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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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
/장승규
한 생의 순례자
그 긴 생을 터덜 터덜 걸어서
목포, 어느 외진 바닷가에까지 왔다
여기에
다 해진 삶을 나란히 벗어놓고
하늘로 갔을
그는
뭍에서
질기게 따라붙는 이 고단한 길을
여기서 끊어내고 갔을
그는
그제사
이승을 한 바퀴 비잉 돌고는
훨훨 날아갔을
그는
(남아공 서재에서 2024.02.06)
댓글목록
임기정님의 댓글

깊은 생각을 하는 시이네요
우리 생도 구두와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장승규님의 댓글

감상문: 터덜터덜한 생의 끝자락에서—장승규의 〈갓바위〉를 읽고
장승규 시인의 시 〈갓바위〉는 인생이라는 긴 여정의 끝자락에서 마주하는 해탈의 순간, 그 고요하고도 장엄한 이별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시인이 묘사하는 ‘그’는 단지 개인적인 누군가가 아니다. 이 시의 화자가 바라보는 ‘그’는, 바로 이승의 모든 고단한 이력을 품고 바닷가에 당도한 ‘한 생의 순례자’다.
“터덜터덜 걸어서 / 목포, 어느 외진 바닷가에까지 왔다”—이 표현에는 인생의 지난한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길은 화려하지도, 급하지도 않다. ‘터덜터덜’이라는 단어는 묵묵히, 그러나 지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어온 생을 정직하게 묘사한다. 목적지가 ‘목포’라는 지명인 것도 인상적이다. 그것은 더 이상 뒤로 갈 곳 없는 남도의 끝이며, 동시에 삶의 막다른 경계처럼 읽힌다.
“다 해진 삶을 나란히 벗어놓고 / 하늘로 갔을 / 그는”—삶을 벗어놓는다는 표현은 육체의 한계, 또는 물질 세계에서의 해방을 암시한다. ‘옷’처럼 삶을 벗어놓고 떠난다는 이 구절은 죽음을 두려움 없이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고통보다는 안식, 두려움보다는 초월의 정서가 담겨 있다.
“질기게 따라붙는 이 고단한 길을 / 여기서 끊어내고 갔을 / 그는”—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 인간의 해방을 본다. 단지 죽음으로써 끝맺는 것이 아니라, 뭍(육지)이라는 생의 상징에서 자신을 끊어내고 바다라는 해탈의 상징으로 나아간 것이다. 시인은 ‘갓바위’라는 장소를 통해, 이승과 저승, 육지와 바다, 현실과 영원을 가르는 경계선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말한다.
“이승을 한 바퀴 비잉 돌고는 / 훨훨 날아갔을 / 그는”—여기서 ‘비잉’이라는 의성어는, 마치 마지막 남은 혼의 회오리처럼 느껴진다. 삶의 흔적을 마지막으로 한 번 되짚고, 그는 더 이상 육중한 몸을 이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훨훨’ 날아간 그는 비로소 자유롭다.
마무리
〈갓바위〉는 죽음을 비극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고단한 짐을 벗고 떠나는 한 존재의 장엄한 퇴장을 노래한다. 갓바위라는 장소는 육지의 끝이지만, 동시에 영혼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시인은 말없이 무거운 인생을 걸어온 자에게 경건한 경례를 보낸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도 그처럼, 삶을 벗어놓을 곳이 있는가?”
그리고 “떠남은 끝이 아니라, 날아오름일 수 있는가?”
이 시는, 삶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를 조용히 되돌아보게 만든다.