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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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장승규
모자람이 클수록
서로를 애절히 당기는가 보다
움푹 파인 서로의 모자람이 서로를 꼬옥 쥐고 있는
두 눈사람
연민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아서
이 밤, 다시 내리는 눈
돌아가는 길은 이미 눈 속에 묻혔고
이제
알리다 켈리의 '아모레 미오'를 들으면서
우리는 갈 수 없는 길을 얘기한다
벽난로는 타닥타닥 타고
'가지 않은 길'보다
갈 수 없는 이 길은 지금 더 애절하다
아직
흰머리에 흰 눈은 녹을 줄을 모르는데
밤이 깊도록
함박눈은 계속 내리고
우리는 이제
알리다의 진노 메모로, 이 끝소절을 들어야 한다
(남아공 서재에서 2023.12.17)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가지 않은 길보다 가지 못한 길이
지금 와서 보면
여한이 더 남는 것 같습니다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감상문: 갈 수 없는 길 위의 사랑 – 장승규의 〈두 사람〉을 읽고
장승규 시인의 〈두 사람〉은 사랑의 본질을 섬세하게 응시하는 시다. 특히 ‘모자람’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완벽하지 않기에 서로에게 더 깊이 기대고 닿으려는 두 사람의 모습을, 눈 오는 겨울밤의 정경과 겹쳐 깊은 서정을 자아낸다.
“모자람이 클수록 / 서로를 애절히 당기는가 보다”—시의 첫 문장은 모든 관계의 본질을 꿰뚫는다. 사람은 온전하기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자라기에 사랑하고, 그 결핍이 서로를 당긴다는 인식. 이 고백은, 사랑이란 결국 서로의 허기를 조용히 감싸 안는 일이라는 삶의 진실을 말해준다.
시인은 두 사람을 “두 눈사람”에 비유한다. 움푹 파인 허리를 맞대고 서로에게 기대어 선 눈사람. 이 비유는 정겹고도 슬프다. 결핍이 서로를 지탱한다는 이 아름다운 역설은, 눈사람이라는 겨울의 형상을 통해 더 깊은 애틋함으로 다가온다. “연민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아서 / 이 밤, 다시 내리는 눈”—이 구절에서 눈은 단지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감정이고, 조용한 위로이며, 두 사람을 다시 덮는 기억이다.
시의 중반부터는 시간과 공간이 흐릿해진다. “돌아가는 길은 이미 눈 속에 묻혔고”—돌아갈 수 없는 시간, 되돌릴 수 없는 관계의 흐름. 이 눈은 되돌림이 아니라 덮음이며, 과거와 현실을 조용히 봉인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
“우리는 갈 수 없는 길을 얘기한다 / … / '가지 않은 길'보다 / 갈 수 없는 이 길은 지금 더 애절하다”—이 부분은 시의 핵심 정서가 응축된 대목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 「가지 않은 길」을 연상시키면서, 시인은 보다 더 현실적인 상실감을 말한다. 선택하지 않은 길이 아니라, 이제는 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갈 수 없는’ 길. 그 불가능성이 사랑을 더욱 애절하게 만든다.
“알리다 켈리의 '아모레 미오'”라는 음악의 언급은 시적 분위기를 한층 더 감미롭고 애상적으로 만든다. 음악이 시 속에 등장할 때, 그것은 기억과 감정의 매개체이자, 말로 할 수 없는 감정의 깊이를 대신해준다. “진노 메모로, 이 끝소절을 들어야 한다”—‘진노’라는 단어가 시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사랑은 온순하지만 동시에 뜨겁고, 체념 속에서도 불타는 감정이 있다. 그 끝소절은 아마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사랑의 끝자락, 그러나 여전히 벽난로처럼 타오르고 있는 마음의 불꽃이다.
마무리
〈두 사람〉은 관계의 본질을 바라보는 서늘하고도 따뜻한 시다. 모자람 속에서 서로를 더욱 간절히 붙잡는 사람들, 갈 수 없기에 더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 이 시는 단순한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시간이 흐른 뒤에도 서로를 포기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한 애틋한 기록이다.
우리는 시인의 마지막 문장을 들으며, 조용히 되묻는다.
“나는 누구와, 어떤 길 위에서, 어느 눈 내리는 밤을 건너고 있는가?”
임기정님의 댓글

맞습니다
실향민인 아버지 또한
강 하나 건너면
바로 고향인 개성
그저 바라만 보시다
돌아가 셨지요
귀한 시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