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이 전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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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이 전하는 말
/장승규
가던 길 멈추고 개울가 돌팍에 걸터앉으니
내 지나온 길이
쪼르르 다가와 발아래 마주 앉는다
예전에 지난 길은 벌써 지워지고 없다
자주 넘어지던 산길도
길을 잃고 헤매던 청춘도
한 때의 꽃길마저도
잠깐 앉았다 상심해 일어나니
개울은 여울지며 말하네
이 길에
행복이란 목적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란다
보란 듯, 저는
지금도 흥얼대며 서로 이어 흐르는구나
(남아공 서재에서 2023.12.12)
댓글목록
임기정님의 댓글

물길 같은 맞습니다 지나온 흔적이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귀한 잘 읽었습니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기정님
벌써 올해도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네요.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감상문: 흐르며 살아가는 법 – 장승규의 〈개울이 전하는 말〉을 읽고
장승규 시인의 〈개울이 전하는 말〉은 삶의 중간 어디쯤, 문득 걸음을 멈추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고요한 순간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는 단지 회고의 시가 아니라, 인생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인 깨달음을 개울이라는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잔잔히 전달한다.
“가던 길 멈추고 개울가 돌팍에 걸터앉으니 / 내 지나온 길이 / 쪼르르 다가와 발아래 마주 앉는다”—이 시작은 몹시 정겹고도 상징적이다. 시인은 외부의 흐름을 따라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만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그 순간, 개울물은 단순한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신의 ‘지나온 길’로 변화한다. 조용히 발아래 마주 앉는 그 흐름은, 곧 기억이자 삶의 축적이다.
“예전에 지난 길은 벌써 지워지고 없다”—기억 속에서조차 희미해진 과거를 언급하면서, 시인은 삶의 덧없음을 인정한다. “자주 넘어지던 산길”, “길을 잃고 헤매던 청춘”, “한때의 꽃길”이라는 표현들은 인생의 다양한 국면들을 상기시키지만, 그것들은 이제 물속에 씻겨 사라진 흔적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은 그런 식으로, 지나가면 지워지는 것. 그러나 그것이 부질없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전환은 시 후반에서 일어난다.
“개울은 여울지며 말하네 / 이 길에 / 행복이란 목적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란다”—이 대목은 이 시의 핵심이자, 가장 큰 울림을 주는 구절이다. 행복은 도달해야 할 목표나 상태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개울의 말. 이는 자연의 흐름처럼,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삶 속에서 순간순간의 살아 있음 그 자체가 행복임을 시인은 깨닫는다.
그리고 마지막,
“보란 듯, 저는 / 지금도 흥얼대며 서로 이어 흐르는구나”—개울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려서도 아니다. 그저 그 자신의 방식대로 흥얼거리며 흐른다. 이는 자유롭고 자족적인 생의 태도이며, 인간이 본받아야 할 가장 단순하고도 깊은 진리다.
마무리
〈개울이 전하는 말〉은 삶이란 흐름 그 자체임을, 그리고 그 흐름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완성이나 도착이 아니라 ‘방식’을 찾아가는 것임을 알려준다. 이 시는 독자에게 말없이 속삭인다.
“지금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조용히 우리 자신의 개울을 마주 보게 된다.
서피랑님의 댓글

행복이란 목적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란다,
귀한 말씀 새겨 듣습니다,
허영숙님의 댓글

한 때의 꽃길
어쩌면 오늘 이 순간이 그 한 때의 꽃길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
오늘 제일 젊은 날을 의미있게 보내야 할듯요
장승규님의 댓글

서피랑님! 허시인님!
다녀가셨군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