 두었던 지도를 꺼내 들고
또렷한 기억을 불러낸다
흔적마저 사라져 여기쯤이었을 거라는 추측이 엇갈린다
제장게, 오리날, 소돌, 불당골 등 정다웠고
여기는 빵집이었고,
여기는 책방이었고,
먹성 좋은 세월은 남겨야 할 것들마저 다 먹어치웠다
그 옛날 손바닥만 했던 항구는
그 크기를 대여섯 배쯤 늘렸고
큰 축깡이라 불렸던 방파제는 바다의 심장을 향해
제 뿔을 찔러 넣고 히히거리며 파도와 물장난 하고 있다
다만 변하지 않은 것은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검게 그을린 낯빛이다
그 낯빛에 오래 잊었던 얼굴들이 겹쳐진다
하 많은 부침 속에도
오직 한 곳을 지키고 있는 등대와 서낭당
존재 자체만으로도 고맙다
예나 지금이나 거친 숨을 요구하는 등대 꼬댕이
자연스러우면 미안할 거 같아 헉헉거리며 올랐다
그 꼬댕이에 살았던 옛 친구
이미 별이 된 그 이름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어 수평선만 바라보았다
주문진, 눈에 익은 메뉴라 애써 바쁜 아낙을 불러 주문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맛깔스레 차려진 한 상이다
살아 팔딱거리는 고향 토막 쳐넣고
추억이란 양념 끼얹어 한소끔 끓여내면 그것으로 끝이다
한 입 맛본 입은 ’그래 이 맛이야‘ 하며 입꼬리 올라간다
고향은 그런 거다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장승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 꼬댕이에 자주 갔던
그 친구
오늘도 찾아갔다 오셨네요.
한소끔 끓여낸 고향시가 맛있습니다.
香湖김진수님의 댓글의 댓글
香湖김진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 친구,
먼 바다에서 뱃놀이 하며
오래오래 머물다 쉬엄쉬엄 오라고 손짓하더이다.
임기정님의 댓글
임기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맞습니다
저도 어제 군px 있는 저의 고향 장보러 다녀왔습니다
제 고향은 군부대가 많은 곳이고
이름만 딱 되면 남자라면 아하 하는 곳 입니다
고향은 가도 가도 물리지 않는 곳 이지요
고향 생각하며 시 잘 읽었습니다
서피랑님의 댓글
서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름을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아릿한 곳,
등대와 서낭당의 이야기가
들려올 것 같습니다.
허영숙님의 댓글
허영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며칠 전 주문진 다녀왔는데
이제 주문진 하면 시인님의 시가 떠오릅니다
향호라는 닉이 향호에서 나온 것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